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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6년 12월
2016.12.29
말을 내면화한 연극
 11월의 일요일, 고속철도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 교토(京都)에 도착했다. 교토국제무대예술제 출품작인 <물의 정거장>(水の駅)은 오전 11시 공연이었다. 다카라즈카(宝塚)나 가부키(歌舞伎) 등의 대형 공연 외에 11시 공연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일요일 오전 연극 공연에 객석은 관객으로 가득했다. 원래는 토요일과 일요일 4시 공연이었지만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고, 11시 공연은 뒤늦게 편성된 추가 공연이었다.

 <물의 정거장>은 오타 쇼고(太田省吾, 1939~2007)라는 일본의 극작가/연출가의 대표작으로 이번 교토 공연은 인도의 젊은 연출가 샹카르 벤카테슈와란(Sankar Venkateswaran, 1979~)과 인도의 극단원들이 같이 만든 공연이었다. 오타 쇼고의 원작은 대사 없이 배우들의 굉장히 느린 움직임만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침묵극’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1981년 초연 이래 국내외에서 200회 이상의 공연을 갖고, 국내외 연극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도 1988년에 부산에서 공연되었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작은 약수터처럼 물이 계속 흐르는 수도가 설치되어 있어 등장인물들은 그곳에 들렀다가 떠나간다. 한 사람 한 사람, 아니면 집단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그곳에서 풀어낸다. 그곳에서 어떤 부부는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어떤 남자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며, 어떤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일상적으로 때로는 비일상적인 움직임으로 등장한다. 물이 흐르는 소리 이외에 고요한 침묵이 지배하는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긴장된 몸으로 숨을 죽여야 했다. 또한 그 침묵의 공간에서 논리적 힌트 없이 생산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상상해서 채우거나, 무(無)의 상태로 무대에 자신을 내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물의 정거장>은 절제와 생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타 쇼고는 이 작품을 만들기 이전에 이미 침묵극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는데, 입으로 내뱉는 말들을 점점 생략해 가는 과정에서 침묵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것은 ‘희곡=극’이라는 기존의 공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연기=극’이라는 자신의 공식을 추구해가는 과정의 하나였다. 오타 쇼고는 인간은 항상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은 아니며, 할 말이 있어도 그냥 담아 두거나 겉으로 하는 말과 담아둔 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넘쳐나는 것을 하나씩 제거해 가는 것을 통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영역을 탐구하려 했다. <물의 정거장>에서 말로 내뱉는 대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말은 배우들의 몸속에 내면화되어 연기를 하는 모든 배우들의 극도로 느린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배우들 역시 자신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관객들 역시 대사가 없는 그들의 움직임에서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다. 샹카르 연출의 이번 공연에서도 배우들의 느리고 절제된 움직임과 그것에 의한 조화가 관건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 자체가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과장되고 넘치는 몇몇 배우들의 움직임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연출가 샹카르 벤카테슈와란은 자신이 만든 극단 ‘시어터 Roots & Wings’와 같이 일본 공연에 임했다. 일본 작품을 연출하여 높은 평가를 얻고, 2016년 인도의 케라라주국제연극제의 예술감독을 맡는 등, 국내외적으로 광범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유학중에 싱가포르 연출가 연출의 <물의 정거장>을 보았고, 오타 쇼고 작/연출의 <물의 정거장>에 출연한 안도 토모코(安藤朋子)와의 만남이 공연을 연출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도 토모코에게 <물의 정거장>의 첫 장면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고, 둘이 만났던 푸드 코트에서 그녀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걷기 시작하자 “그 장소는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안도 씨의 움직임, 존재감, 집중력, 그리고 걸음걸이는 공간에 에너지를 부여해, 그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변용시켰습니다” シャンカル·ヴェンカテーシュワラン 연출, <水の駅>프로그램(일시: 2016년 11월 12~13일, 극장: 京都芸術劇場 春秋座)에서 연출가의 말을 인용, 3쪽.
라고 한다. 이런 공간은 다른 배우들 각각에 의해 또 다른 공간으로 변화된다.

 <물의 정거장>은 대사로 쓰여진 대본이 아니라 지시문과 설정 등이 적힌 구성 대본만이 존재한다. 침묵극과 느린 템포라는 원작자의 독특한 형식을 계승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들은 연출가에 의해 새롭게 창작될 수 있다. 다민족 국가 인도 출신이며 ‘다종성’을 체현하는 아티스트로 불리는 샹카르 연출의 무대에서 인도 배우들의 앙상블은 물론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원작에 좀 더 풍부한 의미와 가능성을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의 위대함을 넘어서지 못한 이번 공연은 샹카르 씨 연출보다도 원작 자체가 가진 이점을 잘 깨닫게 해준 공연이었다.


글_ 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부토 공연 안내_
마로 아카지 & 다이라쿠다칸 "크레이지 카멜“
날짜: 2017 년 1 월 28 일 (토) · 29 일 (일)
공연 시간 : 18 : 00 ~
장소 : 세계 유산 오키나와(沖縄) 나카쿠스쿠 성터 야외 특설 무대
상세 내용은 아래 페이지를 참조
http://www.dairakudakan.com/images/kin/korean_info.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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