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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018.11.06
여성 무용수들의 입으로 여성을 이야기하다 - 고블린파티 <은장도>

세 명의 여성 무용수가 등장한다. 공연의 주요 소품이 되는 박스를 들고 등장한 그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동네, 아마도 이웃집에 사는 누군가인 그는 사고로 죽은 듯하다. 사고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목소리는 밝고 활기차다.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이야기들을 저렇게 즐겁게 하나 하고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인상을 받을 정도다. 고블린파티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무대에 올린 <은장도>(1018-19,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이야기다.


  그러나 세 명의 무용수가 만든 유쾌한 초반 분위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곧 등장한 네 번째 무용수의 독백 같은 대사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게 된다.

 

고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지은 죄도 없이 이렇게 죄인으로 살아가야대노

참말로 내 어데라도 들따보고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라카이

내 이래가꼬는 어데 한 눈 팔 틈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네

정절을 지키느기 개뿔, 예절도 없는 개잡년 되기 딱 좋겄네 딱 좋겄어

내 비록 미망인이라도 지나가는 남정네,

그 남정네 옷고름만 스쳐도 치맛자락이 넘실넘실거린다 카이

그캐서 그라는데, 내 여섯 일곱 살 때 있다 아이가

울 엄마가 내한테 호신용으로 이거 이 은장도 줬거든

그래서 이걸로 억수로 신나게 내 허벅지라도 찔러볼라꼬

그라믄 누 알겠나, 억수로 좋아가꼬 훨훨 날아가뿔지

염병. 아따 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말해볼까?

 

  네 번째 무용수의 독백 속에 등장하는 은장도는 작품의 제목이자 네 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정된 여성들만의 고립된 공간, 그리고 여성들의 소외와 고립을 야기시키는 여성들에 대한 억압 그 자체를 상징한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은장도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까. 여성이 정조를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여성은 혼인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키다 혼인으로 맺어진 지아비에게 일평생 정조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던 시절, 은장도는 그 정조의 상징이었다. 여성은 정조를 잃느니 은장도로 목숨을 버려서라도 정조를 지켜내야 했다.


  고블린파티의 네 여성 무용수들은 역사와 함께 사라져 박물관에 들어간 줄 알았던 이 은장도를 다시 현대로 불러낸다. 그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지 않고 엄마가 준 호신용 은장도로 허벅지라도 찔러보겠다고 한다. 누가 알겠나. 생각지도 못한 쾌감이 찾아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지. 그들은 은장도를 통한 전복을 꿈꾼다.






  대사가 극을 이끄는 공연이 움직임이 부실해지기 쉬운 것과 달리, 네 무용수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들이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어필한다. 그들은 고립을 피하기 위해 몸과 몸을 잇거나 겹쳐 연대하며, 욕을 하거나 화를 내고 랩을 하고 노래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다. 은장도 뒤에 숨어 있지 않는다.


  인용한 것과 같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대사를 담당한 무용수는 정조에 매여 있는 한스러운 여성의 운명을 한탄하다가 이 모든 것이 억수로 옛날 말 같다고 말하며 안 글나?” 하고 요즘은 안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다른 무용수들은 안 글타!” 하고 큰소리로 부정한다.







  은장도에 대한 해석은 신선하고 무용수들의 랩과 대사는 객석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고 움직임은 재빠르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안 글나?”에 대한 대답으로 안 글타!”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관객들은 무용수들이 왜 안 글타!”라고 대답하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옛날에 은장도로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던 것처럼 여성을 억압하고 그런 일은 없지 않아?”라는 의미의 질문으로, “억수로 옛날 말 같다. 안 글나?”라고 묻기에는 옛날이 아닌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안 글타!”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에는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관객들은 그 어떻게무엇을 무대에서 볼 수 없다. 무용수들은 정작 은장도에 대해 공연 내내 말하면서 은장도가 옛날 말이 되어버린 현재를 놓치고 있다.





  이 억수로 옛날 말 같다. 안 글나?”라는 질문과 안 글타!”라는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정조로 통용되며 성범죄 피해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면, 현대에 와서는 과거 정조가 놓이던 자리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달라진 단어가 놓여 성범죄 피해자를 향해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데 어떻게 강간을 당할 수가 있느냐며 피해 사실을 부정당하는 논리로 이용당하고 있다. 여성을 둘러싼 억압은 좀 더 정교해졌을 뿐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은장도>는 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여성의 현실을 안 글타!”라는 일갈로 간단히 압축해버린다. 네 명의 무용수들이 긴밀하게 쌓아 올려가던 감정들은 꼭대기에 이르러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가라앉고 만다.






  그동안 무용작품에서 여성을 주제로 말하는 것은 어딘가 철지난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새삼스럽거나 쿨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성 무용가가 뻔히 여성을 주제로 한 작업을 내보이면서도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봐달라는 사족을 덧붙이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젊은 여성 무용수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여성에 대해 말하는 이 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은장도라는 옛날을 건드리되 이를 현재로 가져오지는 않는 안전한 길을 택한다. 안전하다는 것은 현재의 누군가들이 불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들은 말하기에 성공했고 말하기를 들은 아무도 불편해지지 않았으니 모두가 만족스럽다. 그것으로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젊은 여성 무용수들이 안 글타!”라고 외친 것처럼, 여성에 대한 억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그 양상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피억압자들인 여성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러한 현실에서 안 글나?”라는 물음만으로는 안 글타!”라는 답을 이끌어낼 수 없다. “안 글나?”에서 안 글타!”까지, 작품에서도 좀 더 정교한 과정이 필요하다. 여성 무용수들의 입으로 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글_ 편집위원 윤단우 
사진_ 고블린파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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