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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적 몸짓 속에서 드러난 철학적 사유 휴먼스탕스 <돌>



  안무자의 작품 구상은 다양한 원천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우도 있고, 문학이나 타 장르의 감상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기도 하며 본질적인 진리에 바탕을 두는 등 다양한 모티브가 존재한다. 그중 본질적 진리를 담은 경우는 안무자의 철학적 이해에 따라 자율적인 서사구조와 몸짓이 만들어진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안무자만이 이해하는 작품을 만들거나 변별된 주제의식이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단점도 나타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구축하면서 춤이라는 무용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내는 방법 밖에 없을 듯하다. 

 

 

  조재혁 안무, 휴먼스탕스의 <돌>(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21.2.27-28)은 본질적 요소에 집중하면서 질감 있는 안무와 주제의식을 이해한 조명, 의상, 음악이 조화를 이룬 완성도를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돌’의 이야기이다. 돌의 이야기라 표현할 것이 추상적이고, 단순할 수 있지만 돌에 담긴 근원적 담론을 추출하면서 진중한 흐름의 서사구조 속에서 긴장감을 전해준다는 측면에서 주목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돌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지난(至難)한 과정과 앞으로 또 다른 작용 속에서 변화하리라는 서사(敍事)를 인간세계에 투영하려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은 풍화, 침식, 퇴적 등 과학적 작용으로도 설명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형이상학적 인식을 가지고 본질적 진리를 담아 표현한다.

 

  전체적 흐름은 과한 역동적 움직임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분절적이면서도 유동적 몸짓으로 일관하여 다양한 몸짓을 느낄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는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고 무용수에만 집중시킨 질감 있는 조명 속에서 유려한 움직임이 극대화되었고, 감정의 고조에 따른 무용수들의 수행적 몸짓 속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무용수들의 표현은 실존적 개성보다는 구도자적 행위로 나아가면서 우주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인간의 근원적 사유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현실의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경험을 초월한 찰나적 실재로 재현된다. 결국 하나의 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카오스적 갈등과 코스모스의 질서, 즉 어둠과 밝음으로의 질곡 속에서 수많은 충돌을 만들다가도 종국에는 희열을 가져오며 잔잔한 감흥을 전해 주고 있다. 

 

  음악은 일렉트릭 사운드와 국악기의 부드러움과 강함이 조화 속에서 감정을 고조시킨다. 최근 국악과 일렉트릭 사운드를 수용한 생음악 무용 공연에서 타악과 일렉트릭의 과한 드러냄이 나타났다면 이 작품에서는 음감의 진폭을 절제하여 춤의 감정이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게 토대가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총체적 연결고리는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관객의 지평과 흐름이 합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특별히 모자람이 발견되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바탕이 되었고, 미시적인 돌의 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하며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묘사하였다.

   

  반대로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거나 그동안과 다른 실험적 모험이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는 점도 없지 않다. 이는 돌이라는 주제에 맞는 강한 무게감과 미시적 변화 양상에 집중하고자 한 측면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역동적 극적 구조를 그리는 것도 너무 작위적이었을 것이다. ‘미롱’처럼 미소를 머금고 자율적 행위를 펼치는 종결의 홀춤 속에서 잔잔하지만 작은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것으로 이 작품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응축되어 있다 할 것이다.

 

글_ 김호연(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