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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018.04.30
고전과 실제 사건이 만났을 때, 새로움과 게으름 사이 - 마이클 키간-돌란의 〈백조의 호수〉

 고전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것은 창작자들에게는 답이 보이지 않는 난제이자 매혹적인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때로는 원작보다 더 빛나는 명작이 탄생해 찬사를 받는가 하면 원작의 명성에 업혀가는 게으른 범작으로 실망을 안기기도 한다. LG아트센터에서는 아일랜드 안무가 마이클 키간-돌란이 2000년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존 카티 사건’을 클래식발레 <백조의 호수>의 틀 위에서 해석한 새로운 <백조의 호수>를 선보였다.

 주인공 지미는 서른여섯 살의 백수 청년으로 병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정부의 주택 공영화 정책은 모자의 단조롭고 희망 없는 삶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새로운 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낡은 집을 허물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집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지미의 우울증은 깊어지고 그는 자살하러 간 호숫가에서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신한 피놀라와 그녀의 동생들을 만난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새로운 집에서 아들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집의 철거를 위해 출동한 경찰들과 대치하던 지미는 다시 호숫가로 향한다.

 공연을 기획한 LG아트센터 측에서는 작품 속에 세 가지 이야기, 발레 원작인 <백조의 호수>와 백조가 등장하는 아일랜드 신화 <리어의 아이들>, 그리고 아일랜드 롱퍼드에서 일어난 ‘존 카티 사건’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며 이를 눈여겨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제목은 <백조의 호수>지만 주인공 지미가 호숫가에서 백조들을 만난다는 설정 외에 원작의 자취를 찾기는 어려우며, 음악 역시 차이콥스키의 원곡이 아닌 3인조 밴드 슬로우 무빙 클라우드가 연주하는 아일랜드와 노르웨이의 전통음악으로 채워졌다. <리어의 아이들> 역시 마법으로 인간을 백조로 변하게 했다는 기본 설정을 빌려왔을 뿐 키간-돌란의 새로운 <백조의 호수>와 연관성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이러한 설정은 발레 원작이 이미 채택하고 있는 설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보가 홍보의 첨단에서 강조된 것은 아일랜드의 현실을 무대 위에 올리는 데 있어 러시아 발레 원작과 아일랜드에도 존재하는 백조 신화의 결합을 꾀했다는 정체성 찾기로 볼 수 있다. 즉,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국적 재해석’의 아일랜드 버전인 셈이다.


 아일랜드 안무가가 아일랜드의 현실과 신화를 접목시켜 만든 작품이지만 작품 전반에는 한국 관객들의 공감을 살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공권력에 의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일랜드의 36세 백수청년의 초상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것이다. 재개발로 살던 터전을 잃고 타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겪은 철거민들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기회를 빼앗기고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청년 실업난은 우리에게도 매우 심각한 일상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키간-돌란의 <백조의 호수>는 비극적인 현실을 6kg에 달하는 하얀 깃털이 흩날리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비극을 흥겨운 한바탕 굿으로 위로하는 ‘한국적 제의’와 매우 닮은꼴이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공권력으로 인한 피해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작품을 만든 안무가는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바다를 건너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니 동시대와의 소통에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작품은 <백조의 호수>라는 제목으로 무대로 옮겨진 ‘존 카티 사건’일 뿐 사건에 대한 창작자의 시선이 드러나거나 발레 원작과 현대 아일랜드의 사건이 매끄럽게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현대의 영국 왕실을 무대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았던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나 현대인의 정신병리학적 문제를 꼬집은 것으로 평가받은 마츠 에크의 <지젤>에서 현대의 문제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떠올려보자) 창작자는 신문지상에 보도되지 않았을 존 카티 집안의 내밀한 풍경, 지미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생일파티에 공을 들이지만 이 생일파티는 집을 철거하기 위해 찾아온 공권력과 함께 새로운 집에서의 삶을 원하는 어머니의 열망을 드러내며 지미에게 이중의 폭력으로 작용한다. 작품 내에서 지미의 우울한 내면은 이 폭력들이 공들여 묘사되는 만큼의 배려는 받지 못하고 있다.




 안무가는 <백조의 호수> 원작 안에 내포된 왕자의 우울증과 잔인한 폭력과 여성혐오를 지적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로운 작품을 통해 고발하는 것이 아닌 그 요소들을 차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성직자의 성추행으로 인해 자매들과 함께 백조로 변하는 벌을 받아 목소리를 잃은 피놀라는 성폭력 피해자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 아닌 주인공 지미에게 구원의 여신이 되는 부수적인 역할에 머문다. 안무가도, 주인공도, 피놀라를 성추행한 목사도 그녀의 피해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피놀라는 지미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기 위해 (그 희망조차 지미의 죽음으로 실패로 끝난다) 백조가 되어야 했으며 백조가 되기 위해 성직자에게 성추행을 당해야 했다. 피놀라가 극중에서 자신의 서사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간-돌란은 90년대에 창단한 패뷸러스 비스트 댄스시어터에서부터 현재의 차크 도사에 이르기까지 무용과 연극, 음악이 결합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지난해 영국 내셔널 댄스어워즈에서 베스트 현대무용 안무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출연자가 성직자와 변사 등 멀티맨으로 활약한 마이클 머피와 지미의 어머니 버나뎃 엘리자벳 두 배우라는 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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