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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020.02.29
고전에 대한 새로운 현실 인식 - 라만무용단 <新청 랩소디>


고전(古典)은 그 책이 쓰인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며 꾸준히 읽히는 책을 말한다. 이는 고전에 나타난 서사구조나 인물의 성격, 주제의식 등이 시대정신과 맞물려 심미성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가치를 드러낸다. 특히 한국에서 판소리계 소설은 민족문화의 여러 원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고전으로 의미를 지니는데 현대에서는 원소스멀티유즈의 원천으로 지속적으로 모티브로 수용되는 점에서도 새로운 전형적 의미를 만든다.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공연된 라만무용단의 <청 랩소디>(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20.2.14.-15)는 심청전을 모티브로 하면서 여기에 생명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교차적으로 투영하여 실존적 의미를 깊이 있게 풀고자 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존재론적 심리의 병리적 양상을 어두운 정조(情操)로 풀어내면서 메멘토 모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표현한 점에서 작품의 명확한 의식을 전해준다.



  <청 랩소디>, 작가의 방, 수선화, 청 랩소디, 사선의 아리아이렇게 크게 다섯 시퀀스로 나뉜다. 대금소리와 함께 강한 목소리 속 행위자들의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바다 영상이 흐르며 심청에 대한 선험적 기대지평을 일깨운다. 이어 자전거가 등장하면서 시공간의 교차가 이루어지고, ‘무서워요 아버지, 내가 왜 죽어야 하나요라는 희미한 절규가 흐르며 심청전을 현실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결과에 대한 보상적 희생이라는 기승전결의 결말이 아닌 심청이 죽고 싶은 않은 실존의 고뇌에 대한 찰나의 현실에 집중한 모습이다.



  이어 작가를 통해 희생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조하면서도 흑/백의 대비적 효과, 음악에 따른 이야기의 이미지 구현의 군무를 통해 감정고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다가 심청의 죽음을 앞둔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갈등 양상이 펼쳐지다가 어두운 심연(深淵)의 마지막 길로 가는 모습에서는 관악기의 음악이 습윤 되어 강한 인상을 공감각적으로 전해준다. 이러한 고민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작가와 심청이 교차되며 긴 한숨과 안타까움을 주며 미정형의 종결을 맺는다.




   이 작품은 무거운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한다. 이는 심청전에 대한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이다. 원래 심청전의 가장 큰 장점은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이 존재하지만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며 행복한 결말로 치유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청 랩소디>는 이러한 비현실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왜 내가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삶에 대한 회의 등을 통한 현대적 고민이 치환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책 속의 심청과 현실의 심청 그리고 무대의 심청에 대한 변별적 묘사 혹은 무대에 등장한 작가의 개성적 역할과 표현이 두드러지지 않다보니 무엇을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하는지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이는 심청전의 리얼리즘에 대한 그대로의 반영과 현대사회에 대한 직시적 수용이 아닌 이면적 주제의 새로운 인식이 있었으면 질감이 달라지고 관객을 흡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전체적으로 음악이나 연출, 안무는 완성도가 있었다. 음악은 이 작품이 댄스드라마로 느껴질 만큼 상황에 대한 묘사가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2인무, 군무는 잔잔하게 흐름에 몰두하면서 갈등적 양상에 대한 유동적 표현으로 몰입감을 주었고, 여러 색다른 표현 방식을 통해 확장적 볼거리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공들인 작품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호연(무용평론가)

사진제공_라만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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