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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016.10.02
항상 새롭게 하라, 또 그 담론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도전 -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현대무용단 퍼포먼스 〈예기치 않은〉
 모더니즘은 ‘항상 새롭게 하라’라는 기본적 모토가 있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독창성에 바탕을 두어 창조적 행위에 주력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방가르드와 결합하며 더욱 빛을 발하였고, 현대사회를 발전시키는 예술운동으로 자리한다. 이에 반해 세기말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이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른다. 이들은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이후에 무엇이 새롭겠느냐?’는 생각으로 탈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무장하였고,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활동으로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사조가 문턱에서 충돌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그 참신성이나 탈중심적 행위로 인해 현대예술의 여러 기호들이 창출되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나 백남준이 참여한 플럭서스, 비디오아트도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의 특징은 여러 장르가 결합하여 시너지를 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융복합이 장르 간 정반합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통섭은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이어지는데,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현대무용단이 함께 한 퍼포먼스 ‘예기치 않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6.8.17-10.23)도 그러한 대표적인 만남으로 주목할 수 있다. 이 행사는 매년 이루어지는 다원예술프로젝트의 하나로 장르 간 교류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젊은 작가들의 치기어리지만 창의적 행위를 지켜보는데 의미가 있다. 올해는 ‘예기치 않은’이란 제목에서처럼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우연성, 즉흥성, 비결정성, 불확정성에 바탕을 두어 13개 팀에 의해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이 중 옥정호의 <미술관 무지개>는 무지개로 상징되는 의상을 입은 두 명의 무용수(김도연, 김봉수)가 미술관의 곳곳을 다니면서 무지개의 형상을 움직임으로 표현한 퍼포먼스이다. 야외에서 시작된 퍼포먼스는 미술관의 여러 공간을 다니는데, 관객은 저 너머 무지개를 시원을 쫓아가듯 행위를 따라가고 있으며 그 주위의 여러 전시나 환경도 새롭게 느끼며 순간을 공유한다. 또한 무지개 행위도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각각의 공간에서 다른 움직임으로 표현되어 관객에게 새로운 느낌의 무지개를 바라보게 만든다.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는 희망의 상징으로 비추어지기도 하고, 이젠 무지개가 뜨는 것이 뉴스의 중요 기사로 오를 만큼 각박한 세상에서 위안거리로 수용된다. 그렇지만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로 표현된 무지개는 관객에게 새로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냥 몸짓의 하나로, 무의미한 행위로 수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결국 이 퍼포먼스가 지향하는 무정형성의 기대지평 확산 혹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퍼포먼스였다는 측면에서 대중에게는 여러 의미를 전해 준다.


 또한 진달래․박우혁의 <움직이는 현재>는 앞서의 <미술관 무지개>가 대상을 표현하려 하였던데 반해 설치된 미술에서 연결된 시간과 운동 그리고 찰나 속에서 여러 의미를 찾으려 한 작품이다. 특히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운동성은 퍼포먼스를 통해 구현되었고, 규칙성과 부정확성의 소리가 공간 안에서 합을 이루며 시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스티브 컨이 말한 “사람들은 저마다 상이한 시간적·공간적 경험을 하는데 비록 무의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관념을 갖게 마련이라는 것”이라는 명제를 그대로 보여준 행위예술로 구현되었다. 이렇게 이번 프로젝트는 ‘예기치 않은’이란 주제로 다양한 퍼포먼스가 대중과 소통하려 한다. 이러한 소통 작업은 결국 무용의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자극과 새로운 모티프의 발견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생산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몇몇 작품들을 보면 기법에서도 특별한 것이 없고, 참신함도 발견하기 힘든 경우를 종종 본다. 현대무용이라고 하지만 그게 그것 같고, 오히려 실험성은 점점 퇴보하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일상을 묘파하거나 사회의식을 반영하여 대중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우도 쉽게 찾기 힘들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혹은 예술이 새로움을 주기에는 사회가 너무 무뎌져 있고,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선언처럼 이제 더 이상 새로움도 자극도 나올 수 없음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오히려 모더니즘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 혹은 1960-1970년대를 반추하며 그 시기 혁명적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을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적인 실험”이라고 말 한 것처럼 공연을 위한 공연이 아닌 실험성을 통해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이 오히려 지금 이 시대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백남준의 퍼포먼스가 지금 보아도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감흥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전정신과 참신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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