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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기술주의에 대한 경계는 인간성 회복으로 이어질까 -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사과’는 창작자들에게 널리 인기를 끄는 소재다. 선악을 분별하게 된 아담과 이브의 사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독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넘긴 백설공주의 사과, 아들을 향해 활을 겨눠야 했던 빌헬름 텔의 사과…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렇듯 ‘사과’를 소재로 한 작품에는 혁신의 대명사가 된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추가되고 있다. 

 

지난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창작산실 무용 부문 선정작인 YJK댄스프로젝트의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역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 안에도 위에 나열한 사과 모티브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종교와 역사, 예술과 기술의 흥미로운 변화상을 사과라는 단일한 소재로 설명해낸 것은 한때 획기적인 시도였으나 이제 익숙한 모티브를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옥상훈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에서 사과는 작품을 전개해나가는 주요 모티브라기보다 맥거핀에 가깝다. 의뭉스러운 제목처럼 안무가 김윤정은 진지하게 사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 하다 슬쩍 삶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로 방향을 이동시킨다. 그러한 이동이 어찌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지, 공연이 끝난 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어, 사과는 어디 갔지?’ 하면서 눈이라도 비벼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로비로 나오면 ‘여기 있습니다’라는 듯, 안내데스크에서 사과를 나눠주는 풍경과 마주친다. 사과는 설문에 응답한 관객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고 로비의 풍경은 무대와 달리 바쁘고 부산스럽지만 공연장 안팎을 연결하는 안무가의 위트 있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지점이다.

ⓒ옥상훈

공연은 도입부 영상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사과 모티브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제시한 뒤 무대가 전환되면 두 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무대 한쪽에 허공에 부유하는 것처럼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어쩐지 지구상의 것처럼 보이지 않고 무대는 중력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닌 듯하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매우 아름답지만 그들을 유혹하는 사과의 이미지는 왠지 모를 위험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위험은 흔히 묘사되는 붉은빛 금단의 유혹이 아니라 푸른빛을 내는 구슬로 표현되어 이질감을 준다. 사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맞닥뜨린 위험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 그래서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김윤정의 푸른 사과에서 느껴지는 것은 버튼을 잘못 누르면 폭발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며 이 사과가 인간을 데려가는 세계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기보다는 단절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전해준다.

그리고 어느새 사과가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목소리다. 무용수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호흡을 맞추며 움직이는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사과 이미지가 전해주던 불안감이 무용수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조금씩 녹아내린다. 하나의 단어를 제시하면 연상되는 심상을 답하는 대화가 핑퐁처럼 이어지는 동안 목소리가 도달하는 지점은 ‘나 자신’과 ‘일상’, 그리고 ‘삶’의 어떤 언저리다. 그 목소리들이 그려내는 삶과 인간의 풍경은, 질문은, 대답은,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다.

ⓒ옥상훈

김윤정은 사과라는 모티브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조종하는 알고리즘으로 해석했는데, 중반 이후 이 사과 모티브는 핸드폰으로 집약된다. 무용수들은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손 안에 있는 핸드폰에만 몰두한다. 내내 무표정이던 그들이 웃음을 되찾는 것은 손에 들린 핸드폰이 거두어진 다음이다. 그제야 무용수들은 서로의 눈을 맞추고 보폭을 맞춰 함께 걷고 뛰어다니고 움직이며 미소 짓는다. 

장면들은 매끄럽게 전환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아름다우면서도 스산하고, 활기차지만 뭉클하며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곳곳에 위트가 숨겨진 안무는 보는 즐거움을 주며, 전동 휠에 올라 무대를 누비는 출연자(팝핀현준)의 움직임은 무용수들의 안무와 어우러지며 역동성을 더한다. 알려진 사과 모티브들을 빠짐없이 나열하면서도 모티브에 매몰되지 않고 메시지를 전하되, 메시지에 힘을 주느라 움직임을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대극장 무대를 채우느라 보여주기 위한 세트가 동원되지도 않으며, 채울 곳과 비울 곳을 영리하게 구분해 시선이 산만하게 흩어지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나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 공연이었다.

ⓒ옥상훈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작자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주제의식에 대해 말을 얹기는 다소 조심스러우나, 이런 주제의 작품들 대다수가 기술주의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말하는데, 이는 현대인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접근이며 나아가 아날로그에 대한 대상화 또는 낭만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디지털화의 흐름은 이미 막을 수 없고, 현재의 삶을 아날로그로 되돌리는 데에는 부작용이 따르며,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들이 꼭 인간적이거나 일상의 행복에 만족했던 것 또한 아니다. 디지털화와 인간성 상실은 반드시 등치되지 않으며, 디지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은 아날로그로 되돌아가는 외길에만 있지 않다. 익숙한 모티브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과 삶의 이야기로 연결한 안무가의 솜씨가 돋보였으나 결론에 이르러 익숙함으로 돌아가버린 듯한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은 작품이었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