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퍼포먼스와 댄스 필름(비디오 댄스) - 브루스 노먼 (Bruce Nauman, 1941)과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1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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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퍼포먼스’와 ‘댄스 필름’은 모두 몸이 주체가 되며 영상으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몸과 공간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하는 이 두 형식은 각각 미술과 무용의 영역에서 발전되어 왔으며 오늘날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대예술에서는 더욱 더 근접하게 조우한다. 본 글에서는 브루스 노먼의 초기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들과 안느 테레사의 댄스 필름 <Fase>(2002)에 나타나는 작업 방식의 유사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비디오 퍼포먼스’, ‘댄스 필름’의 특징들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1960-70년대 비디오 퍼포먼스
미술 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E. Krauss, 1941)는 1960-70년대 비디오 아트의 특징으로 나르시시즘의 미학을 제시한다. (비디오: 나르시시즘의 미학/ Video: The Aesthetics of Narcissism, October, spring 1976). 비토 아콘치 (Vito Acconci, 1940-2017) 의 작품 <중심>(Centers, 1971)은 이러한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데, 1960-70년대 초기 비디오 아트 작가들은 TV 모니터(전자 거울)에 반사된 자기 자신의 분열된 이미지(이중적 자아)에 대면하여 정체성에 관한 여러 실험적인 탐구들을 시도하게 된다. 1960년대 새롭게 등장한 비디오라는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물리적, 심리적)은 작가 자신의 몸이 행위의 주체이며 대상이 되는, 내밀하고 폐쇄적인 관계/상황을 보여주는 일련의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규정한 외부와 고립된 사적인 공간인 작업실에는 카메라만이 유일한 관객이며 목격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때로는 TV모니터 저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관객을, 때로는 전자 거울에 비친 분열된 자아와 마주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떤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의도나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홀로 외로이 어떤 단순한 동작을 묵묵히 반복 수행하는 작가의 몸이 있을 뿐이다.
브루스 노먼 (Bruce Nauman, 1941)
Bruce Nauman, Dance or Exercise on the Perimeter of a Square (Square Dance), 1967-68
영상_ https://www.dailymotion.com/video/xol3si
Bruce Nauman, Playing A Note on the Violin While I Walk Around the Studio, 1967-68
Bruce Nauman, Bouncing Two Balls Between the Floor and Ceiling with Changing Rhythms, 1967-68
Bruce Nauman, Walking in an Exaggerated Manner Around the Perimeter of a Square, 1967-68
영상_ https://www.youtube.com/watch?v=x7DWz_jMtR4
Bruce Nauman, Violin Film # 1 (Playing The Violin As Fast As I Can), 1967-68
“If i was an artist and i was in the studio, then whatever i was doing in the studio must be art.”
“만약 내가 예술가이고, 작업실에 있다면, 거기서 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여야 한다.”
Bruce Nauman
1960년대 중반 수학과 물리를 공부한 후 미술을 공부한 브루스 노먼은 1964년 이후 회화를 포기하고 조각과 퍼포먼스, 영화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그는 무용 동작과 유사한 반복적이고 평범한 행위들을 보여주는 총 25편의 비디오 퍼포먼스를 제작한다. 노먼은 대학 졸업 후 홀로 스튜디오에서 지내면서 작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일상에서 하는 행위들-커피를 마신다거나 걸어 다니는 행동들이 ‘예술이어야 한다’는 혹은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과 신념에 도달하게 된다.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일련의 창작 과정들은 그의 비디오 퍼포먼스에서 단순한 동작들의 꾸밈없는 나열과 배치/재배치의 방식을 통해 제의적인 의식 행위처럼 펼쳐지게 된다. 사무엘 베케트, 머스 커닝햄, 트리샤 브라운, 존 케이지 등 동시대 연극, 무용, 음악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테리 라일리, 라 몬테 영의 미니멀리즘 음악은 노먼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1957년 작품 바이올린 페이즈 (Violin Phase)의 작곡 원리는 노먼의 비디오 퍼포먼스 제작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각 테이핑으로 정확히 구획된 공간 속에 신체가 개입하는 방식, 메트로놈의 기계적인 템포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걸음걸이의 변주, 바이올린의 지속 가능한 한 음, 속도 조절에 의한 변주, 몸의 통제를 벗어난 공 튕기기 동작의 반복은 연속과 불연속의 시간 변주 속에 새로운 구조를 획득한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경향은 회화 보다 조각에서 현저히 나타난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가들은 이전 시대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처럼 작가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환영을 추구하기 보다 오히려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고 단순한 형태의 중립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이와 함께 여백, 침묵의 공간이 주목받게 되었으며, 작품과 관객의 관계,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과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는데, 관객의 시선, 동선, 작품의 내부와 외부 공간에 대한 관객의 지각적인 반응 등 새로운 체험적 감상 모드와 전시 방식이 발전하게 된다. 미니멀리즘 조각 작품에 쓰인 재료들은 대게 거의 변형되지 않은 날것의 속성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공정을 거친다. 미니멀리즘 음악에서 하나의 단순한 음이 변화가 거의 지각되지 않으며 미세하고 느리게 점차적으로 진행 변주되는 것처럼 미니멀 조각에서는 하나의 unit 또는 가공되지 않은 단순한 오브제의 반복적인 배치와 재배치는 오브제들 간의 계층적 위계를 폐기하고 비 계층적 구조를 갖게 한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다다르고자 하는 이같은 시도는 다이나믹한 사건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멜로디도 동반되지 않지만 공간과 신체가 만나는 경험적 관계 속에서 신비스럽고 주술적인 한 걸음 한 걸음의 변주로 진행된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Anne Teresa De Keersmaeker, 1960)
Dancers/ Anne Teresa De Keersmaeker, Michèle Anne De Mey
Music/ Steve Reich (Violin Phase, Piano Phase, Clapping Music, Come Out)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2018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으로 내한한 벨기에 출신 안무가 안느 테레사 역시 브루스 노먼처럼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리즘 음악의 영향을 받은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16분 가량의 공연 동안 공연이 펼쳐지는 텅 빈 흰 모래 위에는 원형의 기하학적 무늬 조각들이 끊임없이 그려진다. 행위의 흔적으로 남겨지는 불연속적으로 끊겨진 한 획 한 획들의 연속적 배치와 간격은 선행된 무용 동작들의 시간적 템포와 관계를 시각적으로 기호화 한다.
<Fase>는 1982년 초연된 작품으로 2002년 Thierry De Mey 감독에 의해 52분 가량의 댄스 필름으로도 제작된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안느 테레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영상 속에서 안느 테레사와 미쉘 안 드 메이는 마치 쌍둥이 처럼 거울 듀엣을 이룬다. 총 4부분으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비디오 댄스 작품 <Fase>는 특히 음악과 움직임의 관계에 대한 안느 테레사의 주요 관심 테마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브루스 노먼의 비디오 퍼포먼스가 관객이 부재한 가운데 셀프 카메라 방식으로 앵글의 변화 없이 작가의 서툰 동작마저도 모두 기록한 영상이라면, 안느 테레사의 댄스 필름 <파제>는 각 파트별 주요 동선과 주요 앵글의 네러티브가 명확히 드러난다. 카메라는 각 파트에 따라 사선, 수평, 수직, 원형의 구도를 그리며 빛과 어둠, 실내와 숲 속 그리고 건물의 경계를 따라 움직인다. 스티브 라이히가 고안한 위상차를 이용한 페이징 기법은 안느 테레사의 작품을 작동시키는 지배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 무용수의 동작은 음악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며 두 무용수가 만들어 낸 이중, 삼중의 그림자를 통해 몸들은 계속해서 분열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한다. 무용수의 동작은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 기보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동작 역시 음악이 그렇듯이 페이징 방식으로 수행된다. 기표된 악보의 수학적 템포를 뛰어 넘는, 논리적인 틀을 압도하는 리듬이 만들어 지며 기존의 템포에 새로운 템포와 의미가 중첩되며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추상적인 파편들이 끊임없이 생성된다. 정지와 흐름만이 동작들 간의 긴장 속에 이어지는 가운데 가끔 들리는 예기치 못한 소음들이 이 고요하고 적막한 질서의 풍경에 존재감을 주는 듯하다.
저마다의 깨어남
일상의 동작이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상의 평범한 동작들을 잠시 일상 밖으로 빗겨 나가게 해본다. 삶에서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어떤 새로운 규칙들이 발견된다. 혹은 적어도 발견의 기대를 갖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보다 자유로운 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놀이란 또는 예술이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주어진 규칙이며 놀이하는 자를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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