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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세계 공연예술의 현재


2018년 9월
2018.10.10
생태예술 이야기 I: 또 하나의 관념 유희인가 현실인가?


생태예술(ecological art, eco-art, EcoArt)이라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또 무슨 관념적 유희인가 의구를 낳고, 어떤 사람에게는 빨리 유행을 따르자는 전략적 적응을 낳아 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일반화시켜 놓은 개념이고 용어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생태춤’ 등등을 아이디어 특허까지 등록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생태예술은 전세계 수십개의 예술집단들이 실행하고 있고, 학자가 연구하고 있고, 이 시대 유럽의 퍼포먼스는 생태학적 전환을 맞고 있다는 공연예술학 저서들도 출간되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일반화된 개념이고 용어이다. 그것은 20세기 중후반 대지예술(Land Art)이 대상화된 객체로서의 대지에 오브제를 더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상호작용적이고 생성적이며 ‘생태학적’인 역동적 개념이다. 뉴스삼아 생태예술의 동향을 간략히 적어 본다.


  생태예술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에 서구에서 창안된 것이다. 비쥬얼 아티스트이자 예술학자인 베스 캐루서(B. Carruther)가 유네스코 캐나다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간 제기되었던 수많은 개념들과 동향들을 분류했다. 이어 그녀는 환경과 공간행동, 자연에 뿌리박은 인간의 문화적 창조물, 예술을 통한 인간의 자연개입과 에코벤션(생태적 창출, ecovention), 서로 간의 양육과 성장 등에 관해 20세기 중엽부터의 방대한 사례를 분석하고 ‘생태예술’(EcoArt)이라는 용어로 당대의 동향을 압축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의 예술은 20세기 중엽부터 주로 북미에서 시작되었고 이태리에서 움튼 아트 포베라(art povera) 역시 자연의 성장에 대한 인간 개입 예술로 한 가지 경향을 더한다.



[사진 1] 아트 포베라(Art Povera) 의 작가 Giuseppe Penone의 작품. 손 형태의 청동 조각으로 나무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나무 성장에 대한 개입(건축가 Nick Kaye의 해석) , 인간 몸과 나무 간의 직접적 관계맺기를 표현한 것이다.



  1960년대 레이첼 카슨(R. Carson)이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환경문제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 이래 흥미롭게도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엄청나게 활성화되었다. 대지예술(Land Art), 환경예술 등등 수많은 개념들과 예술실천들이 1960년대부터 쏟아져 나왔다. 자연을 온 몸과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미학적으로 깨닫는 것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그리고 자아 전체가 투여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2] 용어는 붙이지 않지만 밴쿠버 코코로 무용단의 춤 시도는 생태예술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갯벌 해변과 바닷물의 변화를 따라서 자신의 몸을 투여하고 자연을 호흡하고 자연 속 몸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세계와 인생살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은 몸과 자연의 직접적 조우와 관계맺기가 차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체를 벗는다. 그것을 그들은 호흡한다고 말한다.



  근래에는 자연과학에서 ‘연행되는 자연’ (nature performed), 즉 인간에 의해 지적, 감성적 장 위에 놓여지고 인지되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루어졌다. 역으로 영국의 무용학자 스튜어트(N. Stewart) 등은 건축, 무용, 음악, 미술 등의 예술실천으로 시간과 공간이 재규정되고 자연이 역동화하는 현상을 ‘자연을 연행하기’ (Performing Nature)라는 편저에 담았다. 그는 이러한 동향의 예술이 자연을 자아로부터 떨어뜨려 객체적, 대면적으로 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연 존재들과 자아가 함께하는, 자연 속 인간 존재임을 느끼고 깨닫는 것으로 보고, 춤 실천과 학술로 이를 규명해 왔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삼라만상을 바라 보는게 아니라 삼라만상 속의 인간 존재를 구현하는 예술, 대체로 그런 뜻이다. 마치 불교적 세계관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원주민의 세계관이 그러하듯이 요즈음 추구되는 ‘자연과 예술’은 자연 속 인간 존재의 ‘관계론적 사고’(relational thinking)와 전인격적, 전자아적 자기 투여를 하는 생태적 관계와 역동적 세상구현에 초점을 둔다.


  학술과 예술 분야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국제기구에서도 자연과 예술에 관한 욕구가 쏟아져 나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단체들, 예술집단, 종교공동체, 생태공동체들이 생태예술을 철학과 문화학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의 차원에서 추구해 왔다.

 

  2010년대 초 교토에 있는 ‘지구학총합연구센터’에서 지구환경과 생물, 문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환경에 대한 교토의정서가 제기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여기서는 생태학, 생태인류학, 해양인류학, 고고학, 고생태학, 건축학 분야 전문가들, 세계농업유산 등 국제기구 및 민간국제기구 의장들이 모였다. 흥미로운 것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연구진의 발표였다. 그들은 테임즈강 유역의 박물관과 예술센터들이 이제는 시민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영국인들은 핵심 사업으로 야외의 강변에 자연과 예술의 장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울러 같은 연구진이 생태계에 대한 가장 고도의 인식과 행동이 감성과 예술행위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밝혔다 놀랍게도 이 발표는 고생태학과 씨앗의 초기 유전형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했다. 농업에 관한 민간국제기구 대표는 인류학자였다. 그는 자연에 대한 원주민들의 토착지식 뒤에 숨은 인지체계를 ‘코스모비젼’(cosmovision)이라 불렀다. 그는 코스모비젼의 구현은 다분히 종교와 예술을 매개로 한다고 했다. 또한 종교와 예술은 세계관, 의미 부여 등을 통해 생태학적 관계를 실현하는 실천이라 규정했다. 그것이 단순한 실용주의적 환경과 경제론을 넘어서 총체적으로 지속가능한 세계를 실현하는 실천으로 보았다.





[사진 3] 캐나다 클레이요퀏 생물권보전지역 원주민사회 나무등걸 속 인간 가면. 나무와 나무 속 인간가면이 자연존재와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원주민들은 숲이건, 가면이건, 토템이건 스토리텔링 혹은 언어 혹은 사물 미디어로 본다. 그것은 자연물, 인간, 예술 그리고 종교의 복합체이다. 요즘 원주민들은 토템을 자신들 방식의 컴퓨터라고도 한다.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계획(Man and Biosphere Program)에서도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생태계를 중시하고,의미론적 차원의 인간 실천을 강조한다. 토착지식을 빈곤퇴치의 관점에서 다룬 것은 수십년이 되었고 토착지식의 세계관과 자연에 대한 문화적 행동을 결부시키는 노력도 꽤 오래된다. 또한 최근에는 음향생태학 연구의 한 갈래인 사운드 스케이프 연구를 자연과학 차원을 넘어서 시작했다. 본래 환경관련 기관에서 사운드 스케이프는 생물과 무생물의 음과 그 공간적 범역을  통해 생태계의 구조와 변동을 감식하는 인디케이터(indicator)로 쓰여왔다. 그러다가 ‘인간’을 중시하는 생물권보전지역에서는 자연의 음에 대한 인간 인지, 인간 감성과 향유의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술의 차원으로까지 발전시켜 연구했다. 종전에 음악인류학에서 많이 다루던, 문화적 사고에 따른 음의 음악적 변환 연구와 비슷하다. 이번에는 민족집단마다의 문화적 사고에 따른 음의 변환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인지방식에 따른 음악의 창의이다. 캄보디아, 중국, 호주, 필리핀, 멕시코, 캐나다를 비롯한 10여개국의 10여개 생물권보전지역들이 어떤 곳은 과학적 차원에서만 어떤 곳은 예술적 차원까지 사운드 스케이프 연구를 하고 실행을 해 왔으며 연맹체를 이루고 있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 자연과 예술의 한 그물을 실현하고, 인간과 문화에 의해 작동하고 활성화되는 자연을 실현하고자 하는 생물권보전지역의 면모이다.




[사진 4] 생물권보전지역 사운드 스케이프 향유의 한 장면, 문화의 음이 아니라 자연의 음을 향유하고 자연에 대한 감성적 접근을 유도하는 사례이다. 한편 인도에서는 15세기부터 나무를 껴안기로 몸과 자연 접촉을 구현하고, 삼림벌채에 저항하는 몸 표현이 발전해 왔고, 유럽에서는 20세기에 눈을 감고 나무를 만지는 감성 교육이, 북미에서는 흙바닥에 앉고 그 자리에 존재 연결과 뿌리내리기를 표현하는 ‘sit-in’, ‘be-in’이 실행되어 왔다. 안나 할프린의 소매틱 퍼포먼스도 단순한 춤이 아니라 생태계의 그물 속에 몸을 싣는, 같은 계열의 예술 실천이다.


  이 모든 사례들은 ‘자연을 인간이 존재하는 상호작용적, 역동적 공동체로 보고 대화하고 상생하는 공동체로 보는, 생태중심적이면서 동시에 휴머니티와 창의를 지향하는 인간 행동이다. 생태예술의 생태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주의적인 근거를 보여준다.


다음 이야기는 생태예술에 대한 현대 동향 뉴스로 캐나다 밴쿠버의 2018 Vines Art Festival을 다룬다. 



글_ 조경만(생태인류학자,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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