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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017.05.02
내 안의 욕망을 진단해 본다 - 〈Being Faust〉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분량이 워낙 긴데다 내용도 방대하고 깊어서 독문학 전공자조차도 완독을 한 사람은 많지 않다. 독자들에겐 그저 난해하고 지루한 고전일 수 있는데, 게임극 <Being Faust>에 들러 게임을 한 판 하고 나면 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전극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만다. <Being Faust>는 고전 <파우스트>를 ‘게임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몰입형 게임극”이라고 소개된 것처럼 기존의 관객참여 공연과는 사뭇 다르게 관객을 온전히 ‘몰입’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흥미위주의 가벼운 놀 거리는 아니다. 텍스트를 제대로 분석하고 정리해서 설계하여 고전극의 감상과 거의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 작품의 폭이 넓고 깊은 만큼 인생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어 놀이로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이 작업을 굳이 연극이나 공연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다. 제작자인 ‘놀공’의 작업 취지와 경향을 볼 때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문화복합 장르의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놀공’의 모토인 ‘놀이’의 개념도 그렇거니와 그들의 ‘고전 프로젝트’의 관객 체험은 연극의 ‘놀이성’을 제대로 실현했다고 확신한다. 동시대 관객과 고전극의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기꺼이 손꼽을 수 있다.


 <Being Faust>는 관객이 파우스트의 상황을 체험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많은 블로그에서 이 게임이 소개되었기에 필자의 체험 중심으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공연이 있는 날, 관객은 문자를 받게 된다.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면서 휴대전화에 게임 앱을 내려 받을 수 있게 안내하고 검은색 옷을 입고 와 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물론 의상 때문에 입장을 거절당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관객의 참여는 공연 전부터 시작된다. 공연장은 ‘상점’으로 불린다. 관객들이 욕망을 구입하는 상점이다. 입장하면 아이디를 부여받고 12장의 가치 카드를 받게 된다(사랑, 가족, 아름다움, 젊음, 권력, 명예, 쾌락, 돈, 발전, 지식, 믿음, 자유). 그중 내가 중시하는 가치 6개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리고 여섯 개의 가치에 순위를 정해 입력한다. 이 과정이 끝나고 3층으로 올라가면 12개의 가치에 따른 하위 목적들이 벽과 기둥에 적혀있다. 거기 적힌 단어를 원하는 대로 입력할 수 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관객을 갈등하게 하여 은밀한 욕망을 확인케 한다. 예를 들어 ‘출생’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면, ‘다음 생애에 아인슈타인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전지현으로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는다. 질문은 이렇듯 아주 극단적이다. 그밖에도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억제하고 살았는지를 발견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많다. 여기서 수많은 욕망을 들키고 나면 내가 선택한 가치의 순위와 내 속마음의 진정한 순위를 비교해 준다. 뜨끔하다.


 여기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하다. 안내를 받고 욕망의 상점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상점에는 파우스트 작품 속의 수많은 문장이 걸려있다. 자신의 가치와 동일한 범주의 문장을 찾아 그 번호를 입력하면 가격이 책정되고 그것을 사게 된다. 이것을 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전화번호부에 뜨는 자신의 친구들을 선택하여 파는 것이다. 원래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지만 21세기 파우스트는 영혼 대신 자신의 소중한 친구들을 판다.

 얼마나 많은 친구를 팔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지가 이 게임의 목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스크린에는 관객이 선택한 문장들이 계속 올라오고, 관객들은 밴드의 연주에 음악을 들으며 정신없이 친구들을 팔아 욕망을 채우기에 바쁘다. 중간에 카드 교환 타임이 있어 운수를 노려볼 수 있는 묘미도 있다. 게임이 종료되면 최종 승자가 결정되어 상을 받는다. 그리고 각자 정산서를 출력하여 게임 진행 상황과 결과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문장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예컨대 “하느님, 제 사랑하는 남편을 용서해 주소서”, 이 문장을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선 ‘가족’이라는 가치로 분류했다. 무엇이 정답이냐 정확한 문장 분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해석이 가능한 문학의 다의성을 생각할 여지도 준다. 그 밖에도 좀 단순하게 분석해서 분류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의구심을 갖는 것도 관객의 오락이자 체험하는 관객의 생산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관극 후기를 보니 게임이 끝난 후 좀 더 작품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제기됐다. 그러나 괴테가 많은 여인을 사랑한 열정 외에도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궁정극장의 극장장 자리에서 명예와 권력에 대한 갈등도 컸던 사람이었던 만큼, 그의 전 생애의 번민이 담긴 이 작품에 대한 독해는 우리가 치열하게 욕망 채우기에 바빴던 그 체험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작가의 딜레마를 체험하는 것, 그 이상의 지적 욕구는 책을 읽으면서 채우면 좋을 것이다.

 그동안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시도했던 공연들이 아주 형식적으로 끝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관객의 호기심만 끌고 실망만 주는 경우가 많았다. 시스템이 철저하게 구축되지 않으면 이러한 도전은 실험으로 끝나고 만다. <Being Faust>는 사전 준비가 잘 되어서인지 진행에도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대기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극단 나나다시 배우들의 노력도 돋보였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놀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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