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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흔적: 존재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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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이자 댄서이며 영상 아티스트이자 영상 제작사 ‘쿤스트’ 대표인 전혁진. 그에게 붙어있는 여러 활동 영역은 이미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여기에는 경계 짓지 않는 사고가 바탕에 있으며, 그 작품 역시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빛은 무엇을 보여주고, 몸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빛과 몸은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는가. 그의 무용과 영상을 위한 〈Extinction Ver.2〉는 이에 대한 고찰의 결과물이다. 그 고찰에는 시간이 매개한다. 영상은 반드시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 여기서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기억의 정도와 모습을 제어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몸짓은 사라지지만, 영상은 이를 고정하고 기억한다. 소멸하는 몸짓, 그리고 존재의 흔적을 간직한 영상을 병치한다. 존재의 흔적은 소멸을 증언하지 않는다. 즉, ‘존재하였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역명제 또한 증명할 수 없다. 어쩌면 소멸을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음’으로 규정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보지 못했거나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는, 혹은 왜곡된 영상은 과거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고, 급기야 과거의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기까지 한다. 영상이 소멸한 존재에 대한 ‘존재하였음’의 증거가 되려면, 우리는 보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에서 하나의 세상이 태어난다.

의심 많은 인간이기에, 감각과 존재의 간극은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사유로 현상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할 정도. 그래서인지, 나는 두 무용수(전혁진, 최연진)의 몸짓은 온몸의 감각을 통해 존재를 믿고자 하는 인간적 몸부림으로 읽혔다. 느린 속도의 움직임은 감각을 지속시킬 수 있고,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의 밀착을 통해 하나 되기를 추구한다. 반복하며 진행하는 음악 또한 존재의 감각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소멸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지, 그러나 어느 순간 촉각은 사라지고 시각만으로 영상을 보며 ‘존재하였음’을 확인한다. 무엇의 존재인가? 두 사람을 넘어 인(人)-간(間), 즉, 그 둘 사이에 존재했던 관계다.

그들은 영상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과거의 나는 여전히 나일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더 나아가 기억에서조차 소멸한 영상 속의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 현재가 과거와 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혹은 어색해져 버린 과거의 나를 타자로 인식할 뿐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영상 속의 모습은 나도 보지 못한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준다는 발터 베냐민의 미학은 이러한 카메라의 시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카메라가 보는 시점은 외부에서 나를 보는 것이기에 언제나 내가 볼 수 없는 모습을 담게 되고, 카메라의 시각이 된 그들은 타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한다.

이 공연에서 나를 고민에 빠뜨린 것은 종종 몸짓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이 배치된다는 점이다. 진중하게 움직이는 아다지오의 몸짓은 객석의 감상자를 끝없는 미로로 몰아넣는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걷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환상은 시간성의 소멸을 유도한다. 하지만 광기 어린 음악은 이를 방해한다. 이질적인 두 리듬, 서로 다른 두 시간성은 나를 혼란에 가두고 현기증을 일으킨다. 음악의 화자는 누구인가? 무용수인가, 작가인가, 사건 그 자체인가,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인가? 이러한 혼란은 무용수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고, 존재와 관계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부자연스러움이 존재를 애써 드러내는 방법일지도!

두 무용수의 몸짓은 역동적이기보다는 우아하고, 거칠기보다는 섬세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텍스트로 전달하는 서정과 어울려 관객에게 공감과 여운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들의 과거는 무용도 영상도 아닌, 기대놓은 두 의자에 투영된다. 그렇게 맡겨지고 남겨지며 잊혀진다. 그렇게 과거의 잔상은 환영이 되고, 현실의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심지어 무대 밖으로 벗어남으로써 과거를 부정하고 소멸을 꾀한다. 천장에서 내려온 빛줄기는 새로운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저 희롱할 뿐이다. 소멸은 사실상 존재의 재구성이 아닐까? 그때, 이 작품은 어느덧 과거의 소멸로부터 재구성된 내게 투영되었고, 곧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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