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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6년 5월
2016.05.30
경쾌한 도발이 가득한 세계로 - 다이라쿠다칸의 부토 공연
 부토(舞踏, BUTOH)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첫인상에 대해 거의 ‘무섭다’, ‘음산하다’ 등의, 컴컴한 그림자가 드리운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보게 된 히지카타 타쓰미(土方巽, 1928~1986)의 암흑부토(暗黒舞踏=안코쿠부토)를 처음 접했을 때, 벌건 대낮에 귀신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소름이 온몸에 쫙 끼쳤다. 우선 부토 무용수들은 얼굴이나 온 몸에 허옇게 회칠을 하는데, 그 모습이 우선 그로테스크하다. 또한 느린 움직임과 돌아간 눈동자, 일부러 리듬에 어긋나게 모의한 듯한 동작들은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가 따로 움직이는 듯한 아크로배틱함까지 지니고 있다.

 처음으로 암흑부토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원인 모를 공포감에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있었는데, 사실 마음 속 깊이 감동의 전율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 당시 본 공연 속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어떤 처절함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절절한 음악이 공포스런 공연과 너무나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그 무대 위의 아름다운 선율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히지카타 타쓰미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그가 쓴 『病める舞姫』(원어:야메루 마이히메)라는 글에 대한 레포트를 썼었다. 이 책은 아픈, 또는 괴로운 무희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책 속에는 히지카타 자신의 부토에 대한 생각, 부토를 만들어낸 배경 등이 쓰여져 있다. 그러나 그가 쓴 문장들은 굉장히 시적인 함축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앞에 두고 부토마저 신비하고 난해한, 그리고 심각한 장르로 인식해 버리는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아마도 처음 접했던 부토 공연이 머리 속에 수많은 의문 부호들을 채워주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얼마 전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히지카타 타쓰미에 대한 전시와 퍼포먼스가 있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히지카타의 부토와 그가 남긴 유산들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의문 부호들을 머리 속에 채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부토를 창시한 히지카타는 세상을 떠났지만, 부토는 아직도 이어져 극단이며 후계자들이 여기 저기서 공연을 거듭하고 있다. 부토에서는 클래식, 재즈, 록, 유행가, 일본 고유의 현악기 쓰가루 샤미센(津軽三味線)으로 연주된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용한다. 우연히 접하게 된 부토 극단 중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의 공연은 항상 좋은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히지카타의 공연에서 느꼈던 아름답고 절절한 선율은 아니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노린 듯하면서 세련된 멋스러움이 가슴에 새겨졌다.

 다이라쿠다칸의 수장은 마로 아카지(麿赤兒, 1943~)라는 댄서이자 배우인데, 생전의 히지카타 타쓰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1960년대에서 70년대 활동했던 언더그라운드 연극 극단의 대표격인 ‘상황극장’(状況劇場=죠쿄게키죠)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후 1972년에 부토 극단인 다이라쿠다칸을 창단하고 현재까지 댄서로도 활발히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마로 아카지는 덴푸텐시키(天賦典式), 즉 ‘이 세상에 태어나 속하게 된 것이야말로 아주 크나큰 재능이다’라는 생각을 전제로 극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잊혀진 몸짓과 손짓을 찾아내는 작업을 중요시하고, 그런 동작들을 공연 프로그램에 적용해 왔다. 또한 다이라쿠다칸은 1982년 부토 극단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연을 가져 서양에 부토를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젊은 무용수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는 극단으로 연습장을 겸하는 소극장에서 무용수 자신의 실력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수차례 무용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마로 아카지는 2016년 제64회 무용예술상(舞踊芸術賞)을 수상했다.


[사진1] 꽃small(사진_Nobuyoshi Araki)

 필자가 관람한 다이라쿠다칸의 최근 공연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히지카타의 공연에서 느꼈던 무서움과 음산함 보다는 조용하고 형이상학적인 공간 속에서도 어떤 경쾌한 웃음과 도발을 감지할 수 있다. 모두가 허연 몸뚱어리를 하고 무겁지만 때로는 가벼운 몸짓으로 느리게 춤을 춘다. 그 무대를 앞에 두고, 프로그램에 쓰여진 공연 테마들에 빈번히 눈을 옮기면서 머리로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마로 아카지 씨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꽃을 꽂거나 드레스를 입고, 또는 여학생의 교복을 입고 등장해 추는 춤을 보면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섭게 생긴 노인이 그런 복장으로 등장한다고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는 정말로 조금 많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만한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사진2] maro-face monokuro(사진_Nobuyoshi Araki)

 그러나 그렇게 웃고 끝날 게 아니었다. 마로 아카지라는 노련하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노인 댄서의 등장에, 긴장이 풀린 마음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공연을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론 심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웃고, 자극적이기도 하고... 여러 수식어들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다이라쿠다칸 공연의 매력은 그 경쾌한 도발과 편안함에 있다고 생각된다. 같이 관람한 지인이 공연 볼 때 웃어도 되는 것이냐고 물어 왔을 때, 마음껏 웃고 즐기면 어떠냐고 말했었다. 모든 부토 공연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다이라쿠다칸의 공연은 세련되고 멋스러운 음악과 함께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올해 다이라쿠다칸은 창립 44주년을 맞이해, <파라다이스>라는 신작을 무대에 올린다.


[사진3] <파라다이스> 포스터(사진_Nobuyoshi Araki))

 공연의 선전 문구 중 ‘파라다이스는 이미 없다. 때문에 인간은 항상 한순간의 파라다이스를 추구하고 꿈꾼다. 그 한순간의 파라다이스란 무얼까?’라는 문구는 굉장히 철학적이다. 그리고 다이라쿠다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댄서 양종예 씨는 이번 공연에 좀 더 마로 아카지 씨를 둘러싼 강한 웃음이 존재할 거라고 말한다. 철학과 우스꽝스러운 웃음, 편안함이 공존하는 무대를 볼 수 있는 분들은 일본에 건너가 눈으로 확인하고 오면 어떠실지…… 

공연명: <파라다이스(パラダイス)>
공연일시: 2016년 6월 30일(목)~7월 3일(일)(평일/19:30, 토/15:00 또는 19:30, 일/15:00)
공연장소: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世田谷パブリックシアター)
요금: S석 예매(4500엔)/당일(5000엔), A석 예매(3000엔)/당일(3500엔)
티켓문의: (81)0422-21-4984


글_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 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참고문헌_
土方巽, 「病める舞姫」(1983년), 種村秀季弘外編, 『土方巽全集Ⅰ』, 河出書房新社, 2005년
原田広美, 『舞踏(BUTOH)大全』, 現代書館,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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