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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020.04.30
낯선 비극을 위한 춤 - 세월호 6주기 추모공연 <Don’t forget me>



  “우리 시대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윤리적 원리들 가운데 거의 아무것도 이 결정적인 시험, 즉 아우슈비츠가 드러낸바 그대로의 윤리학이라는 시험을 버텨내지 못했다.”(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Remnants of Auschwitz』 새물결, 2012)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여태 겪지 못한 비극과 마주했다.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츠, 작은 홀로코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세월호 참사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절멸’을 뜻한다. 생태학에서 절멸(絶滅, extinction) 또는 멸종(滅種)은 생존해 있던 종의 개체가 더는 세계에서 확인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배 안에서 생명이 확인되지 않을 때까지 그들을 방치했다. 생명을 구하려는 민간의 노력을 의도적으로 방해했고, 언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억눌렀다. 이것이 ‘절멸’의 의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올해는 세월호 참사 6주기가 된 해이다. 참사가 있었던 해부터 304명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래, 춤, 영상과 연극이 만들어졌고, 이맘때면 곳곳에서 추모 공연이 열렸다. 코로나 19 감염 예방 차원에서 실시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공연장은 문을 닫았고, 예정했던 공연, 축제는 연기하거나 취소됐다. 이런 와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고 4월 16일이 돌아왔다. 이맘때면 전국에서 모인 예술인들이 팽목항에서 걷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코로나로 주춤하긴 했지만 올해도 예술인들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모였다. 4월 11일, 아픔을 마중하는 비가 온종일 내렸다. 푸른 하늘은 회색 구름이 가렸고, 팽목항은 기억 등대의 빨간색과 노란 리본 말고는 온통 잿빛이었다. 표정 없는 회색 방파제에 흰옷 입은 춤꾼 다섯 명이 천천히 걸어 나간다. 세월호 추모 창작 춤 ‘Don’t forget me’(안무: 김평수, 춤: 김평수, 박준형, 백소희, 이홍주, 정혜원)의 시작이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만 믿고 차오르는 바닷물이 죽음인지 모른 아이들의 몸이 그랬던 것처럼 춤꾼의 몸은 젖어가고 있었다. 달려갈 듯 멈추기를 반복하고 쓰러졌다 일어선다.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눈길까지 끝없이 비에 젖는다. 바로 그 자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감정은 깊고 담담하다. 비극의 서사에 몰두하다 보면 과도하게 감정에 빠질 우려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개인감정은 안무에 적절하게 절제되었다. 방파제 기억의 등대를 저편에 두고 몇 안 되는 관객과 춤꾼의 몸은 비에 젖고 가슴은 기억에 빠져든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예술이 표현하고 재현할 수 있을까? 비극을 증언할 당사자들은 이미 별이 되었고, 남은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고 안타까움에 가슴을 쥐어뜯었던 이들뿐이다. 예술가는 거기에서 다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그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객관화도 주관화도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가 그런 것이다. 304명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TV 생중계로 보고서 그것을 다시 대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개개인이 껴안을 수도 없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와 달리 우리는 비극을 기억하는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Don’t forget me’는 사건을 재현하기보다 기억을 놓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재현 불가능한 사건을 예술이 감당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기억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슬픔은 모방할 수 없고 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 어설픈 위로나 예쁜 슬픔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낯선 것이었다. 예술가 개인의 감정에 갇혀 추모하는 것으로는 그 낯섦을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예술은 세월호 참사라는 낯선 비극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역사를 보면 사회에 강렬한 충격을 준 사건 이후 예술은 달라졌다. 유럽에서 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기계문명을 찬양했던 미래파 화가들은 자신들이 열광한 기계의 섬광을 찾아 참전했고 결국 죽어갔다. 미래파는 그렇게 힘을 잃었다. 이성에 대한 믿음이 전쟁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다다이즘이 나타났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서구는 아감벤의 말처럼 기존의 윤리적 원리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런 역사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 땅의 예술에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 춤은 304명이 희생당한 비극 앞에 무엇을 보여주는가. 예술의 이름으로 비극을 순화하고 아픔을 현실에서 떼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지금 춤이 낯선 비극을 담아내기에 적합한가. 섣부른 예술 행위 전에 이런 질문들이 앞서야 한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아버지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증거다. 15분 길이의 ‘Don’t forget me’는 방파제 끝 기억의 등대로 천천히 걸어가서 등대 문을 쓰다듬는 것으로 끝난다. 안무자는 불가능한 재현과 어설픈 위무에 힘을 소모하기보다 진심으로 기억하는 일을 택했다. 낯선 비극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한 것이다. 끝나지 않은 비극 앞에서 춤이 단순하게 슬픔을 불러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Don’t forget me’는 이 비극을 박제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도 추모를 위한 춤의 새로운 전형에 한발 다가섰다.


글_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박병민(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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