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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020.04.30
살아 숨 쉬는 기록 - 남화연 <마음의 흐름>





남화연,<마음의 흐름>, 2020, 사운드,설치,복합매체. 사진:김익현


  남화연의 전시 <마음의 흐름>이 아트선재센터(2020.3.24.~5.2)에서 열리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2-3층에서 열린 이 개인전에서 남화연 작가는 안무를 통해 역사와 시간, 인물이 맞물리며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감수성 깊은 작업을 선보였다. 시간이 형태로 응결되어 시각화하는 상태를 만들어 온 그녀의 작업방식은 안무의 과정을 연상시키기에 안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작가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연구해 온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조명하면서 최승희의 안무와 행적을 통해 그 강렬한 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쳤다. 전시를 통해 8년여 간의 ‘아카이브’를 설치, 자료, 퍼포먼스 등으로 구현하며 전시장의 영상과 점토조형물, 퍼포먼스로 관객에게 다가 선 것이다. 전시 제목인 <마음의 흐름>은 최승희의 동명 안무 제목에서 가져왔고, 이번 전시에서는 빛과 소리를 포함하는 설치로 형태를 바꾸어 등장했다. 무용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명의 일반 관객으로서도 남화연의 작업은 흥미롭고 색달랐다. 드라마투르기와 안무로 김재리가 참여했고 이밖에 퍼포머 정지혜, 영상 속 무용수들로 권령은, 손나예가 등장했다. 

 

   우선 작가가 추적해 온 최승희는 반도의 무희로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무용가이다. 그녀는 일제 식민기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무용가인 이시이 바쿠에게서 사사하고 귀국해 한국의 전통춤과 서양의 현대무용을 접목해 작업했다. 뛰어난 실력과 미모로 곧 세계를 누비며 공연활동을 펼쳤고 그 범위가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중남미까지 확대되었다. 그녀의 춤과 행보는 당시 조선과 일본,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예술가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과 시대적 갈등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특히 월북 이후 그녀에 대한 자료가 한정적으로 남아있는 현실에서 남화연의 작업은 이처럼 파편화된 기록과 이미지 위에서 화가 쿠르베, 무용가 최승희, 후대 동서양 사람들이 겪는 전혀 다른 시공간의 바다와 파도라는 하나의 경로를 상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의 최승희에 대한 관심은 과거로부터 이어진다. '역사의 시간이 관통하는 신체'라는 측면에서 그녀의 삶에 주목해 2012년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에서 최승희가 부른 노래이자 음반 제목인 <이태리의 정원>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14년 아르코예술자료원에선 최승희 안무작 <마음의 흐름> 사진 2장과 당시 공연에 대한 평론가의 짧은 글을 참고해 무용의 동선을 상상한 드로잉 6점과 사운드, 포스터로 구성된 작업을 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도 최승희를 주제로 영상 작품 <반도의 무희>와 설치 작품 <이태리의 정원>을 소개했다고 한다. 전시는 작가의 퍼포먼스 <이태리의 정원>과 연결된다. 당시 작업이 최승희의 개인사와 전형적인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임시적인 아카이브를 상상했다면, 이번에는 축적된 최승희에 대한 자료와 작업을 함께 엮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남화연, <사물보다 큰>, 2019-2020, 4채널 영상, 25 47. 사진: 김익현


  우선 2층에서는 4채널 영상작업인 <사물보다 큰>(2019-2020)을 볼 수 있었다. 4개의 분할된 화면으로 차례대로 정지해 있던 화면들이 영상으로 보여지는데, 작가의 동료 히로후미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바다는 감각적이면서 아름다웠다. 4채널에서 펼쳐지는 바다 이미지와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가 노르망디 해변을 그린 <파도> 연작, 인물과 여러 풍경이 맞물렸다. 정지된 시간과 흐르는 시간이 교차하면서 단순히 시간이라는 개념을 초월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4채널 영상에는 작가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우면서 2층은 몽환적인 공간으로 변화했다.





남화연, <세레나데>, 2020, 단채널 영상, 7 24, «마음의 흐름» 설치 전경. 사진: 김익현


   3층에서는 다채로운 영상과 전시, 퍼포먼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단채널 영상인 <세레나데>가 상영되고 있는데, 최승희가 경성에 와서 처음 췄던 모던댄스 독무를 김재리 안무로 권령은이 퍼포머로 새롭게 해석했다. 이밖에도 단채널 영상으로 <자오선>과 <습작>, <풍랑을 뚫고> 등이 있었다. 특히 <습작>은 손나예와 정지혜의 움직임 과정을 찍은 영상으로, 로댕의 <키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최승희의 조각적 춤인 <습작>을 바탕으로 해서 과거의 재료를 현재의 몸으로 어떻게 통과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풍랑을 뚫고>는 최승희의 무용교본인 『조선민족기본무용』이 제일교포 사회로 이전되었던 것을 배경으로 하며 재일동포 무용 교사인 이경희의 춤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더불어 퍼포먼스 기록인 <칠석의 밤: 아카이브>와 유토, 철사, 나무로 만들어진 인체모양의 점토조형물 <습작>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남화연, <습작>, 2020, 유토, 철사, 나무. 사진: 김익현


   전체적으로는 최승희의 안무체계와 교육체계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퍼포먼스가 전시를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퍼포먼스 <에헤라 노아라>는 스크립트, 디렉션을 남화연이 맡았고 드라마투르기 김재리, 퍼포먼스 정지혜, 음악 조월, 제작 진행에 최지혜가 수고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무용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로 영역을 넓힌 퍼포머 정지혜가 보여주는 텍스트와 움직임은 최승희에 대한 오마주의 인상을 받았고 여기에 자신의 몸과 안무의 해석이 더해지는 형태를 보였다. 정지혜는 공간 곳곳을 누비며 영어와 한국말로 최승희에 관해 얘기하기도 하고 한국무용의 기본동작과 최승희의 <에헤라 노아라>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최승희 춤과 일본춤, 그녀가 작품을 만들었던 과정, 한성준에게서 태평무와 한량무 등을 배웠던 기록의 내용, 라 아르헨티나 등을 춤과 텍스트의 결합으로 구현하면서 공연을 이끌어 갔다. 정지혜가 한국무용 베이스를 가졌기에 가능한 한국춤의 정서와 춤사위, 아우라가 합쳐져 성공적인 마무리로 완결되는 현장이었다. 이 라이브 퍼포먼스 형식은 자료이면서 동시에 움직임으로 작동하는 기록이었다.


   팸플릿의 글처럼 역사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의 두 축 위에서 드로잉 하는 몸은 최승희와 남화연의 작업과 자료가 뒤섞여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설명하는 일반적 아카이브의 형식을 벗어나 살아 숨쉬는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김익현(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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