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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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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라는 이름으로 규율이자 문화가 된 무용계 폭력

지난해 겨울, 국립현대무용단의 송년 레퍼토리 공연으로 사랑받았던 ‘춤이 말하다’가 안성수 예술감독의 부임 이후 ‘댄서하우스’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개편되어 무대에 올라갔다. ‘댄서하우스’의 첫 번째 공연에서 쟁쟁한 무용수들 사이에서 눈에 띈 것은 이제는 연극배우로 평단과 객석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백석광이 본명인 무용수 김남건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백석광의 본령은 이제 연극이 되었지만 김남건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그가 무용계에서 받았던 기대와 경험들을 빼놓고 지나갈 수 없는 자리였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무용계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로 떠올랐던 그는 당시 콩쿠르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재연하며 무용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공연의 대부분은 무용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무용수 김남건이 배우 백석광이 된 이유가 한 가지로 단순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그러한 변신의 이유 중 하나로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거나 당연한 것, 그래서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온 무용계 폭력 문화를 지목하며 객석에 충격을 안겼다. ‘무용과 군기’ 또는 ‘무용과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포털에 잠시 검색만 해봐도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이니셜이나 익명으로 가려지기 일쑤인 이 주제에 대해 피해자가 무대 위에서 객석의 불특정 다수 관객들을 향해 털어놓은 것은 일대 사건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을 정도였다는 그의 끔찍한 폭력 고백은 공연 이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공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만 소비되었다. 무용계에 이러한 폭력이 너무나 만연하다 보니 이 정도 고백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무감한 것이 한 이유이고, 다른 쪽으로는 이러한 폭력의 문제가 무용계만의 것이 아니라는 패배의식과 공범의식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될 터다.


폭력,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대학교 입학 시즌만 되면 신문지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모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회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선배들에 의한 음주 강요나 얼차려 등 폭력 행사로 신입생이 중태에 빠지거나 더 심각하게는 목숨을 잃는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대학가에서도 주로 ‘집합’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행해지는 분야는 보다 집단문화가 공고한 전공들이다. 신체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체육대학이나 연극영화과, 무용과와 같은 공연이 주가 되는 예술대학, 생물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과 같이 실험실 단위로 운영되는 이과계 전공, 의대나 간호대처럼 응급실이나 수술실의 위계가 강조되는 전공에서 군기는 해당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전통처럼 수호된다.
 

특정 집단 내 군기 유지를 위한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진단은 대한민국 집단문화의 근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군대문화의 잔재라는 것인데, 이 같은 문화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군대에서 폭력에 대한 각성과 함께 개선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군대 바깥에서는 해당 세계의 어두운 문화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올해 3월에도 군기를 잡겠다며 후배들을 상대로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한예종 무용원 학생 8명이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최초에 신고를 접수한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언행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빗자루 등 도구를 사용해 폭력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 중 한 명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이렇듯 군기를 명분으로 한 폭력 행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성별이 아닌 선후배 간 위계로 갈라지는데, 이러한 위계 폭력이 심각한 것은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 구조를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양상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 폭력에 그치지 않고 선배들의 명령을 후배들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식으로 나타난다. 후배가 선배들 앞에 자기소개를 할 때 정해진 양식을 지키지 않거나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허리를 90도로 숙이지 않으면 체벌을 가하고 후배들에 대한 복장제한이나 화장 여부를 정해놓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얼차려 등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일반적인데, 이러한 폭력이 ‘예절 교육’과 같은 이름으로 행해지며 학과 내 질서 유지를 위한 규율로 묵인된다.


결과중심주의에 의해 지워지는 과정에서의 폭력


앞서 군대문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이토록 폭력에 관대하고 무딘 감각을 갖게 된 것은 군대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최초로 폭력을 경험했고 학교에서 폭력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교사에 의한 체벌이 금지되자 일었던 논란을 기억해보라). 대학 내 폭력에서 가해자는 대개 고학년인 선배들인데, 이들이 가해자로 드러나는 것은 가정이나 중고등학교에서 훈육자인 부모나 교사가 폭력의 주체가 되던 것과 달리 교수가 한 발 뒤로 물러남으로써 발생한 폭력의 공동(空洞) 상태를 메우는 것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시절에서 벗어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표면상 성인으로 간주되어 미성년자 시절 부모나 교사가 일상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같은 학생 신분인 선배들이 자율적으로 질서 유지에 나서는 동안 폭력의 가해자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학년은 피해자로 고학년은 가해자로 시간이 흐르면 피해자가 가해자 집단에 편입되는 구조가 유지되는 동안 폭력이란 수단의 부조리함은 지워진다. 
 

하지만 교수들이 이러한 폭력에 대해 책임이 없거나 무관한 것은 아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 사건화 되는 빈도수가 낮을 뿐 교수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은 그 권력의 무게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2006년 조선대 무용과 발레 전공 학생들 14명은 모 교수의 상습폭행과 폭언에 대한 진상 조사와 교수 교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내고 해당 교수가 안무한 개교 60주년 공연 연습을 거부하였다. 학생들은 교수가 연습 과정에서 슬리퍼와 막대로 학생들의 뺨과 등을 때리고 인격 모독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나 지목된 교수는 “자세를 교정해주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진 것일 뿐”이라며 학생들이 주장하는 폭력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2015년에는 전북대 무용과 재학생 60여 명과 졸업생 10여 명 등 70여 명이 전라북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 교수의 갑질을 고발한 바 있다. 학생들은 해당 교수가 “술집에 나가 서빙을 하라”는 등의 언어폭력을 가했을 뿐 아니라 수업 대신 전북도립국악원 공연 연습에 학생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는 등 학습권을 침해하고 콩쿠르 심사위원에 대한 인사비를 강요하는 등 수 년에 걸친 갑질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해당 교수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언어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으며 도립국악원 공연 참여 역시 학생들의 동의를 받아 진행한 것이라고 고발 내용을 반박했다. 
 

두 사건 모두 공연을 올리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 폭력(물리적 폭력 및 강요)이 동원되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폭력임을 부인하는 가해자들의 동일한 사고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공연이라는 집단 작업을 하는 무용계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으로,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묵인할 수 있다는 사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는 한국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결과중심주의의 한 폐해이기도 하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갑질 및 인권탄압 폭로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들이 지난 2년간 국악원 내에서 벌어진 위계에 의한 갑질 및 인권탄압을 고발하기 위한 집단행동에 나섰다. 단원들은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결성해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쟁점은 무용단 전 권한대행과 일부 보직단원들이 직위를 악용해 단원들의 외모 및 신체에 대해 인격모독 행위를 하고 성희롱을 자행하며 일부 단원들을 공연에서 배제하는 등 갑질을 일삼아 단원들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보직단원 안무자 A씨는 미혼인 여성 단원에게 출산 후 복귀한 단원보다 뚱뚱하다면서 임신한 게 아니냐고 몸매에 대한 폭언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성 단원의 염색한 머리를 두고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치며 “노란 대가리로 공연을 하니?”라고 지적하는 등 언어폭력으로 모욕감을 유발했다. 또 다른 보직단원인 안무자 B씨는 자신만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 리스트에 오른 일부 단원들을 공연에서 배제하고 단원이 창작한 안무작을 가로채 본인의 것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


단원들은 이에 대한 최초의 공식행동으로 5월 25일경 무용단 자치기구인 노동복지협의회(이하 협의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협의회에서는 피해자 보호조치를 비롯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국악원장과 기획관리과에 공식 요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3개월여 동안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가 지지부진하자 8월 8일 비대위에서는 국립국악원 예악당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첫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원들의 1인 시위를 릴레이 형태로 이어가기 시작했다. 또 1인 시위와 별도로 8월 11일과 17일, 25일 3차에 걸쳐 진상조사 및 현재까지의 과정에서 있었던 국악원의 부당한 문제해결 조치에 대해 알리기 위한 집회를 광화문에서 열었다. 비대위에서는 진상조사를 통한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조치와 제도개선 요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매주 광화문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악원에서는 단원들의 피해 주장과 지도부의 해명 내용 간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 현제 문체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조사 중이며, 사실관계 조사 결과가 나온 후 관련규정에 따라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국악원 사태는 그동안 수직적 위계에 의한 폭력을 통해 유지되어온 무용계 폭력의 연대가 가장 약한 고리에서부터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이러한 폭력이 질서 유지라는 명분하에 묵인되어온 이유는 그 목적이 집단 구성원들의 동질화와 통제에 있기 때문이다. 군기를 통해 구성원들을 통제해야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고 동질성을 유지해야만 이 세계의 질서가 지켜진다는 사상이다. ‘사상’이 된 폭력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니 이 세계에 속한 누구도 놀라지 않고 놀라는 것은 이 세계의 아웃사이더나 보이는 촌스럽거나 순진한 반응이며 나쁜 것은 알지만 이를 알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는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국악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국립국악원 공연 연습과 공연 과정에 잘못된 관행이나 비민주적 요소를 걷어내어 단원과 지도부가 상호 신뢰를 쌓고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서비스하는 환경을 만들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것이 늘 그래왔듯 사태를 무마하기 위한 립서비스에 그칠지 아니면 제대로 된 조사와 명확한 처벌을 통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