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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020.04.30
[집단리뷰] 2020 젊은안무자 창작공연


 
1992년 춤의 해를 맞이하여 시작된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국내 만 35세 이하 12명의 안무자를 선정하여 지원하는 경연 형태로, 올해부터는 최우수안무자상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으로 수여된다. 2020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총 57팀의 안무자들이 지원하였으며, 영상 오디션을 통해 12명(한국무용 5, 현대무용 5, 발레 2)의 안무가들의 신작이 총 4일 동안 A부터 D조까지 네 개의 조로 나뉘어 하루에 세 작품씩 무대에 올랐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크고 작은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신진안무가를 발굴해내는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본 공연을 2회에서 1회로 축소하여 무관객·실시간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젊은 안무가들이 만든 12편의 신작을 한 자리에


  공연 첫날인 12일(일)에는 한지원, 신원민, 라세영의 작품이 올려졌다. 한지원의 <작은 거인>은 무용수의 움직임 에너지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오브제로 사용된 ‘상자’는 작품 속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였으며, 불분명한 쓰임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진 작품 후반부 두 남녀 무용수의 연기가 가미된 놀이 장면 또한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고루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신원민의 <EGG>


  신원민의 <EGG>는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상에 해당하는 우수 안무자상을 수상했다. 뛰어난 기량의 두 무용수의 움직임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작품 초반에 계란이 깨지는 장면을 연출해 제목에 대한 충분한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이후 반복된 움직임의 나열은 주제 또는 메시지 전달까지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라세영의 <Coexist>는 우유박스라는 소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인상적인 장면과 구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우유박스로 벽을 만들고, 탑을 쌓아 올리며 쓰러질 듯 말 듯한 안무가의 의도와 비의도가 맞물린 위태로운 모습이 주는 긴장감과 스릴이 강한 여운으로 남았다. 끊임없이 박스를 배치하고 다시 해체하는 곳곳 엿보이는 무용수들의 에너제틱함은 영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접촉즉흥에서 형식화된 움직임의 연장선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15일(수)에는 김유연, 박관정, 김지은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김유연의 <Great Hunger>는 현대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뤘다. 남녀 5명의 무용수들이 텍스트와 음악이 뒤섞인 가운데 1:4의 구조로 춤추며 응집된 에너지를 보였다. 다양한 춤사위로 구성되었고, 날개짓 하거나 발을 구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약진의 혹은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초반부 움직임을 빠르게 반복해 역동성을 높였고, “잡는다고 잡아지는 세상일까, 매어 두려고 매어지는 세상일까”라는 내용을 담은 몸짓은 의미의 굶주림인 Great Hunger를 잘 그려냈으나 전체적으로 기량이 돋보였거나 조직적인 구조를 갖추진 못했다.







박관정의 <Deep Learning>


  박관정의 <Deep Learning>은 심사위원장상을 수상했다. Deep Learning은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기계가 반복의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를 통해 성공에 이르듯 마치 로봇처럼 분절적인 움직임을 강조한 두 무용수는 동일 행위를 반복한다. 컵에 물을 담는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동일한 루틴에 템포의 변화를 주어 여러 버전으로 연출한 점이 특색 있었고, 주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김지은의 <Live>는 인간의 생은 곧 LIVE, 현재진행중이며 자신 스스로를 인지하는 행위자로 보고 그 행위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다채로운 조명의 사용, 감성을 충분히 담은 춤사위, 현대적 느낌의 음악 속에서 나름의 구조를 찾고자 한 노력 등이 눈길을 끌었고 무용수들의 기량도 우수한 편이었다. 다만 삶을 현재진행중의 일상적인 육체적 활동으로 표현했기에 다소 움직임 어휘의 나열에 그친 면도 없지 않았다.




최종인의 <魚(어) - 고기 잡을 어>


  17일(금)에는 최종인, 서현정, 천소정의 작품이 올려졌는데, 최종인의 <魚(어) - 고기 잡을 어>는 심사위원진으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우수안무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그랑프리 성격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잘 짜인 군무와 무용수들의 호흡과 사각 없이 무대 이곳저곳을 고르게 사용한 연출까지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다만 무대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워크는, 무용수들이 한 곳에 몰려 있을 때 무대의 다른 여백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알 수 없어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절반의 감상이 되고 말았다.


  서현정의 <Mute>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발언이 차단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고군분투를 움직임으로 옮겼다. 두 명의 여성 무용수는 얼굴에 천이 씌워져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깥을 향한 말 걸기를 멈추지 않고 시도하는데, 이때 공연장의 객석이 아닌 모니터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전달되는 온라인 중계라는 방식은 객석에서 가까이 볼 수 없는 무용수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가능케 해 차단된 발화의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얼굴에 씌워졌던 천은 다시 무용수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발화를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기를 향한 시도는 좌절되지 않는다.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두 무용수의 긴밀한 호흡이 돋보였으나 짧은 작품임에도 후반에 가서 뒷심을 잃은 채 마무리된 것이 아쉬웠다.


  천소정의 <길에서 벗어나다>는 솔로에서 듀엣으로, 다시 3인무로, 4인무로, 최종적으로 5인무가 될 때까지 무용수가 한 명씩 가세하며 점증적으로 확장되는 움직임을 연출하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발레의 기본 동작을 활용하면서도 긴 스커트를 머리에 뒤집어쓴다거나 하며 발레라는 장르의 정형성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시도를 하였지만, 이는 한국무용 창작에서 이미 자주 시도되었던 연출이라 새로움은 덜했다. 또한 사각 틀을 소품으로 사용해 움직임과 연계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으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은 모호한 주제를 매우 단선적으로 만드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연 마지막 날인 19일(일)에는 박영대, 권미정, 이윤지의 작품으로 12작품의 경연이 모두 막을 내렸다.


  박영대의 <50:50>은 작품 전반을 긴장감 있게 이어가는 안무가의 성실함이 돋보인 작품이다. 일상의 오브제인 동전을 사용해 우리의 모든 선택이 50:50의 확률로 다른 결과를 낳게 됨을 은유했다. 두 남성 무용수는 쉼 없이 접촉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긴밀한 호흡을 만들어나가고 카메라는 무대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무용수들의 컨택에 초점을 두어 움직임을 따라간다. 그러나 흥미로운 주제의식과 무용수들의 숙련된 움직임이 만들어낸 긴장감은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동전이 무대 위에 뿌려지며 50:50 확률의 무의미함에 도달하는 순간 깨어지고 만다. 단선적인 결말에 대한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했던 작품이다.


  권미정의 <아름답고 곧은 자의 초상>은 조명디자인을 활용해 한국 춤의 서정적인 미학을 증폭시킨 신선한 시도에 비해 움직임의 깊이까지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작품 초반에 아름답고 풍성한 치마를 입고 형태미를 보여주다 더 이상의 특별한 움직임 없이 바로 벗어 버리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후 무용수들은 서로의 몸에 물감을 묻히며 보다 확장된 움직임을 보여주려 했으나 이는 일차원적인 표현에 그쳤으며 보는 이의 집중과 흥미를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응집된 춤사위와 격렬한 몸짓이 교차되고 때로는 한국춤에서 흔하지 않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내면에 담긴 이중성의 표현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무용 창작 작품의 클리셰에 머물러있는 움직임들은 새로운 깊이를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이는 주제 전달의 아쉬움과 동시에 춤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윤지의 <어딘가에서>는 발레라는 장르가 지닌 움직임 어휘는 유지하면서 현대적 연출을 시도한 작품이다. 그러나 창작 발레의 전형적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들이 지닌 기량을 확연히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무용수들은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상들을 움직임으로 펼쳐내고, 이를 무대 뒤쪽에서 한 남자가 TV 앞에서 취식을 하며 지켜본다. 이처럼 분리된 시공간은 ‘어딘가에서’라는 제목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이나, 무대공간의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등장과 대형 변화에서 미숙함을 보였다. 때문에 무용수들과 분리된 남자 연기자의 존재감에 대한 분명함을 찾기 어려웠으며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다만 작품 중간에 등장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TV로 보고 있는 남성의 존재는 공연이 온라인 중계되어 모니터로 작품을 감상하는 시청자 관객들에 대한 메타로 작용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마무리는 초록매트를 무대로 끌어 옴으로써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길(way), 어디(where), 어딘가에서(somewhere) 등을 은유하였다.



무용 온라인 공연도 하나의 미디어 장르가 되는 시대가 올까?


  4일간의 2020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을 통해 현재 활발하게 창작에 나서고 있는 젊은 안무자들의 움직임과 안무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신체의 사용이 뛰어난 점에 비해 사유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아 작품 제목, 주제, 소재, 음악, 춤 언어 등에 있어서는 한계점을 보였다. 즉 안무자의 순간 반짝였던 무형(無形)의 아이디어가 무대 위에 펼쳐졌을 때, 안무가의 독자적인 춤 언어를 통하여 시공간을 채우지는 못한 것이다. 최근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 주제의 폭넓은 선택과 무대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연출기법이 돋보인다. 그러나 정작 신체를 포함한 춤의 진정성과 예술성은 다소 부진했으며,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안무자의 실제 의도보다 확대된 해석을 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작품 메시지 전달의 약화는 사전에 계획한 무대공연과 달리 TV생중계로 진행된 한계점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최 측에서는 단순한 공연 영상의 송출 및 기록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서기 위해 12명의 안무자들이 ‘영상 시놉시스’를 작성하는 등 공연 영상 속에 안무자의 의도를 내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긴 했으나, 무용 공연은 현장예술임을 더욱 실감케 하는 아쉬움이 짙은 공연이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에는 일반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온라인 생중계 공연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실시간으로 보이는 댓글을 통해 일반 관객의 참여도를 높이고 무용 공연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에는 효과적인 시도였으나, 진정한 춤의 질감의 전달과 공유라는 또 다른 숙제를 남겨 주었다. 영상을 비롯한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공연 홍보와 기록의 확대를 위한 더욱 다양한 시도와 더불어 이를 위한 전문가 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참여_김향, 서현재, 오정은, 윤단우, 이지현, 장지원

대표 교정_이지현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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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들 _ 편집주간 최해리 / 편집장 장지원 / 부편집장 윤단우 / 편집자문 김호연, 이희나, 장승헌
시각 및 이미지 자문 최영모 / 기자 김현지, 윤혜준 / 웹디자인 (주)이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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