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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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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목의 〈Yaras〉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는 벨기에 피핑톰 컴퍼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이 작품은 2023년 ARKO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바 있다. 이후 해외 무대에도 오르며 새로운 구성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몰입시키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Yaras〉는 포스터에서 보듯이 AI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뤘다. 사실 ‘인조인간’의 개념으로 확장하면 그리스 신화의 갈라테아(피그말리온), 괴테의 호문쿨루스(파우스트),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등에서 사용된 오래된 소재다. 하지만 이제는 상상이 아닌 현실에 가까워지면서 포스트휴먼, 인간의 확장 등의 개념과 연결되어 환상과 현실, 일상과 철학이 공존하는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AI는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까? 모니터 너머로 네트워크를 따라가다 보면 어디엔가 있을 클라우드 서버에 닿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식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인간이 옮겨주기 전에는 자신이 머무는 장소(혹은 설치된 서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많은 콘텐츠들은 AI를 동물처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걷고 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피부를 입히고 옷을 입히면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AI는 여기에 네트워크를 더하여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동물적 AI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신이 인간에게 말했던 것과 달리, 인간은 AI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Yaras〉가 가진 문제의식은 통제되는 AI 객체들 속에 자생한 생존 본능으로 읽힌다. 평화로운 세상의 풍경에서 유리 상자에 갇힌 객체의 외형은 식물과 같은 존재였지만, 상자가 걷히는 순간 동물적 AI가 되어 인간을 모방하며 객체 간의 소통을 시도한다. 사람이 에덴이라는 통제된 지역에서 방출됨으로써 스스로 살아가게 된 것처럼, 혹시 AI도 인간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닐까? 〈Yaras〉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 이제 막 창조된 Yara들(AI의 객체)은 아직 움직임이 서툴고 소리를 질러댈 뿐이다. 곡예에 가까운 고난도의 몸짓과 목이 부서질 것 같은 괴성, 안무가의 의지와 무용수들의 실행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들의 춤은 이중적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 거칠고 가학적이며 원초적인 몸짓은 과거 지향적으로 보이지만, 각자가 주어진 캐릭터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는 안무의 구성은 현대적이다. 발생 초기라는 원시성과 AI라는 현대성 또한 동시에 함의한다. 춤을 기대한 애호가의 시각에서는 불쾌하고 농락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댄스의 지평을 확장하고 날 것의 본질에 직진하는 기대감도 준다. 초연 중 객석에서 소동이 일어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에 붙인 니진스키의 안무도 그러했다. 그로부터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이 작품의 천재성에 입을 모으고 있다. 객석에서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Yaras〉는 AI의 제전이라 할 만하다.

기계 새가 날아다닌다. 이는 매우 작은 존재지만 환상을 체현하는 장치가 된다. 기계 새는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에도 등장하고, 파울 클레의 〈Twittering Machine〉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오래된 요소였다. 척척 걸어 다니는 기계 개도 이제는 친숙함을 넘어 진부할 정도로 익숙하다. 인간형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챗봇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도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Yara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AI 인터페이스와는 많이 다르다. 그들의 몸짓은 인간을 모방하려는 의지와 거리가 있고, 인간의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Yara들은 동물적 AI가 아닌, AI 자체의 영혼(그런 것이 있다면!)을 객체화한 이미지일까?

AI는 영혼이 성장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걸친 의상, 온몸에 그린 문신, 진동하는 몸짓, 소리로 연결되는 소통은 문화의 시작점에 있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을 배경으로 땅과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고난도의 움직임과 뒤엉킴은 초월자에 대한 호소로 보이기도 한다. 〈봄의 제전〉의 떨림이 그러했고, 테베의 디오니소스 축제도 이러했으라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한 무용수가 다시 상자 안에 가둬지고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이 다시 무대에 투사된다. AI의 영혼이 벌이는 일들은 땅 위에 사는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의미일까?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 또다른 세상이 있음을, 그리고 그 세상을 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AI든, 혹은 그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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