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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세계 공연예술의 현재


2018년 1월
2018.01.31
극단 로로의 감미로운 연극, 〈매지컬 니쿠자가 패밀리 투어〉
 오랜만에 요코하마(横浜) 중화가를 찾았다.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이 굉장히 많았다. 이름난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그 번잡함을 가로질러 큰 도로로 빠져나오면, 조금 전과는 대조되는 한적함과 단정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그 건물에 가나가와예술극장(神奈川芸術劇場, 일명 KAAT)이 위치하고 있다. 이 극장에서 극단 로로(ロロ)의 <매지컬 니쿠자가 패밀리 투어(マジカル肉じゃがファミリーツアー)>(2018년 1월 12일부터 21일까지, 극본/연출: 미우라 나오유키)를 보았다.

 이 작품은 2010년에 초연된 <려, 려려(旅、旅旅)>라는 작품을 새로 개작한 신작으로 <BGM>, <부모자복제군(父母姉僕弟君)>에 이은 ‘여행 시리즈’ 제3탄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회전 무대, 밝고 명랑함이 가득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게 만드는 연극으로, 연극을 처음 접한 관객이라도 재미있다고 느낄 만하다. 그리고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비눗방울이 날아다니고 파스텔 톤의 광선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잔상을 머릿속에 남겨주는 작품이다.



[사진] <매지컬 니쿠자가 패밀리> 포스터

◆ 경쾌발랄 가족이 소환해내는 기억과 판타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엄마 ‘나쓰코’, 아빠 ‘타카시’, 장남 ‘완’, 차남 ‘토치’, 장녀 ‘메쿠루메쿠’, 외할머니 ‘소보코’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 메쿠루메쿠는 학교 숙제로 ‘가장 오래된 기억’을 찾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자신의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가족 모두에게 피크닉을 제안한다. 하지만 피크닉 당일에 나쓰코가 다른 일정이 있었음을 기억해내고, 가족 모두가 갈 예정이었던 피크닉은 메쿠루메쿠와 그녀의 친구 둘이서만 가게 된다. 그 와중에 차남 토치는 집안 구석에 붙여 놓았던 가족들의 과거 사진들을 찾아낸다.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노래자랑에 가던 나쓰코와 타카시는 자신들의 과거 기억들을 떠올리고, 나쓰코의 노래는 그들의 기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마음에 두고 있던 ‘이찌니찌’를 만나기 위해 피크닉을 취소했던 완은, 소설가인 아버지의 팬이라는 이찌니찌에게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신작 소설 원고를 가져다주고,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둘은 주위의 사물 또는 사람에게 걸맞는 이름을 새롭게 명명해 나가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완은 아직 자신에게 걸맞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는 이찌니찌에게 엄마 나쓰코의 이름을 명명해 준다. 그로 인해 완과 이찌니찌는 젊은 날의 나쓰코와 타카씨의 모습으로 중첩되고,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완은 이찌니찌에게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이런 가족들의 기억이 소환되어 가는 과정에서 메쿠루메쿠는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들까지 마주하게 된다. 각자의 기억을 소환한 가족들이 다시 한데 모이고, 그들은 취소되었던 피크닉을 떠나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 기억 소환의 방법

 극단 로로의 대표이자 극작과 연출을 맡은 미우라 나오유키(三浦直之)는 <이름, 기억, 장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인터뷰 사이트 note에 개설된 <매지컬 니쿠자가 패밀리 투어>(매거진 코너에 실린 미우라 나오유키의 인터뷰: https://note.mu/llo88oll/n/n54d117ea1085?magazine_key=mdf15d5a88950)에서 “자신의 기억,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을 찾아가면서, 이름을 명명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나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 속에서 장남 완과 이찌니찌가 이름을 명명하는 행위는 이런 작가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름을 명명하는 행위에 의해 두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나쓰코와 타카시의 기억 속 젊은 두 사람과 중첩된다. 또한 차남 토치가 집안 곳곳에 스티커처럼 붙여 놓은 나쓰코와 타카시의 사진에 미니 파파, 미니 마마라는 이름을 부여하면, 멀리서 오토바이를 탄 나쓰코와 타카시가 예전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런 식으로 소환되어 모두가 공유하게 된 기억들은 원래는 잊혀진 기억들이었다. 작가 미우라는 이런 기억들을 붙잡아 놓고 싶은 듯하다. 그건 가장 오래된 기억을 찾아 떠나는 메쿠루메쿠, 숨바꼭질을 할 때 유일하게 자신을 발견해 준 사루스베리를 잊고 싶어하지 않는 토치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족들은 가족으로서 오래된 기억들을 공유하면서 결속력을 높여간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의 파노라마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건 정교하게 만들어진 회전 무대이다. 가족들의 집인 부엌과 거실, 화장실, 아이들 방으로 나뉘어진 무대는 각각 공원이나 노래자랑 무대 등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경쾌함을 더해 주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인데, 공원의 새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남성미 넘치는 엄마인 나쓰코의 연기는 극에 코믹함을 부여해 준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젊고 대중적이다. 이런 특성은 관객을 쉽게 흡수시켜 같은 놀이 공간에서 배우들과 어울리는 유사 체험을 하게 해 준다.

◆ 극단 로로와 미우라 나오유키

 미우라 나오유키를 포함, 10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로로는 2009년에 결성하여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극단 로로의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음악, 영화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컬쳐를 짜깁기하여 여러 가지 “만남”의 순간을 이야기화’하는 극단이다. <매지컬 니쿠자가 패밀리 투어>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음악 등의 조합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이 작품 속에서 독특한 색감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가볍고 세련된 음악 선곡은 젊은 에너지를 느끼게 해 준다. 2013년, 미우라 나오유키는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하였으며, 2015년의 <핸섬한 다이고(ハンサムな大悟)>로 기시다쿠니오희곡상 최종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1987년생인 미우라는 “다장르의 컬쳐를 믹스한 연극이라는 형태로 발신”(도쿠나가 쿄코(徳永京子) 기술, 「소극작 작가 리스트/미우라 나오유키(小劇場作家リスト/三浦直之)」, 도쿠나가 쿄코·후지와라 치카라(藤原ちから) 지음, 『연극최강론(演劇最強論)』, 飛鳥新社, 2013년, 48쪽)하는 젊은 기수의 대표로 칭해진다. 2015년부터 고교생을 위한 프로젝트를 전개해 왔으며, 고교생 이하 관극과 희곡사용료 무료 등 고교연극 활성화에도 힘을 쓰고 있다.

 극단 로로의 연극과 같이 감미로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연극이 있어서 참 좋다. 여러 장르를 기워 솜씨 좋게 버무린 그들의 젊은 재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티끌 없이 맑고 명랑한 연극이 그들의 개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주길 바란다. 이유 없는 인생의 불안이나 철학적인 사유도 경쾌 발랄하게 소화해내면서 언제까지나 반짝 반짝 빛나는 그들이었으면 좋겠다.


글_ 심지연(한일연극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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