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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제26회 신인춤제전 - 젊고 푸른 춤꾼한마당

  지난 6월 5일부터 7일까지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제26회 신인춤제전 –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아래 ‘젊춤’)이 열렸다. ‘젊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춤꾼이 사회 첫발을 딛는 무대로 이들이 중심인 공연으로는 유일하다. 팸플릿에 실린 안무자들의 글에 ‘나’와 ‘우리’가 들어간 작품이 열세 개. 관심은 거의 비슷하다. 이름을 걸고 첫발을 딛는 춤꾼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우리’가 공감하는 것을 춤으로 만들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젊은 춤 팀 작품들을 살펴보자. 정다래의 <내가 생각하기엔...>은 ‘틀림’과 ‘다름’을 다룬다. ‘틀림’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고, ‘다름’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이해의 문제다. 하지만 이 둘을 혼동해 ‘다름’을 ‘틀림’이라 몰아세우는 폭력은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작품은 ‘다름’을 상징하는 장면과 ‘틀림’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나뉜다. 주제 전달이 비교적 뚜렷하고 움직임이 발랄하고 감각적이지만 주로 바닥에서 움직이는 설정의 설득력이 약하다.

 


 

 

  이재영·류소희가 공동안무 한 <사/이>는 만남과 헤어짐을 잔잔하게 풀어낸 발레 작품이다. 담백한 ‘만남’ 표현과 ‘헤어짐’의 분위기가 다르지 않고 장면 전환이 매끄럽지 못하다.

 

 


 

  윤소희 안무 <무한동력>. 움직임은 상반된 요소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일어난다. 좋은 것-나쁜 것, 기쁨-슬픔 등 대립 요소가 우리를 움직이는 무한동력이다. 플래시를 이용해 장면을 나누고 빛과 어둠을 세밀하게 대비시킨 의도가 좋았지만, 장면 전환을 위한 조명 컷아웃이 흐름을 끊어 아쉬웠다.

 

 


 

 

  이소희의 <문문(門門)>은 무속을 모티브 삼았다. 신과 인간 영역의 경계를 상징하는 사각 틀 사이를 매개자가 넘나든다. 두 세계의 경계를 설정했지만, 상징성이 약하고 춤의 몰입도가 아쉽다.

 

 



 

  <온기(溫器)>는 이혜리의 작품이다. 무대 상수에 혼밥 상황을 두고 다른 공간에서 춤을 추는 설정이다. 작품에서 온기란 더운밥이 담긴 그릇만이 아니라 허기진 이를 걱정하는 마음과 배려라고 말한다. 주제가 뚜렷하고 공감할 지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선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정혜지 안무 <반추하다>. 반추란 지난 일을 되짚어 생각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반추를 거울에 자신을 비추듯 스스로 점검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반추하는 행위는 보이지만 왜 반추하는지, 반추해서 어떻게 됐는지까지 담아내지는 못했다.

 

 

 

 

 

  황정은 안무의 <놀이터>는 다양한 시도를 한 작품이다. 놀이는 본능적 행위고, 어릴 적 놀이는 성장하면서 스포츠나 게임 등에 흡수되어 규칙화하면서 사회화 도구로 바뀐다. 인간은 놀이의 유희성을 잃어버리고 규칙에 익숙해진다. 작품은 관객에게 여전히 잘 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대사와 움직임을 엮고, 몇 가지 상황 설정과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잃어버린 유희성을 주제로 하기에는 작위적으로 보인다. 아예 유희적으로 가든지 반어적으로 질문을 던지든지 선택이 필요하다.

 

 

 

 

 

  이어진 푸른 춤은 아홉 팀이 참가했다. 김재정 안무의 <아주 작으면서 아주 큰>은 세상 모든 곳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밝고 작은 점에서 시작한 움직임이 점차 진폭을 넓힌다.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쌓여 큰 무엇이 되기도 하는 그것은 ‘아무것’이고 ‘무엇이나’이다. 규정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은밀하고도 격한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A breath of fresh air〉에서 윤소인(안무)은 지루한 일상에 나타난 너로 인해 내가 충전된다고 한다. 솔로의 잔잔한 춤이 한 사람(너)이 등장하면서 움직임이 커진다. 어느새 ‘너’가 사라지지만 ‘나’는 이미 변한 ‘나’이다. 독무와 2인무 변화를 뚜렷하게 해 ‘나’와 ‘너’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다만 움직임이 느슨해 긴장감이 덜하다.






  김민국 안무의 <아, 몰랑>은 무기력한 삶에 활력을 주는 너에 대한 독백 혹은 고백이다. 무기력한 남자와 끊임없이 그를 자극하는 여자, 남자는 여자로 인해 서서히 무기력을 벗어난다. ‘너(여자)’ 캐릭터를 구체화한다면 입체감 더욱 살아날 듯하다.




 

  신선경의 <너를 보고 있으면>에서 ‘너’는 바로 ‘나’이다. 화자(話者)가 꽃을 보는 나를 보고 있는 ‘누군가’라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실제 상황과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기 몰두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구성에 특이점이 없고 길이가 짧아 주제 전달력이 모자랐다. 일상에서 힘든 일 중 하나가 잠에서 깔끔하게 깨는 일이다. 





 

  이재명 안무의 <자, 자>는 자는 자와 깨우는 자의 잠 깨우기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경쾌한 움직임과 연극적 구성이 재미를 더 한다. 최재호의 <너머>는 삶의 여정에서 문득 멈춘 순간의 깨달음을 소품(노)과 박자의 행간을 타는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깊이 있는 주제에 호흡의 완급조절을 더 한다면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박소희 안무의 <별의 별>은 짜임새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수많은 말과 생각, 논리, 비논리가 떠도는 세상에서 ‘나’를 규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기준은 무엇일까.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청춘은 고민의 답을 얻기 어렵다. 구성에 밀도가 있고 구성 변화에 따른 움직임이 다양하다. 관객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다만 군무에서 대형을 맞추는데 신경 쓰는 모양이 부자연스럽다.





 

  이지수의 <신의(神意)>에는 짧지만, 무·굿 요소 대부분이 녹아 있다. 이 무대에서 무·굿의 맛을 보다니! 굿 장단과 건반 연주의 조화가 좋은 반주의 완급을 춤으로 조절하고, 감정을 맺고 푸는 품새마저 노련한 이지수의 춤은 근래 보기 드문 것이었다. 기성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춤꾼을 만난 뿌듯한 여운이 오래 머물렀다.





 

  정승환 안무의 <이상한 나라의 ’소랑‘>은 연출력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기성 권위에 주눅 든 ‘소랑’은 자기에게만 보이는 부채 든 남자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간다. 이곳은 현실이 역전된 곳이다. 권위는 우스꽝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진다. 작품은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고 현실로 온 ‘소랑‘이 기성 권위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구성을 빌려 현실과 대비되는 상황을 만들고 풍자적 해학을 담았다. 캐릭터 설정이 분명하고 상황을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20대 새내기 춤꾼의 말을 듣는 이 없고, 고민을 나눌 수도 없었다. 무대에 선 춤꾼들은 수줍고, 당당하고, 덤덤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내보인다. 어설프기도 하고 정리 안 된 부분이 있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었고 겪을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래서 ‘젊춤’ 무대는 젊고 푸르른 춤꾼의 현재(미래를 잉태한)이고 기성세대의 과거다. ‘젊춤’은 춤꾼과 관객의 선형적 시간이 뒤엉키는 즐겁고 성스러운 잔치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박병민(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