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취를 많이 감췄지만 한국에는 ‘서리’라는 문화가 있다. 가난으로 식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또는 재미삼아 남의 곡식이나 과일, 가금류를 훔쳐서 먹는 일을 가리킨다. 1960년대 이전을 살펴보면 서리를 시작하는 시기는 대개 십대 초반이며 무리를 지어 도둑질을 행했고, 결과물을 함께 나누어 먹었으며 암묵적으로 정해진 적정선을 넘지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았다. 한국민속예술사전에는 이를 ‘문화적으로 용인된 도둑질’이라는 설명과 함께 민속놀이의 하나로 등재해놓고 있는데, 사전에서는 청소년 복지와 유희의 관점에서 서리를 바라보며 서리가 청소년들이 마을 문화를 체득해가는 과정에서 사회화와 문화화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정착한 서리 때문일까. 한국에서 도둑질에 대한 관용의 정도는 비교적 넓고 크다. 도둑질한 범인을 나무라기보다 범인의 눈앞에서 탐나는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견물생심을 자극한 피해자를 탓하기도 한다.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절도, 점유재물을 탈취하는 횡령 등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른 처벌이 정해져 있으나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재물 이외의 것을 훔치는 일에 대해서는 느슨하기 짝이 없다. 노동력 착취, 성폭력, 지원금 유용, 그리고 지난호의 군기문화에 이어 이번호 블랙페이지에서는 타인의 지적 재산을 스스럼없이 탈취하는, 무용계에 만연한 콘텐츠 절도에 관해 다룬다. 콘텐츠 절도는 타인이 생산한 지적 결과물을 베끼는 표절, 타인이 한 것을 자신이 한 것처럼 발표하는 대작(代作), 타인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자신의 오리지널 아이디어인 것처럼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 기존에 나와 있는 결과물 여러 가지를 부분발췌하여 엮는 짜깁기 등 다양한 수법으로 행해지며 분야 또한 학위 및 학술논문 등의 저작물에서부터 안무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일어난다. 창작력의 빈곤을 타인이 창작한 결과물을 훔치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하려는 이러한 창작윤리의 문제는, 무용계에 산적한 다른 문제들이 그렇듯 윤리를 어겼다는 사실이 활동에 제약을 주거나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무용계에서 윤리의 문제가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미미한 목소리였고 무용계라는 세계는 이러한 윤리의 문제를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끌어안은 적이 없다. 개인의 목소리는 그 개인을 안쓰러워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덧대어지다 파편으로 흩어졌고 무용계는 그러한 목소리가 잠잠해지면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해 벌어지는 것을 방치했다. 윤리의 문제가 아직까지도 공동체가 아닌 개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블랙페이지에서는 영혼의 도둑질이라 할 이러한 지적 재산에 대한 탈취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사례 역시 많아 한 회차에서 다루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 이번호에서는 우선 논문 등의 연구나 취재와 같은 텍스트 생산에서 일어나는 윤리의 문제를 먼저 다룬다. #1. 한 무용월간지에서 시작된 표절 논쟁 논쟁의 시작은 무용월간지 <몸> 2004년 11월호에 실린 한 기고문에서부터였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출강하던 유미희 강사가 ‘지적 불능을 초래할지 모를 어떤 춤학문’이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기고문에 따르면 유 씨는 외국 학회에 참석했다가 학회지에 실린 최원선 씨(당시 UC 리버사이드 박사과정)의 논문 ‘Feminine qualities as conceptual embodiment in Korean dance: Decoding Seung-Hee Choi's dance’가 자신의 논문 ‘최승희 춤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근대적 성격’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유 씨는 1) 유교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여성 이미지를 언급하였고 2) 최승희 춤을 분석하는 데 있어 로라 멀비의 이론을 채택했으며 3) 자신은 최승희 춤을 섹슈얼리티에 입각해 분석한 최초의 연구자이고 4) 최승희 춤의 의상을 전통적 여성 이미지에서 탈피한 것으로 보았으며 5) 최승희 춤이 여성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 등을 유사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최 씨는 다음호인 <몸>지 12월호에 ‘정당한 학문적 연구가 자의적 해석에 의해 왜곡됨을 경계하며’라는 반론글을 게재하며 유 씨의 문제제기를 반박했다. 그는 자신은 섹슈얼리티 이론을 추구하는 유 씨와 달리 포스트구조주의를 배경으로 연구하였으며 자신의 논문 초점은 여성성이 재생산되는 사회구조에 있지 섹슈얼리티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공방은 무용계 논문 표절에 대한 첫 공론화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지만 정작 무용계에 작은 파문 하나 일으키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갔다. <교수신문>에서는 ‘쟁점_무용계 표절논란’(2005. 2. 21)이라는 제목으로 공방을 기사화하였으며, 춤학문 그룹인 ‘춤/지성’ 연구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고 의견을 모았지만 춤학문계의 문제점들을 충분히 논의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직 연구윤리에 대한 의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무용계의 시계보다 앞서갔던 공방이 쓸쓸하게 사라진 이유다. #2. 베낀 논문 또 베끼고…꼬리에 꼬리를 무는 표절 위 공방이 무용계의 현재를 반성하고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건강한 논쟁의 장이 되지 못한 이유는 2008년 <국민일보>의 추적보도로 그 일부가 밝혀진 부끄러운 논문표절의 역사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건강한 논쟁이라는 표현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을 갖추지 못한 자격 없는 논문들과 표절의 뿌리를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한 수법들이 판을 친다. 논문표절 추적보도의 성과가 높은 <국민일보>에서는 ‘베낀 논문 또 베끼고…집단적 현상 무더기 확인’(2008. 4. 27), ‘무용계 판박이 논문 판친다’(2008. 4. 28) 등의 탐사보도 시리즈를 통해 무용계 논문표절 실태를 파헤쳤다. 연구윤리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지탱되어온 이 세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매우 심각한 사건이지만 이렇게 한번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난 이후에도 무용계에서 별다른 반성이나 각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국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08년까지 무용계에서 발표된 학위 및 학술논문 200여 편을 분석한 결과 최소 50편이 표절로 추정되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표절당한 원본 논문의 저자와 표절한 논문의 저자가 동일한 교수에게 지도받아 지도교수의 지시 혹은 묵인하에 표절이 이루어졌다고 의심되는 경우, A씨가 발표한 논문을 B씨가 표절하고, 표절한 B씨의 논문을 다시 C씨가 표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일한 논문을 두 종류 이상의 학술지에 발표해 연구실적을 부풀리는 중복게재 역시 빠지지 않았다. 중앙대 무용학과 김승일 교수가 1999년 발표한 ‘기방무용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는 같은 학교 H씨가 한 해 전에 발표한 논문 ‘기방무용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관한 연구’에서 서론과 본론 내용 일부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고 있는데, 심지어 이 두 논문의 지도교수가 동일인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김승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정병호 지도교수가 준 참고자료를 가지고 시키는 대로 쓴 논문”이라고 고백해 지도교수의 표절 지시 혹은 묵인하에 논문표절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 표절 의혹에 대한 대응 역시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교수가 지도해준 대로 썼을 뿐이라는 모르쇠형이나 책임전가형,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이 아니니 넘어가달라는 읍소형, (중복게재에 대해)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적반하장형 등 다양했다. 논문표절은 무용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계 전체의 문제라며 “무용계를 실컷 뒤졌으니 이제 미술계나 음악계도 뒤져봐라”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물타기형이 있는가 하면 표절논문의 저자가 보도 내용에서 자신의 사례를 빼주면 다른 저자의 표절 사례를 제공하겠다는 역제안을 해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표절논문 저자 “내 것 대신 다른 사람 것 실어달라”-<국민일보> 2008. 4. 28). <교수신문>에서는 ‘베껴쓰기 유혹의 수렁…부실한 박사논문 심사가 문제 키웠다’(2008. 5. 19)라는 기사에서 예체능계 표절 문제 전반을 다뤘는데, 미술평론가 D씨는 “실기전공자들이 논문의 학문적 창의성, 진실성과 같은 가치를 인식하지 않는 풍토가 문제”라는 지적을, 무용평론가 E씨는 “예술계에는 서로 믿을 만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논문을 대필해주는 곳이 따로 있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지만 이 논문표절 실태가 가져온 파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찻잔 속 미풍으로만 그치고 잠잠해졌다. 교육부에서는 논문의 본문에서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다른 사람이 사용한 표현이나 아이디어를 출처표시 없이 쓸 경우,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 짜깁기 등을 표절로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세워두고 있다. 논문표절을 근절하기 위해 학교는 최종 심사 시 표절에 대한 검사 결과를 첨부하도록 요구하고 학회에서는 투고 논문에 대해 표절 검사를 시행하는 등 미약하게나마 개선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 일치’라는 기준을 빠져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제목에서 앞뒤 단어의 위치를 바꾸거나, 비슷한 단어로 교체하거나(예: ‘서사’를 ‘내러티브’로, ‘역사적 변천과정’을 ‘역사적 전개과정’으로, ‘현재성’을 ‘역사성’으로 바꾸는 경우 등), 이론의 근거가 되는 학자명을 학자가 속한 학파명으로, 아니면 동일학파 내의 다른 학자의 이름으로 바꾸는 등 단어와 배열 순서의 일치를 피해가는 것은 매우 널리 행해지는 수법이며, 기 발표된 논문 두 편을 합쳐 하나의 논문으로 발표하는 짜깁기나 이와 반대로 학위논문에서 내용의 일부를 떼어내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논문 쪼개기 역시 흔한 수법이다. 앞서 <국민일보>의 추적보도에서 밝혀낸 바와 같이 한 편의 논문을 복수의 학회지에 투고하거나 자신의 학위논문을 요약하여 학술지에 투고하는 식의 중복게재 역시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학위논문을 요약․재구성하여 학술지에 재투고하거나 기존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을 타 매체에 재수록하는 경우, 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자기 표절로 간주된다.) 그래도 기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하거나 학위를 받기 직전 또는 학회 발표 직전 논문을 기존 논문과 비교해 표절을 가려내는 데 대해서는 위와 같은 기준이 세워진 데 비해 그에 못지않게 빈번한 아이디어의 도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피해자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 사건화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똑같은 제목, 아이디어 도용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2013년 모 기관에서 무용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취지로 신화학과 불문학, 미술학, 인류학, 철학, 공연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하는 일련의 교양 강좌가 열렸다. 6월에는 인도춤 전문가가 강사로 나서서 인도의 신화세계를 춤을 통해 읽는 신화학 강좌로 시작해 11월 현대무용가의 입으로 컨템포러리댄스의 현재에 대해 듣는 공연예술 강좌에 이르기까지 6개월 동안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는 총 11개 강좌에 6명의 강사가 참여했다. 프로그램상 일정표에는 강사 F씨가 무용인류학을 주제로 강의하는 두 개의 강좌가 10월에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F씨는 해당 강좌에 초청받은 뒤 강의 준비를 하며 제목을 고심하던 중 영국의 한 음악인류학자가 쓴 저서를 접하고 제목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20여 년간 춤연구에 대해 고민해온 결과를 압축한 문장으로 인간이 춤을 추는 이유를 묻는 의문문 형식의 제목을 결정하고 강좌 이후 그동안 연구자로 정리해둔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도 세웠다. F씨의 첫 번째 강좌가 열리고 난 직후, 모 대학에서 문화예술 관련 주제로 진행된 강좌 시리즈에서 무용과 교수 G씨가 연사로 나서는 특강이 열렸다. G씨의 특강 제목은 공교롭게도 곧 열릴 예정이던 F씨의 두 번째 강좌 제목과 동일했다. G씨는 이 특강 내용을 다시 정리해 동일한 제목의 단행본을 그해 연말 소속 대학교출판부를 통해 출간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특강의 제목이 일치한 이 사례는 논문표절과 달리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며 판단의 주체 또한 모호하다. 유사하거나 똑같은 제목의 다른 콘텐츠가 서로 다른 시기에 혹은 시차를 크게 두지 않고 생산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논문을 검색해봐도 동일한 학자의 이름 또는 학파나 이론, 연구방법론의 일치로 토씨 정도가 달라졌을 뿐인 제목이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어떤 콘텐츠의 제목은 해당 콘텐츠의 정수가 압축된 것이며, 그러한 압축된 제목이 나오기까지는 매우 고도의 숙련된 사고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숙련된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고 쉽게 결과물을 얻고자 할 때, 아이디어의 도용은 도둑질을 한다는 양심의 가책 없이 매우 손쉽게 일어난다. #4. 취재윤리와 공공의 알권리 사이 2014년 서울에서 열리는 한 페스티벌에 해외초청작의 하나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무용단체가 참가했다. 내한 당시 세계 무용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젊은 안무가 I에게 쏠린 관심은 컸고, 한 무용전문지의 J기자가 I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 만남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인터뷰 현장에서 일어났는데, J기자가 취재차 사진기자를 동반하고 찾아간 자리에 당시 축제 사무국의 홍보팀 직원은 당시 사무국의 상위기관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의 제작진 자격으로 축제의 사진기록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사진작가와 함께 나타났다. 사무국에서는 J기자의 인터뷰를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무단녹취했고, 이렇게 공유된 녹취록의 내용은 처음 인터뷰를 요청한 전문지는 물론 기관지에도 동일하게 기사화되었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나눈 대화 중 J기자가 미국에서 따로 관람한 내한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평까지 기관지 기사 내용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공연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나 라운드 인터뷰에서 오고 간 질답은 참석자 모두가 공유하는 열린 정보이다. 참석한 기자들이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한 답변만을 기사화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타 매체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사화했다고 문제시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2014년 당시 안무가와의 인터뷰는 사무국 측에서 해당 전문지의 단독 인터뷰임을 미리 전제했고, 인터뷰 내용을 모 기관의 기관지와 공유한다는 사전협의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J기자가 사무국의 무단취재에 대해 문제제기하자 실무자를 대신해 당시 기관장이 현장에 나와 한 답변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였으며, 해당 기사 내용이 전문지 인터뷰로 이루어졌음을 고지해달라는 요청 역시 묵살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 추가로 진행된 해당 무용단체 소속 무용수 K와의 인터뷰에서는 J기자에게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고 있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홍보팀 직원의 핸드폰을 J기자 뒤의 의자에 숨겨놓는 방식으로 도둑녹취가 이루어져 해당 무단취재가 실수가 아님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제26조에서는 방송이나 신문 또는 그 밖의 방법에 의해 시사보도를 하는 경우 복제나 배포가 가능하고, 제28조에서는 공표된 저작물이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정당한 범위’에 대한 합의나 윤리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물론 인용 표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5. 연구윤리, 공동체의 것인가 연구자 개인의 것인가 무용연구자 L씨가 겪은 일은 무용계가 엄격해야 할 연구윤리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또 연구윤리를 판단해야 할 전문가 그룹의 존재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려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L씨는 최근 기 발표된 본인의 논문과 내용이 유사한 M씨의 연구계획서를 우연히 발견했다. L씨가 본 것은 연구계획서 전문이 아닌 요약문이었지만 자신이 발표한 논문과 제목은 물론 목차의 구성이 유사할 분 아니라 연구대상인 작품마저 일치했다. L씨가 한국연구재단에 두 논문 간 유사성에 대한 문의를 하자 재단 측에서는 자체적으로 연구윤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에 각 대학에 배치된 연구윤리센터에 문의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답변해왔다. L씨는 다시 해당 연구가 진행 중인 대학 측에 같은 문의를 하며 신고서와 증빙자료를 첨부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학계에서 매우 흔히 일어나는 표절 의심사례의 하나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놀랍거나 충격을 주지도 않은 채 세간의 관심과 기억에서 사라지는 여타의 사건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L씨가 표절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을 받기까지의 과정에는 매우 중대한 허점들이 산재해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국고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산하 연구윤리센터가 아닌 대학 측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윤리를 아웃소싱하는 내부의 허약한 시스템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리고 대학 연구윤리센터에서는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M씨의 논문에 대해 L씨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것은 논문표절을 판단하는 데 있어 거의 유일한 기준이며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학위논문을 심사할 때 표절검사 결과치가 15~20%를 넘지 않도록 준거를 세우고 있다. 해당 대학에서는 연구 아이디어의 유사성이 아닌 발표 논문과 연구 중인 논문의 계획서를 동위선상에 두고 표절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L씨는 본인의 논문과 아직 본문이 존재하지 않는 M씨의 미작성된 논문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비교해 결과적으로 표절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근거를 제시받지 못했으며, 법률자문을 받기 위해 요약문이 아닌 연구계획서 전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자 절차상 M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기 전에는 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학계에서 연구윤리를 공동체 차원에서 지키고 감시하여 연구윤리를 어기는 자가 발견되었을 때 처벌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 개인의 법률다툼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렇듯, 개인이 나서서 윤리의 문제를 법으로 다투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며, 개인이 스스로를 소모하는 동안 공동체는 뒷짐진 채 방관하고 있다. L씨는 이를 윤리의 문제인 동시에 신뢰의 문제라고 말한다. 연구자가 윤리를 지킨다는 공동체 차원의 신뢰가 세워지지 않은 채 문제제기가 이루어진다면 문제제기와 해결 역시 개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 문제해결을 떠맡기는 공동체가 존재의 의의가 있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