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연은 창무회에서 본인의 색깔이 확실한 안무가다. 독일의 탄츠테아터처럼 무용과 연극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독특한 춤사위로 이름을 알린 바,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무용 부문에 선정된 이번 공연에서는 사회적 이슈에 집중해 춤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갔다. 전통적인 춤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면이 돋보인 작품 <플라스틱 버드>는 1월 9~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인간의 환경파괴로, 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했다. 인간에 의해 피폐해진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작품은 배고픈 새끼에게 먹인 플라스틱이 몸에 가득 차 죽은 어린 알바트로스의 사체사진이 모티브가 되었다. 인간에 의해 망가진 자연에 대한 성찰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생태계 파괴에 일조하고 있는 스스로를 각성하고 파토스로 이끄는 것은 그녀의 능력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방사형 포그로 가득 찬 무대가 마치 둥지처럼 목재 느낌으로 3면을 둘러 싸 신비롭고 중앙 낮은 단 위의 최지연은 알바트로스의 어미이다. 특유의 해체된 춤사위로 춤추는 그녀의 솔로와 대비되게 앞쪽에서는 얇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날개를 펄럭이는 남성이 있다. 흰 알의 등장, 공중을 가르는 플라스틱 날개의 소리가 새의 울음 같기도 하다. 알바트로스가 날개짓 하는 영상과 남성에게 뒤엉켜 있는 여성 무용수와의 듀엣, 급박한 숨소리와 음악은 이후 10명의 무용수들이 물결이 출렁이는 영상 속에서 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창무회 특유의 조형적 구성도 다수 보이나 무용수들 간의 호흡이 간혹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중반부 두 남성의 듀엣은 동양적 감성을 깊이 담고 있었다. 이후 등장한 무용수들은 알바트로스를 위협하고, 최진한의 솔로가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색색의 옷을 갖춰 입은 무용수들이 여러 색상의 미세 플라스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양쪽으로 열리는 무대와 흰 색의 대형 원형 풍선의 이미지, 지속적인 에너지를 갖고 죽음과-구원-바램으로 치닫는 무용수들의 에너지는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깊게 각인되는 것은 무대 위의 ‘날개’이다. 영상과 오브제를 통해 등장하는 날개는 거대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의 근원이다. 고통 대신 안온을 선택하여 스스로 날개를 퇴화시킨 인간과 다시금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갈등은 그 어디에 무게를 둘지 고민을 수반한다. 구체적으로 이재환의 섬세한 연출, 양용준의 웅장한 음악, 김종석의 감각적인 무대디자인, 황정남의 은유적 영상이 최지연의 개성 있는 안무와 어우러져 창작산실이 요구하는 대작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더불어 최지연을 포함해 12명의 무용수들(김성의, 백주희, 윤지예, 김현선, 배지현, 손나혜, 배유리, 김민지, 최진한, 장대욱, 김영찬, 박동찬)은 혼신의 노력으로 진정성 있게 춤췄다. 특히 남성무용수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충분히 소화했다.
<플라스틱 버드>는 특별히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 점에 의의가 있었고, 훌륭한 미장센이 드라마틱한 전개를 도우며 기대에 부응했다. 다만 무용수들의 춤어휘나 구성이 큰 변화 없이 이어지다보니 밀도가 다소 떨어지고 무대의 외적인 면에 잠식당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너무 세세한 장면을 나누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할 듯 했다. 그러나 스펙터클한 무대를 통해 좌중을 압도하며 진지하게 동시대 담론을 형성하는데 노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공연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