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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020.05.31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공연 3 - 공장 노동자로 다시 태어난 지젤, 아크람 칸 안무의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 〈지젤〉

                                                      ⓒ Laurent Liotardo


LG아트센터의 디지털 스테이지 ‘CoM On’


  현장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공연예술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히 초토화라는 표현이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공연들은 기약 없이 연기되거나 공연되더라도 무관객으로 온라인에만 중계되는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5월이 되면서 서서히 공연을 재개하기 시작한 다른 공연장들과 달리 LG아트센터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어려워짐에 따라 10개 단체가 11편 공연을 올리기로 예정되었던 올해의 기획공연이 2개만 남기고 모두 취소되며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상반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11년 만에 국내 관객들과 다시 만나는 에이프만발레단, 6년 만의 내한이 예정되어 있던 아크람 칸, 첫 내한을 앞두고 있던 크리스탈 파이트, 지난해 <백조의 호수>에 이어 올해는 국내 초연작인 <레드 슈즈>를 선보일 예정이었던 매튜 본 등 올해 기획공연 라인업에서는 무용 공연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올려놨던 터라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다.


  LG아트센터 측에서는 이렇듯 공연 취소로 아쉬움에 잠겨 있을 관객들을 위해 디지털 스테이지 ‘CoM On(CoMPAS Online)’이라는 타이틀로 온라인 공연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연은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네이버TV를 통해 한 편씩 상영되며, 해외 공연은 24시간, 국내 공연은 48시간 동안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 Laurent Liotardo

  5월과 6월 두 달간의 상영 계획이 먼저 발표되었는데,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아크람 칸 안무의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 <지젤>, 역시 아크람 칸이 안무한, 솔로작 <데쉬>를 가족극으로 리메이크한 <초토 데쉬>, 크리스탈 파이트가 안무와 연출을 맡은 <베트로펜하이트>, 알렉산더 에크만 안무의 노르웨이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존 노이마이어 안무의 함부르크발레단 <니진스키> 등 흥미로운 무용 공연이 다수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제외하면 국내 무대에서 아직 올려진 적 없는 공연들로, 대극장 장편 발레의 경우 내한공연 시장의 위축으로 앞으로도 실연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아 이번 온라인 상영이 더욱 반갑다.



타마라 로호 X 아크람 칸: 지젤, 공장 노동자가 되다


  지난 5월 22일에는 아크람 칸이 안무한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의 <지젤>이 상영되었다. 상영작은 2017년 10월 리버풀엠파이어시어터에서 공연된 실황으로, 영상물로도 출시되어 있다.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주역 수석무용수(Lead Principal)인 타마라 로호가 주인공 지젤을, 퍼스트 솔리스트 제임스 스트리터가 알브레히트를, 주역 수석무용수 제프리 씨리오가 힐라리온을, 퍼스트 아티스트(타 발레단의 코리페에 해당) 스티나 콰주베르가 미르타를 맡았다.


  로호는 2014년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 무대에서 올려진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공연 <Lest We Forget>에서 <Dust>라는 작품으로 칸과 협업하며 전쟁 시기에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무대 위로 올린 그의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 <지젤>의 새로운 안무를 의뢰했다. 클래식 발레단과 전막 작품을 만드는 첫 번째 도전이 된 이 작업에서 칸은 <지젤> 원작에서 포도수확제가 열리던 라인강 근처 시골마을을 난민들이 일하는 현대의 공장으로 배경을 옮기고 귀족과 평민의 신분 차이에서 비롯된 사랑과 배신과 구원의 드라마에 <Dust>에서 다루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입혔다.


  원작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윌리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통해 신비화․낭만화 되었다면 칸의 안무작에서는 공장 노동자와 지주 계급, 이주난민과 토착민으로 계급이 갈라지며 보다 첨예한 갈등을 보인다. 지젤은 춤을 좋아하는 시골 소녀가 아니라 의류공장에 고용된 이주난민 노동자이며 알브레히트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위장취업한 지주 계급 남성이다.



                                                     ⓒ Laurent Liotardo


  1막에서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로 직장을 잃고 좌절감에 빠져 있지만 이는 지주들에게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지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키지 않는 춤을 추어야 한다. 가운데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립하는 두 계급 간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은 힐라리온이다. 힐라리온은 바틸드가 내미는 장갑을 지젤이 거부하자 대신 장갑을 받고 그녀의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도록 강요한다. 지젤이 그것마저 거부하자 그 대신 다른 노동자들의 머리를 강제로 숙이게 해 노동자들에게 복종을 이끌어내며 자신을 중간자 입장에 위치시킨다. 이로써 힐라리온은 지주들에게는 고개를 조아리는 피지배계급인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하는 준지배계급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1막 후반부에 이르러 바틸드가 입은 드레스는 지젤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아닌 절망의 원인이 되는데, 지젤은 바틸드의 드레스가 지금은 폐쇄된 공장에서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알아보고 그 충격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바틸드의 드레스는 지젤에게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은 입을 수 없는, 넘지 못할 계급이라는 벽을 확인시켜주고 이는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패스트패션 의류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현실과 겹쳐진다.


  2막에서 원작의 미르타와 윌리들은 죽은 뒤에도 떠나지 못하고 유령으로 공장을 떠도는 여성 노동자들로 표현되는데, 이는 다시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의류공장 붕괴사고와 연결된다. 당시 사고에서 사망자는 천여 명이 넘었으며, 그 대부분은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작품을 안무한 칸이 방글라데시 출신인 것은 작품 속 폐쇄된 의류공장과 현실의 붕괴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라 할 것이다.



공장을 떠도는 유령들, 계급이라는 벽


  팀 입이 디자인한 의상이나 세트 디자인은 작품을 떠받치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이었다. 원작에서 지젤의 마을 친구들이 입었던 색색의 던들이 군무의 표정을 더욱 활기 있고 화사하게 만들었다면 주름이 섬세하게 잡힌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복 치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풍부하고 깊어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장식 없이 단순한 노동자들의 의상과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장식적인 지주들의 의상은 대립되는 두 계급을 매우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죽은 노동자들의 유령이 떠도는 공간이 된 의류공장을 표현한 미니멀한 무대세트는 아름다우면서도 음산했고, 빈첸초 라마냐가 편곡한 아돌프 아당의 음악은 원곡의 화사함이나 드라마틱함 대신 음울하고 기괴한 정조로 작품 전반을 떠받치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다소 아쉬운 점은 움직임이었다. 발레 포지션으로 트레이닝된 무용수들의 몸에 카탁의 움직임을 이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지만 그래서인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신중해 보였고 칸이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였던 비슷한 안무가 자주 중첩되기도 했다.


  발레는 남성 안무가와 여성 무용수라는 성별 이분법적 태도가 매우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장르다. 무용가들 전체로 보면 남성은 매우 소수이나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절대적인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클래식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컨템포러리 영역에서조차 남성 안무가의 작업이 더 활발하다.


  그동안 <지젤>을 컨템포러리 발레로 재안무하는 도전에 나선 이들은 모두 남성 안무가들이었다. 지젤을 정신병원으로 보낸 마츠 에크, 원래의 이야기에 프리퀄을 붙인 그램 머피, 그리고 지젤을 알브레히트의 아이를 홀로 낳아 키우는 한부모로 만든 제임스전까지 안무가들 각자의 다양한 해석이 무대에 올려졌지만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배신당하고 고통을 받는다는 원작의 틀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는 클래식 원작의 힘이 그만큼 세다는 뜻인 동시에 남성 안무가들의 상상력 안에서 여성의 일생일대의 고통은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데에서 온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을 다룬 예술작품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경우 그 비극은 대부분 여성의 죽음이며, 여성을 죽음으로 이끄는 동력은 남성의 사랑을 잃는 데에서 출발한다).



                                                          ⓒ Laurent Liotardo


  아크람 칸은 지젤의 절망을 신분을 속인 알브레히트가 아닌 바틸드의 드레스로 옮겨놓으며 이것이 신분의 벽을 극복하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을 좌절시키는 계급에 관한 이야기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젤이 만든 드레스는 자신이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주 계급 여성이 입고 자신 앞에서 그 계급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지젤은 자신이 만든 드레스 앞에서 자신이 속한 계급을 다시금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다. 이는 표면적으로 신분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현대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첨예한 주제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숲으로 들어오는 남성의 목숨을 취하는 원작의 윌리들과 달리 폐쇄된 공장을 떠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유령인 칸의 윌리들은 그 원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윌리들이 물러가고 알브레히트 홀로 남은 높다란 벽 앞에서 클래식 작품의 낭만을 거두고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무대 위로 가져온 창작자의 묵직한 질문이 던져졌다.



글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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