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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020.04.30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공연 2 - 온라인으로 간 한국 창작발레,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 〈춘향〉










즐거운 비명, 온라인에서 벌어진 공연 특수


  코로나19가 공연계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단체가 상반기에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생중계로 대체하며 유례 없는 대감염병 시대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예술단체들은 공연 예정이던 작품들이 아닌 단체가 보유하고 있던 기존의 레퍼토리 작품들을 경쟁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쏟아내고 있다.





  무용의 경우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시작으로 국립무용단, 광주시립발레단, 서울시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이 경쟁이라도 하듯 차례로 온라인에서 상영되었다.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에서는 예술의전당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공연예술 고화질 영상화 프로젝트인 ‘SAC ON SCREEN’ 대상 공연인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3월 21일 두 차례 상영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같은 공연을 4월 1일 한 차례 더 재상영하고, 역시 SAC ON SCREEN 상영작이었던 〈지젤〉을 4월 3일 추가로 상영해 온라인 관객들의 호응에 화답했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는 발레단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춘향〉을 상영했다. 예술의전당 채널에서 일시를 지정해 제한적 상영회로 진행한 것과 달리 해당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리플레이가 가능한 방식이었다.






  국립무용단에서는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TV에서 4월 3일부터 10일까지 〈묵향〉을, 4월 24일부터 5월 1일까지 〈향연〉을 동시 상영했고, 광주시립발레단에서는 광주문화예술회관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 중인 ‘GAC 안방예술극장’의 참여 프로그램으로 4월 14일 〈파키타〉를 상영했다. 서울시무용단에서는 3월에 공연할 예정이었다가 취소된 레퍼토리작 〈놋〉을 네이버 TV를 통해 4월 18일 상영했고, 국립발레단은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4월 18일과 19일에는 〈허난설헌-수월경화〉를, 4월 24일부터 26일까지는 〈안나 카레니나〉를 상영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는 전임 예술감독이었던 안성수 안무작 〈봄의 제전〉을 4월 20일 네이버 TV에서 상영했다.



온라인에서 보는 공연, 얻은 것과 잃은 것


  이와 같은 온라인 상영회는 국내 예술단체들만의 특수한 열기가 아니라 해외 유수의 예술단체들도 앞다투어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실황을 유튜브와 단체 홈페이지, 공연 전용 TV 채널 등에 쏟아내며 국경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있다. 덕분에 해외로 나가거나 내한 공연을 기다리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웠던 공연을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코로나 시국이 공연장으로 가는 문턱을 없애 아무런 격식도 차리지 않고 모니터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온라인 관객들 앞에 단체의 레퍼토리 폭과 깊이를 가늠케 하는 경연장을 열어준 셈이다.


  장소성이 사라진 온라인 상영회는 굳이 티켓을 예매해 공연장에 방문하는 수고로움 없이 누구의 눈을 의식할 필요 없이도 편한 상태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반면, 공연장 각각의 개성과 현장감이 사라지고 모니터 안에서 납작해진 공연은 무대의 전체 스케일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무용의 경우 움직임이 무대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의 움직이는 몸과 얼굴 표정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예술로서의 움직임보다는 움직이는 신체를 가진 사람의 예술이 되었다.


  후자의 정의가 무용의 본질에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은 다시 따져야 할 일이지만, 모니터상의 공연은 움직임이 사람 뒤로 물러나며 무용 공연이 가진 매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관객들에게 사전 정보가 없는 신작이거나 이렇다 할 스토리텔링이 없는 현대무용은 더욱 집중력 저하를 초래했다.



온라인으로 간 한국 창작발레







  이와 같은 관점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과 〈춘향〉은 레퍼토리 선정 면에서 매우 적절했다. 온라인 공연에서는 무용수들의 호흡이나 무대 음향, 객석의 공간감, 옆자리의 관객들의 반응 같은 공연의 현장감이 사라지고 작품의 규모와 무용수들의 테크닉처럼 주관적 감흥과 상관없이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 가능한 요소들이 보다 두드러진다. 그렇기에 유튜브 등으로 국경의 제약이 없어진 환경에서 발레단이라면 어디나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어 확연한 비교가 가능한 클래식 작품보다 이 같은 단체의 고유한 레퍼토리 작품은 더욱 빛을 발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2016년 공연 실황)을 무용 작품으로는 처음 선정해 상영한 예술의전당 ‘SAC ON SCREEN’는 애초에 공연장을 방문하는 충성도 높은 관객이 아니라 공연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대중 관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였다. 본디 극장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제작된 콘텐츠이기에 이번 온라인 상영회의 타깃층인 시청자 관객들에게 맞춤이라 할 영상을 선보였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전래동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영상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의 줄거리를 다시 한번 요약해 보여주는 것으로, 앞으로 관람할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한다. 이미 아는 내용인데다 친절하게 줄거리까지 예습한 상황이니 관객들이 공연에 몰입하기는 더욱 쉽다. 이 공연을 위해 무용수들이 따로 연기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했을 정도로, 화면에 클로즈업되는 무용수들의 실감 나는 표정 연기는 드라마에 한층 더 감정이입하게 만들었고, 무대를 좌우와 위아래 등 다양한 각도로 조망하며 무대 앞쪽에서 춤추는 솔리스트와 저 뒤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연기를 하고 있는 주역들을 고르게 비추는 역동적인 카메라워크 또한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이 같은 연출이 객석이 아닌 평면 모니터를 통해 공연을 감상해야 하는 관객들에게 주의를 분산시킬 빈틈을 주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춤 그 자체보다 무용수들의 표정, 손끝이나 발끝, 무대세트 등 분절된 요소에 더 집중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관객이 시선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카메라가 보여주는 대로 따라다녀야 하는 수동적인 시청은 실제 공연장에서와는 다른 시각적 왜곡을 낳았다. 이것이 비록 내용의 왜곡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객석에 앉아 감상한 시각적 정보와는 다른, 카메라가 편집해준 화면의 정보만을 기억하게 된다.




  〈심청〉과 달리 발레단이 자체 기록용으로 촬영한 영상인 〈춘향〉(2018년 공연 실황)의 화면은 보다 고요하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대체로 무대 전체를 보여주다 솔리스트의 독무를 클로즈업하는 정도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야 하는 구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두 작품의 영상은 클로즈업을 최소화해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것과의 차이를 좁히려 한다. 다만 차분해진 화면에 집중하기 위한 관객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공연장의 현장감 대신 모니터가 놓여 있는 일상 공간의 현장감이 감상에 개입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영이 실연 관람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창작발레의 가장 높은 봉우리 〈심청〉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은 한국 창작발레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이다. 발레단이 문을 연 것이 1984년, 2년 뒤인 86년 창단 3년차의 젊은 단체가 한국의 이야기를 발레로 옮긴다는 의욕에 찬 도전에 나섰고,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은 긴 역사를 갖게 된 작품은 한국 창작발레의 대표작이 됐다.


  유독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많은 발레 작품으로는 드물게 부모에 대한 효심을 주제로 했고, 전래동화나 판소리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용궁 장면을 작품의 허리에 삽입해 볼거리를 극대화했다. 심청(황혜민)이 아버지 심학규(서양범)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청나라에서 온 선원들을 따라가는 1막과 용궁으로 가 용왕의 구애를 받는 2막, 뭍으로 다시 올라와 왕비가 되고 마침내 아버지와 재회하는 3막까지, 심청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1막에서는 선장(이동탁), 2막의 용왕(강민우), 3막의 왕(엄재용)이 해당 파트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하며 작품의 드라마를 설득력 있게 이끈다.







  1막에서 선원들이 추는 호쾌한 남성 군무나 2막 용궁에 사는 바닷속 생물들의 이질적이면서도 반짝거리는 여성 군무, 3막 심학규와 다른 봉사들이 눈을 뜨고 나서 벌이는 코믹한 남성 군무 등은 무대를 더욱 스펙터클하게 만든다. 갈라 무대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심청과 왕의 3막 달빛 파드되는 작품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며, 왕비가 된 춘향이 조선 왕비의 의복인 원삼 차림으로 버선발을 내밀듯 토슈즈 앞코를 들고 뒤꿈치로 사뿐사뿐 바닥을 찧으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한복 입은 발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대 위에서 다듬어지며 완성도를 높여온 작품이지만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딸이 대가를 받고 팔려가는, 인신공양이라는 작품의 주요 장치는 현대인의 인권 감수성과 크게 충돌하며,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전 심청이 선원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고통과 공포에 대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였다 할지라도 과연 그런 연출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드라마발레까지 좀 더 갈 길이 남은 〈춘향〉


  클래식발레의 형식을 따른 〈심청〉과 달리 〈춘향〉은 드라마발레를 표방하며 두 주인공의 감정선에 보다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국립무용단 레퍼토리작 〈춤, 춘향〉(배정혜 안무)을 원작을 2007년 발레로 옮겨 초연한 뒤 꾸준한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음악을 차이콥스키의 것으로 바꾸고 의상을 비롯해 무대 연출과 안무 구성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 원작의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작품은 춘향(강미선)의 집과 몽룡(이현준)의 집 그 서로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곰방대를 입에 문 월매(이다정)가 딸이 수를 놓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춘향의 집이 느슨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반면, 책을 읽는 아들을 바라보는 두 내외가 있는 몽룡의 집은 엄격하고 딱딱한 분위기다. 그러나 원수지간인 두 집안의 적대감 속에서 위태로운 사랑을 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춘향〉에서 상반되는 집안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은 이 장면이 전부다. 단옷날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곧바로 사랑에 빠진 춘향과 몽룡의 관계는 초야까지 일사천리로 달려간다. 그리고 초야를 지내자마자 몽룡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고, 둘은 애틋한 이별을 하게 된다.


  과거시험 장면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있는 남성 군무와 장원급제한 몽룡의 화려한 솔로는 눈이 시원해지게 만들고 암행어사가 되어 다시 나타난 몽룡과 춘향이 해후하는 마지막 파드되에서는 커다란 무대에 두 주인공만 덩그라니 남아 있지만 몸짓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며 가슴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감정을 퍼올린다. 관객들은 해피엔딩이지만 한 편의 비극을 감상한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드라마발레인 〈춘향〉의 드라마는 그리 섬세하지 않다. 감정은 차곡차곡 쌓아올려지기보다는 매우 갑작스러운데, 이는 너무 빨리 사랑에 빠졌다는 속도의 문제는 아니다. 그 감정이 초야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덜컹거리다 보니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감정에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둘의 언약 장면은 다소 헐겁고 공들여 안무한 초야 파드되에서는 굳이 몽룡이 춘향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는 장면을 넣어 벗기는 남성과 벗겨지는 여성이라는 구도를 재생산한다.






  두 주인공의 드라마가 관객들의 감정에 울림을 주기 시작하는 것은 옥에 갇힌 춘향과 몽룡의 재회가 이루어졌을 때부터다. 그러나 이 장면에 이르기 전에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강민우)의 모습을, 이 장면 이후에는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끌려나온 춘향이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수난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데, 이 두 장면의 안무는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유린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객석에 불편함을 안긴다. 변학도와 그가 부리는 병사들의 위력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이 춘향의 몸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도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덤으로 기생 점고 장면에서 기생들이 변학도 앞에서 교태 어린 춤을 추거나 그의 생일잔치에서 아마도 양반일 남성 손님들과 나란히 앉아 대작하고 있는 장면은 현대 룸살롱 문화를 연상시키고 이는 의도치 않게도 최근 몇 년간의 성범죄 고발 흐름 위에서 매우 큰 반동적 성격을 갖는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보니 당대의 기생문화를 함께 옮겨온 것인지는 모르나 고전소설 원작을 무대화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착취문화로 악랄하게 변질된 구습을 굳이 무대에서 되살려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로 사실감을 위해 고증에 엄격할 필요도 있겠지만 옛이야기를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 앞에 전달할 때 더욱 필요한 것은 오늘에 맞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글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유니버설발레단(photo by Kyoung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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