Article_ 세계 공연예술의 현재
2017년 11월
2017.12.20
〈버려진 아이, 바리데기〉 - 현대로 확장된 바리데기 이야기
무속신화로 알려진 ‘바리데기’ 이야기는, 왕의 막내 공주로 태어나 득남을 원하는 왕의 노여움을 사 버려진 여자 아이가, 결국엔 온갖 고난을 견디고 왕의 병을 치유할 생명수를 구해온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바리데기는 지금까지 연극, 소설, 뮤지컬 등 여러 방면의 이야기 소재로서 인기를 끌었고, 바리데기의 아버지인 왕에 초점을 맞춘 연극 <에비대왕>처럼 파생이 가능한 이야기 소재로서도 그 실력을 발휘해 왔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굉장히 친숙한 바리데기 이야기가 일본에서 일본인 작가의 각색과 한국인의 연출로 재탄생되었다.

◆ 가족극/ 풍성한 볼거리
<버려진 아이, 바리데기(捨て子のパリテギ)>(호리키리 리에 각색/ 배미향 연출)가 타이틀인 이 연극은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족극이다. 그림자극과 인형극, 음악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연극적 재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노력이 인상적인 연극이다. 또한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가사와 악보를 제공해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무대 중앙의 스크린에서 종이로 만든 인형이 움직이는 그림자극이 펼쳐지고,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조종하는 수제 인형들이 동물들로 등장한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면서 가끔은 인형을 조종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관객들의 참여까지 유도해야 하니 어수선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연극의 장점은 이런 여러 가지 연극적 장치들을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 아기자기한 볼거리로 능숙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관객의 연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주며, 연극적 장치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가끔 서투른 배우들의 연기까지 커버하는 기능을 한다.


◆ 확장된 서사-바리데기의 후일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리데기 이야기는, 바리데기가 아버지인 왕의 병을 치유할 생명수를 구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서 끝이 난다. 그런데 이 연극은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더 나아가, 바리데기가 집으로 돌아온 후의 후일담도 같이 그리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호리키리 리에(堀切リエ)는 각색을 하면서 바리데기의 성공담만이 아닌 ‘정신적 성장’에도 중점을 두었다고 이야기한다.(연극 리플렛에서 인용) 즉 이 연극은 한 여자 아이가 ‘자립하는 이야기’로 바리데기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 점이 이 연극의 큰 테마, 말하자면 이 연극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나 버림을 받은 바리데기는 숲의 도깨비와 동물들의 도움으로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아버지의 병을 치유할 생명수를 구해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궁으로 돌아간 바리데기는 왕과 왕비의 환대를 받으며, 공주의 신분으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숲에서 자란 바리데기는 궁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바리데기에게 화려한 의상, 수발드는 시녀는 귀찮은 대상에 불과했다. 예절을 강요당하는 궁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답답하기 이를 때 없었으며, 왕과 왕비는 그녀를 위해 혼담까지 진행시키고 있었다. 바리데기의 친구인 도깨비와 동물들이 바리데기의 인생을 방해하는 존재로 낙인찍혀 위험에 처하자 바리데기는 더 이상 궁에서의 삶을 고수할 수 없게 된다. 자유, 그리고 그녀가 아끼는 친구들을 위해 그녀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삶을 택한다.
궁의 사람들은 바리데기가 이상하다고 수군거린다. 바리데기가 궁에서 느끼는 고립감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궁의 답답한 생활을 버리고 자유와 친구들을 찾아 숲으로 돌아가는 바리데기는, 조금 확장시켜 생각하면 자신의 환경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라는 훈훈한 교훈적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이렇듯 바리데기 이야기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가미한 점이 각색한 작가의 개성일 것이지만, 어쩐지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바리데기가 성취하는 자립의 과정이 현재의 우리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진실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거쳤을 바리데기의 마지막 선택이, ‘그렇게 살면 안돼!’라고 무조건 타이르기만 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중첩되기도 한다. 바리데기의 마지막 선택이 이 연극을 통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라는 것이 아쉬웠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바리데기를, 그 고민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줬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나의 시선에 맞춰 이 연극을 마주보려 했기 때문일 수 있다. 연극을 보던 어린이 관객은 한 시간 반 정도의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가족극 또는 아동극으로서 바리데기라는 이야기 소재의 가능성과 함께,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 이번 연극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일본이라는 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또 다른 여러 바리데기들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글_ 심지연(한일 연극 코디네이터)
사진_ 글쓴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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