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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7년 1월
2017.01.31
고전 작품의 가능성 - 극단 치텐(地点)의 연극을 보고
 연극을 포함, 여러 가지 예술 장르에 ‘고전’이란 것이 존재한다. 고전 작품들은 그 오랜 역사 때문에, 또는 그 명성과 작품성 때문에 현대인에게 친근감을 줄 때가 있다. 하지만, 과거의 시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겠지만, 때로는 어떤 심오함과 넘기 힘든 장벽을 선사하기도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각 시대는 그 시기의 철학자를 배출했고, 당시 삶의 성찰이 고전 작품들 속에 존재하고, 농축되어 있다.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들은 연극에서 말하는 고전 작품들을 한 번쯤은 도전한다. 많은 이들이 고전 작품에 도전해 왔고, 그들이 도전한 수많은 고전 작품 중에서 연출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지금의 현실과 맞닿는 지점을 고전 작품들 속에서 발견해내려고 한다.

[사진1]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

 연극에서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고전 중의 고전을 의미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한다. 올해는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분명히 국내외에서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다수 공연되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도쿄(東京)에서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이 같은 시기에 공연되었다. 하나는 뮤지컬로 하나는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연극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수 집안의 두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두 남녀의 열정, 두 원수 집안 사람들의 열정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작품이다. 두 가지 전혀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교토(京都)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치텐(地点)의 작품을 보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을 연극으로 보고 싶은 마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 이전에 우연하게 보게 된 극단 치텐의 <벚꽃동산>이라는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에까지 어떤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벚꽃동산> 역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몰락해 가는 귀족의 넓은 영토(벚꽃동산)가 결국엔 그 집안의 고용인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내용으로, 귀족의 몰락과 신흥 계급의 등장을 알리는 당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대사의 양인데, 그 대사가 깊은 의미와 유머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대한 대사와 긴 러닝타임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면서도 원작 그대로의 공연은 사람들을 조금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극단 치텐의 연출가인 미우라 모토이(三浦基)는 1973년생인데, 이런 체호프의 작품을 젊은 연출가로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궁금했다.

[사진 2] <벚꽃동산>

 극단 치텐의 <벚꽃동산>은 굉장한 개성을 발산했다. 체호프의 희곡 내용은 해체되어 연극에서 <벚꽃동산>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체호프의 대사들은 배우들의 독특한 언어 구사법에 의해 개성을 부여받았다. 배우들은 대사의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또는 한 단어마다 높낮이를 달리한 발성 방법으로 높은 발성으로 내뱉는 글자나 단어 후에 낮은 발성, 또는 보통 발성으로 내뱉는 글자나 단어가 교차적으로 나열되었다. 그 대사들은 하나의 리듬처럼 노래처럼 무대 위에 울려퍼졌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배우들이 거의 무대 중앙에 앉아서 연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1원짜리 동전을 쌓아 만든 사각형의 공간 안팎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로파힌 역의 배우 이외의 배우들은, 큰 창문틀 모양의 오브제를 들고 사각형 공간 중앙에 앉아서 연기했다. 독특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오브제로서 기능하는 무대 장치들이 체호프의 작품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굉장히 젊은 에너지를 이 무대에서 느낄 수 있었고 <벚꽃동산>이라는 작품 자체에서 현재와 연결된 지점을 본 것 같았다. <벚꽃동산>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고, 연출의 장난스러움에 매료되었던 탓에 <벚꽃동산>을 본 그 날,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가리라 다짐했다. 체호프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굉장히 대중적인 특징을 가진 작품으로 그 성향이 전혀 다른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어떤 개성을 부여해 줄 것인지 궁금해졌다.


[영상] <로미오와 줄리엣> 예고편

 극단 치텐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굉장히 시끄러운 공연이었다.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이 아닌 와세다(早稲田)대학의 오쿠마(大隈)강당에 사면의 사각형 무대를 설치해 그곳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펼쳤다. 그 외에 구칸겐다이(空間現代)라는 와세다대 출신 밴드와 콜라보한 공연이었다. 대사의 발성 자체에 노래와 같은 리듬을 가진 배우들의 대사와, 밴드가 ‘바밤’하고 기타나 드럼을 연주하면, 계속 서 있기만 하는(보컬과 비슷한) 배우가 괴성과 같은 소리와 대사를 말하기도 하는 독특한 콜라보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바밤/괴성/바바밤/대사/바바바밤/괴성과 대사, 이런 방식이었다. 사면의 사각형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그 콜라보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각도 진 사면의 무대 위에서 걷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 역의 두 남녀 배우가 두 손을 바닥에 댄 채 허리를 들어 다리를 양쪽으로 계속 움직이면서 대사를 말하는 장면이다. 배우들의 신체적인 능력이 굉장히 요구되는 장면이었는데, 다른 배우들이 두 배우의 팔 다리를 잡고 당기면서 무대 위를 이동하는 장면도 있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신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 내용의 해체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신체 자체를 해체시키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우들과 무대, 그리고 밴드, 대사와 음악 모두가 각각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불가사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연, 그것이 극단 치텐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는, 와세다대학이라는 장소와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괴성과 높낮이가 다른 대사, 그리고 음악이 계속 연속적으로 끝까지 반복되기 때문에 졸고 있는 관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자 다들 만족스런 박수를 보냈다. 무대의 젊은 에너지가 관객들과도 조화를 이룬 것 같았다. 그들의 젊은 에너지와 파격적인 개성이 고전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해 준다.


글_ 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사진 및 출처_
사진 2_ 극단 치텐 홈페이지 (http://www.chiten.org/)
영상_ https://youtu.be/7Naj-21WZ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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