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에는 4대 항쟁이 있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10월 부마 민주항쟁, 1980년 5·18 광주 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이 그것이다. 4대 항쟁 말고도 압제에 항거한 사건이 있었지만, 이들 넷을 특별하게 다루는 이유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압제에 항거한 점과 항쟁의 결과로 사회변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5·18 광주 민주항쟁은 시기적이나 의미상으로 앞선 4·19혁명과 부마항쟁의 연속선상에 있고, 이후 6월 항쟁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군부가 계획적으로 개입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살상한 점, 그 살상을 지시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과제와 부채를 남기고 있다. 그렇기에 5·18 광주 민주항쟁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 비극이다. 사회적 비극은 개인 비극의 총화이지만 개별 비극의 합보다 크고 깊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희생자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이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대미문의 비극 앞에 선 예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접한 비극을 대하는 예술적 대응은 이전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낯선 비극을 대하는 예술적 고민의 흔적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5·18 광주 민주항쟁 40주년이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오월평화페스티벌’ 중 <십일, 맨드라미꽃처럼 붉은>(아래 ‘십일’)은 1980년 5월18일에서 27일까지 열흘을 다룬다. 정확히 말하면 그 피비린내 나는 열흘을 서사화한 것이 아니라 열흘을 소재로 5월 광주의 아픔을 추상화했다. 보통 역사적 사건을 작품화·서사화하기 위해서는 사건과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이 말은 작품화할 사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충분할 때 적용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가 없으면 자칫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에 빠져 정작 다루어야 할 주제를 놓칠 우려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예 역사적 사건과 별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작품을 짠다면 거리두기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이 경우 사건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 단순하게 소재화하고 주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구성의 완결성에 매달리게 된다.(구성의 완결성을 확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이 본질이 아닐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건(역사)을 다룰 때 치열한 이해와 공감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십일>은 1장 ‘왜?-통곡하는 그녀들’, 2장 ‘제발-남겨진 자들의 두려움과 저항’, 3장 ‘마비-그날이 오면 다시 찾아오는 아픔’, 4장 ‘맨드라미처럼 붉은-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애도’, 5장 ‘흰-씻김과 해원’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구성만 보면 5·18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굿 형식을 차용한 대극장용 작품과 다를 것이 없다. 일반적인 사랑과 이별의 슬픔, 아픈 과거를 소환하는 이야기 등 광주가 아니라도 적용 가능할 정도로 두루뭉술하다는 뜻이다.
인트로 혹은 프롤로그 격인 1장부터 무용수들은 이미 슬프다. 기성품처럼 완성 된 슬픔과 아픔을 끌고 나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녀’에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이 어떤 의미인지, 광주의 아픔이 통곡하는 '그녀'들의 아픔으로 대상화 할 수 있는 것인지, 왜 슬픔은 여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지, 광주의 슬픔이 ‘그녀’로 한정할 수 있을 만큼 사적인 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2, 3장까지 온통 작위적 슬픔뿐이다. 군무는 기계적이고 무용수들의 무리한 슬픈 표정은 신파조에 가깝다. 카메라 앵글이 그 표정을 잡아당겨 담기까지 하니, 슬픔의 강요는 도를 넘는다. 차라리 신파라면 아예 직접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솔직 담백함이라도 있을 텐데, 의미를 읽기 어려운 몸짓과 구도에서 주제를 대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고, 작품 톤의 변화 없이 평면적으로 흘러갔다.
4장에 이르면 그나마 끌고 온 아픔과 슬픔을 구성면이나 의미 면으로 갈무리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애도하고 해원 하려 한다. 급작스러운 작품 톤의 변화가 당혹스럽다. 학살의 책임자가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는, 여전히 진행 중인 5·18 광주 민주항쟁을 섣부르게 애도하고 얼른 해원해서 끝내려는 듯하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모든 이가 빚진 80년 5월 광주의 희생과 아픔이 식상한 춤 한 자락으로 씻길 일은 아니다. 마치 성가시고 귀찮아서 급하게 해원하고 마무리 지으려는 듯 4장과 5장은 뜬금없다. 3장까지 평면적으로 무리하게 끌고 온 작품의 호흡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5·18 광주 민주항쟁 40주년 추모 작품으로서 <십일>의 의미를 구태여 찾는다면 39년 동안 남의 일로 버려두고 모른척한 광주 민주항쟁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의 큰 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것과 서울시와 광주시가 함께 준비했다는 의미 정도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 광주에서 단 세 명이 참여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광주 없이 광주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사업을 두고 세간에 떠도는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는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한 ‘형식이 내용을 지배 한다.’라는 헤겔의 말을 되새기는 정도로 저간의 논란에 대한 의견을 갈음한다.
홀로코스트를 9시간 3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쇼아 Shoah>로 다룬 클로드 란츠만(Claude Lanzmann, 2018년 타계)은 광주를 다루어야할 우리 예술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란츠만은 <쇼아>를 위해 12년 동안 유대인과 가해자를 350시간 정도 인터뷰했다. 란츠만은 홀로코스트가 결코 재현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기억, 경험, 목격을 충실히 담아 사람들이 사건을 마치 목격하는 듯한 감정이 들게 했다. 감상적이지도 계몽적이지도 않았다. 기존 다큐멘터리와 다르고, 선전 영화도 아닌 단지 ‘목격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란츠만은 하나의 예이다.
우리 사회에도 5·18 광주 민주항쟁, 세월호 참사 같은 재현 불가능한 사건이 있다. 우리의 예술적 고민은 이것을 어떻게 감당 할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하던 대로는 아니지 않겠는가.
(사족을 단다면, 무용공연 중계할 때 카메라 앵글 문제를 언젠가 다루었으면 한다. 움직임에서 중요한 것은 표정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의 관계다. 제발 얼굴 클로즈업이나, 바스트 샷을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5·18 40주년 서울기념위원회 사무국
만드는 사람들 _ 편집주간 최해리 / 편집장 장지원 / 부편집장 윤단우 / 편집자문 김호연, 이희나, 장승헌
시각 및 이미지 자문 최영모 / 기자 김현지, 윤혜준 / 웹디자인 (주)이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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