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_
인간의 몸을 재료삼아 그 몸의 움직임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상을 표현해내는 예술을 춤(무용)이라 한다. 따라서 춤 예술 작품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간의 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무대 위의 예술인 바, 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음악, 의상, 무대 장치는 거의 모든 춤 작품에 빠지지 않으며 영상이나 대사(연기)도 오늘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춤 동작을 만들고 짜는 것을 안무(按舞; choreography)라 한다. 작품의 여러 부분을 종합하여 총지휘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연출(演出; direction)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안무가는 춤을 만들고 연출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춤 작품에서는 안무가가 곧 작품의 창작자이며 연출가이다. 안무가 자신이야말로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움직임화(化)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춤의 중심 매체인 움직임을 고안하다 보면 동선에 따른 무용수들의 이동, 배치 등 무대의 구성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안무가는 어떻게 하면 작품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장르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 중심축을 안무가가 받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영화감독과 협업을 하였다. 6월 5일-7일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은 영화 <만신>의 박찬경 감독이 시각연출을 맡았고, 6월 11일-13일 국립무용단은 최진욱 안무의 <적(赤)>은 <마담 뺑덕>,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이 구성 및 연출을 맡았다. 오는 11월에 공연될 국립현대무용단의 <어린왕자> 연출은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이 맡는다. 일종의 트렌드인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영화감독들이 춤 작품에, 그것도 핵심 역할인 연출에 참여한다. 텃새를 부리는 것은 아니다. 이 기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면 춤의 발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기에 우려보다는 환영하는 마음이 크다.
어쨌든 무대 전체가 드러나 보이는 연극이나 춤 같은 무대 예술과 달리 영화는 스크린에 의해 공간, 즉 관객의 시선이 철저히 통제된다. 그 통제된 스크린 안에서 감독은 마음껏 미장센(mise-en-scène)을 연출해낸다. 또한 영화는 쇼트와 쇼트가 연결되는 편집의 예술이기에 하나의 시퀀스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적절한 타이밍으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강약조절이 생명이다. 이러한 영화적 특성을 춤과 무대 공간에 어떻게 녹여내느냐가 협업의 관건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영화의 소비층을 춤 공연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춤 대중화의 숙원까지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은 ‘춤’이라는 것이다.
협업의 이상적인 사례는 20세기 초 발레뤼스(Ballet Russes)를 중심으로 했던 예술가들의 작업일 것이다. <레실피드>, <불새>, <페트르슈카>,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 등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단체는 디아길레프의 기획 하에 포킨, 니진스키, 발란신, 니진스카, 마신 등의 안무가(및 무용가)와 함께 피카소, 마티스, 샤갈, 박스트,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라벨, 에릭 사티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각 장르의 특수성으로 빛을 발하면서도 하나의 작품으로 훌륭하게 수렴되고 있다. 바그너가 추구했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개념을 충실하게 실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볼쇼이 발레단에서 역시 6월 중순에 협업 신작 하나가 무대에 올랐다. 연극 연출자이자 영화 <벨아미>의 감독 데클란 도넬란(Declan Donnellan)이 연출을 맡고 2014 소치올림픽 안무 연출가인 라두 포클리타루(Radu Poklitaru)가 안무를 맡은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으로,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창작된 작품이다. 이 콤비는 2003년에도 볼쇼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기도 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이 작품은 프로코피에프 자손들의 반발로 음악사용이 불가능해 더 이상 무대에 올릴 수 없다). 데클란 도넬란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발레작품에 임할 때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번 <햄릿>도 그렇게 큰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그가 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그 점은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다. 그의 발레 작품에 마임 요소가 많고 너무 구체화되어 춤의 추상성이나 참신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여 준비한 작업임에도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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