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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18.06.11
가족극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 - 스코틀랜드국립발레단 〈헨젤과 그레텔〉





‘가족극’이라는 특수한 장르


 사전적 의미에서 ‘가족극’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만하여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 좋은 작품 또는 가정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나 연극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서 말하는 ‘가족극’은 대체로 전자의 의미로 통용되며, 현실에서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유치하거나 조악하게 만든 작품들이 판을 친다. 해서 ‘가족극’의 시장은 따로 있는 것으로, 이 시장의 소비자들인 ‘가족관객’은 기존의 공연시장을 구성하는 핵심관객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 시장의 핵심관객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뉘는데, 직접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관객들은 어린이들이지만 작품에 관람료를 지불하는 소비자들은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다. 자녀가 없는 딩크족 부부나 장성해 독립한 자식들과 노년의 부모들은 이 ‘가족관객’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가족관객’은 취학 전 연령대에서 초등학생까지를 이르는 어린이 관객들과 그들의 부모 관객들을 가리키며, 이 관객층의 특징은 ‘보는’ 이들과 ‘지불하는’ 이들이 다르다는 점이다.


 때문에 ‘가족극’은 자녀를 가진 부모의 시각에서 어린이들에게 바람직하거나 교훈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내용으로 채워지며, 그 수준 또한 성인의 관점에서 어린이들이 이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선에서 결정된다. 즉, 가족극의 내용과 수준은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허락한 범주,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범주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계가 가족극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들이 유치한 것은 성인들이 어린이 관객들의 눈높이와 이해 가능한 범위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와 같은 확장성과 흥행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컨텐츠는 동화 원작이다.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어린이 대상의 동화 전집 한 질 정도는 갖추고 있기 마련이고, (혹시 그런 형편이 못 되는 가정이라면 이 시장의 소비자에서 제외된다. 이 시장의 상품은 철저하게 부모가 선택해 자녀에게 권해주는 컨텐츠로 상정되고 소비자는 그런 컨텐츠를 구입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녀가 한글을 익히기 전부터 부모가 읽어주어 익숙한 동화는 2차 저작물인 공연으로 만드는 데 가장 용이한 컨텐츠다.






어린 주인공들의 용감한 모험담


 LG아트센터에서 지난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된 스코틀랜드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은 상술한 ‘가족극’ 시장에 매우 적합한 작품이었다. 작품은 원작동화보다 훔버딩크의 오페라의 설정들을 대거 빌려왔는데, 그래서 동화 속 잔혹한 설정들은 많이 사라지고 가족극으로서의 면모가 보다 뚜렷해졌다.


 대표적인 가족 오페라극으로 손꼽히는 훔버딩크의 오페라는 가족극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각색되어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지만 발레는 오페라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인공 헨젤과 그레텔의 시각에서 극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원작에서 가난 때문에 남매를 숲에다 버리는 역할인 계모는 오페라에서는 친모로 바뀌어 역시 가난에 지쳐 아이들에게 저녁거리를 구해오라고 숲으로 보내는데, 그림형제의 원작이 발표된 것이 1812년, 훔버딩크의 오페라가 초연된 것은 1893년이지만 이 가난이라는 키워드와 마녀의 존재에는 중세유럽을 강타한 대기근과 마녀사냥의 끔찍한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원작에서 남매가 마녀의 보물을 훔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결말도 부유한 독신녀이거나 과부들이 대다수였던 중세의 마녀들이 처형당한 뒤 그 재산이 몰수된 역사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스코틀랜드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CEO로 작품을 안무한 크리스토퍼 햄슨은 헨젤과 그레텔 남매를 집에서 쫓겨난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의지로 가출을 감행하는 작은 영웅들로 바꾸었다. 그리고 남매의 부모 역시 가난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동화 속 부모가 아니다. 그들은 일에 치여 사느라 항상 바쁘고 피곤한 현대의 부모들이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통제하려고 드는 현실의 부모들이다. 그들은 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리지 않고 아이들을 잃은 다른 부모들과 함께 숲으로 찾아와 마침내 헨젤과 그레텔을 찾아낸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도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물리치는 원작의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잡혀갔던 친구들을 구해내어 우정을 강조하고 걱정하던 부모를 다시 만나 가족애를 확인하는 따뜻한 마무리로 어린이들의 성장담이나 모험담으로 손색이 없다.






 햄슨은 이 작품을 위해 스코틀랜드 전역을 돌며 학교 창작 워크숍이나 숲속 공연 프로젝트 등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이를 통해 수집된 의견들을 작품에 반영했다. 스코틀랜드국립발레단이 지난해 영국 시어터어워즈에서 무용 부문 작품상 외에 마케팅/관객개발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마녀에게 잡혀간 마을 친구들이 모래의 요정이 헨젤과 그레텔에게 금빛 모래를 뿌려 잠들게 한다거나, 이슬의 요정이 이들을 깨우는 등 오페라에 나오는 설정들을 가져온 연출은 환상적이고 숲속에서 벌어지는 연회 장면은 꿈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발레극임에도 이렇다 할 발레 장면이 없어 춤으로서의 발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다는 점, 현대적인 각색에서도 마녀를 곱추로 설정해 장애인 혐오를 피해가지 못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아쉬움에도 이번 스코틀랜드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은 유치함과 조악함이 가족극의 한 특징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서, 가족극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어린이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이상을 어떻게 극에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객석을 채운 가족관객들의 만족도 못지않게 가족극을 기획하는 공연 관계자들의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글_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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