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들어서 코로나19로 공연계가 거의 셧다운된 가운데 제10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국립발레단 공연만 취소되고 일정의 변화 없이 진행되었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에서 이뤄졌고, 대극장 공연이 기존 작품들을 선보였다면 소극장 공연들은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는 안무가들의 창작 작품으로 이뤄지면서 차별성을 두었다. 필자는 대극장 공연 중 유니버설발레단의 〈Ballet Gala & Aurora’s Wedding〉
1부의 6작품, 2부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작품 3막은 고전 명작의 하이라이트부터 모던한 창작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한데 모아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었다. 발레 마니아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구성이었고, 오랜만에(4개월) 무대에 서게 된 무용수들의 설렘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백기가 있다 보니 무용수들이 100%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순간적으로 불안한 장면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된 무대감각을 찾았고, 차후 더욱 무대의 소중함을 알고 연습에 매진하리라는 기대감도 갖게 했다.
1부의 시작을 연 <백조의 호수> 백조 파드되에서는 마라 바로스(Mara Barros)와 이현준이 보여주는 호흡이 안정적이었다. 달빛 호숫가에서 백조들의 군무가 불안정한 부분도 있었고, 마라 바로스의 움직임이 가볍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표현력이나 기량은 좋았고 이현준도 특별한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백조의 호수> 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et
이어진 <해적> 파드트루아에서는 서혜원, 이동탁, 강민우가 각자의 개성을 발휘했다. 서혜원은 여성적 외모에 비해 강한 하체 힘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과시했고 이동탁 역시 노련했다. 강민우도 2017년 부상 이후 착지나 연결동작이 아쉬웠지만 표현력은 확대되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배역에 최선을 다하며 보기보다 쉽지 않은 <해적> 작품의 움직임들을 잘 소화해냈다.
최지원과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Aleksandr Seytkaliev)의 듀엣, <루쓰, 리코디 퍼 두에>는 묵직한 감정을 전달했다. 미국 조프리발레단을 설립한 현대무용의 선구자 제럴드 알피노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스 알비노니의 서정적인 선율은 두 사람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최지원의 가늘고 아름다운 선과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의 굵은 선은 조화를 이루며 기억과 감정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신장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두 사람의 듀엣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없었다.
잠깐 선보인 리앙 시후아이(Shih-Huai Liang)의 <고팍> 춤은 우크라이나 민속춤으로,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쉴 틈 없이 점프하며 유쾌한 무대를 보여줬는데, 날렵한 움직임과 뛰어난 기교가 돋보였다.
강미선과 이현준의 <심청> 문라이트 파드되는 역시나 주역들의 안정적이고 훌륭한 무대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부의 마지막은 손유희와 간토지 오콤비얀바(Gantooj Otgombyanba)가 보여준 <돈키호테> 3막 그랑파드되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장면인 만큼 남성 무용수가 발레리나를 한 팔로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는 동작과 연속 점프, 발레리나의 32회전 푸에떼 동작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돈키호테> 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et
2부는 ‘Aurora’s Wedding’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작품 3막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공연 탓인지 토월극장 무대가 좁아서인지 무용수들로 꽉 찬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각자 특성을 지닌 요정들의 춤이 화려하게 펼쳐지면서 발레가 지닌 아름다움을 맘껏 보여주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et
이번 공연은 유니버설발레단이 공백을 깨고 세계 각국의 매력을 담은 레퍼토리를 선정해 열심히 준비한 무대인 만큼 관객들에게도 영상이 아닌 실물로 무용수들을 보는 즐거움을 제공했다. 또한 원래의 기량을 찾기 위해 무용수들은 피나는 노력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관객들은 공연을 기다리는 설렘과 실제 문화 향유의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