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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발레 혁신가 미셸 포킨(Michel Fokine, 1880-1942)

  

[사진1] 미셸 포킨의 모습

 

 세계 무용사를 논하고자할 때, ‘발레뤼스(Ballets Russes)’를 빼놓고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발레뤼스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천재적인 안무가 ‘미셸 포킨(Michel Fokine, 1880~1942)’이다. 포킨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러시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연극원을 거쳐 황실발레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졸업하던 해인 1898년에 마린스키극장에 솔리스트로 데뷔하였다. 데뷔 이후 주로 고전발레작품에 출연하여 뛰어난 기량을 뽐내던 그는 25살이 되던 해부터는 주로 무용교육자이자 안무가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그의 창작활동은 당시 최고의 발레 후원자이자 기획자였던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 그리고 그가 창단한 무용단인 발레뤼스와의 만남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진2] 포킨의 대표작 <빈사의 백조>를 춤추는 안나 파블로바


 미셸 포킨의 대표작으로는 당시 최고의 무용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위해 생상스의 <백조>음악을 바탕으로 안무한 2분 남짓의 독무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빈사의 백조>를 비롯하여 <레 실피드>, <장미의 정>, <세헤라자데>, <페트루슈카>, <불새>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드러난 포킨의 안무 성향은 엄격하고 절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졌던 고전발레의 기존형식들을 수정, 보완하여 능동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고전발레의 제약에서 벗어나 표현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즉, 과거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 거부하거나 이와 반대로 무분별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취할 것은 취하는 비평적인 시각을 지녔었다는 점에서 그를 ‘온고지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 평가해볼 수 있다.


 1915년에 포킨은 <런던 타임즈(The Times)>지에 그가 자신의 안무경험을 바탕으로 세운 발레혁신을 위한 ‘5가지 원칙들(The Five Principles)’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제와 일치하는 새로운 동작 구성과 형식을 창조해야 한다. 둘째, 춤과 마임은 주제의 표현과 일관성 있게 사용해야 한다. 셋째, 무용수의 움직임은 몸 전체로 표현되어야 하며, 통상적인 손동작과 마임은 발레의 양식상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넷째, 군무는 무대의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요소로서 줄거리(Plot)를 표현하여야 한다. 다섯째, 무용에 기여하는 타 예술과의 동등한 공동작업으로 하나의 통일된 결합을 이뤄야 하며, 특히 음악은 작품 주제와 일치하게 구성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포킨에 의해 발표된 새로운 발레에 대한 원칙들은 ‘현대발레’라는 새로운 양식의 지평을 열어준 계기로 평가된다.

* 김유미, 김경희(2013), 미쉘 포킨의 「세헤라자데」에 나타난 오리엘탈리즘 양상, 대한무용학회, 71(1), p.14.

 


 

[사진3] <춘향전>을 소재로 한 <사랑의 시련>


 이와 같은 안무가로서 포킨의 왕성한 활동 가운데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가 한국의 <춘향전>을 소재로 삼아 <사랑의 시련>이라는 작품을 안무했었다는 점이다. 1936년 몬테카를로 발레단 초연의 <사랑의 시련>은 한국의 고전설화인 춘향전이 포킨에 의해 각색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해져오는 내용,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지만 문헌자료를 통해 춘향전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음이 분명히 입증됨으로써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작품은 2007년, 국립발레단에 의해 한국적으로 복원되어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사랑의 시련>은 포킨의 주요 대표작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세헤라자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 이국적인 정취에 대한 포킨의 관심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발레뤼스와 함께 승승장구하던 미셸 포킨은 점점 반복, 악화되는 디아길레프와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발레뤼스를 떠나 1932년 미국에 귀화하여 교육자, 안무가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바슬라브 니진스키(Vaslave Nijinsky), 레오니드 마신느(Leonid Massine),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Bronislava Nijinska),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바통을 이어받아 발레뤼스를 20세기 최고의 발레단으로 이끌었는데, 이는 포킨이 발레뤼스의 창단 초기 안무가로서 기존의 틀을 깨는 표현방식의 혁신을 통해 첫 길을 잘 닦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42년, 그는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며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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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oogle.ru/search?q=michel+fokine&newwindow=1&rlz=1Y3YCBW_enRU577RU579&source=lnms&tbm=isch&sa=X&ei=4BhCVb_gIOXqyQOjsIGQDg&ved=0CAYQ_AUoAQ&biw=360&bih=559#imgrc=hux-m74Qr4zo6M%253A%3BS3_mcM-rfGcfwM%3Bhttps%253A%252F%252Ffamousbirthdays.com%252Ffaces%252Ffokine-michel-image.jpg%3Bhttp%253A%252F%252Fwww.famousbirthdays.com%252Fpeople%252Fmichel-fokine.html%3B300%3B300
사진2_
http://blog.aladin.co.kr/common/popup/printPopup/print_Paper.aspx?PaperId=535815
사진3_
http://www.russianballethistory.com/ballethistories.htm 

 


글_ 신찬은(성균관대 예술학협동과정 석사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