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의 표절 논란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해묵은 이슈다. 해묵은 이슈라곤 하지만 인간의 창작 욕구나 의지가 사그러들지 않는 한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될 이슈이기도 하다. 인간의 창작 능력이나 지식이 욕구나 의지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아니, 인간의 창작 욕구나 의지는 ‘반드시’라고 말하는 것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창작의 능력이나 지식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늘 아래 과연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라는 손쉬운 한탄 뒤에 숨어 모방과 짜깁기, 표절과 무단 도용으로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2011년 팝스타 비욘세가 신곡 ‘카운트다운’을 발표하며 선보인 뮤직비디오에서 벨기에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로사스 댄스 로사스>의 안무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을 때, 케이르스마커가 명백한 절도라고 주장한 반면 비욘세는 케이르스마커의 작품은 수많은 참고자료 중 하나이며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그보다 더 큰 영감을 준 것은 따로 있다고 밝혔다. 비욘세의 태도는 ‘표절 의심’ 작품을 발표한 창작자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어쩌면 모범답안이라 할 만한 한 전형이다.
영감을 받았다는 모호한 말로 빠져나가며 베끼거나 도둑질하는 행위를 막을 수 없다면 사후에라도 제제할 수는 없을까. 이 사후 제제를 법적 처벌이라는 의미로 읽는다면 무용계에서는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유는 법적 처벌을 가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할 경우 시간과 금전의 비용 손실에 비해 실익이 없고 오히려 좁은 무용계에서 평판이 내려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페이지에서는 논문과 같은 텍스트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윤리의 문제를 다룬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현장의 윤리를 짚는다.
#1. 스승에게 표절 여부를 묻다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신이 생산한 창작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만큼 실연이 중심이 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그리고 무용이라는 좁은 분야에서는 대량복제나 유통 가능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전, 그러니까 해외 단체의 내한 공연이 활발하지 않고 해외 작품의 영상물을 시중에서 구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 무용계에서 희귀한 영상물을 입수해 안무를 익히는 식으로 해외 유명한 작품을 베껴 무대에 올리는 것은 창작의 한 방법으로 간주될 정도로 널리 보편화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제식으로 제자가 스승의 밑으로 들어가 무용을 배우는 교육체제, 특히 무형문화재와 같이 스승의 무용을 원본 그대로 전수받으며 누구를 사사했는가 하는 스승의 이름이 무용의 정체성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용계 문화는 스승의 춤을 똑같이 재현(동일성 유지)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스승의 이름하(성명 표시)에 춤을 추는 것에 보다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정영미, ‘무용저작물의 저작권법상 쟁점과 창작 현장의 관습’, <정보법학> 제18권 제1호 참조) 춤을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저작재산권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기보다 누구의 영향력하에 있는가 하는, 저작인격권의 문제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스승의 이름이 갖는 권위는 창작물의 표절을 판단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창작물의 표절 시비가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표절에 대해 무용계가 공유하고 있는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환경에서 권위를 가진 스승의 이름은 표절이 맞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판관으로 등장했다.
아직 무용계에 저작권 개념이 자리잡기 훨씬 전인 90년대 초반, 서울현대무용단에서 공연한 서병구 안무가의 <우리들의 그날>이라는 작품이 이보다 앞서 발표된 남정호 안무가의 작품 <아이야, 저 산 너머 무엇이>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청소년의 비행과 탈선 문제를 다룬 두 작품에 대해 공연을 본 무용인들은 <우리들의 그날>이 <아이야, 저 산 너머 무엇이>와 상황 설정이나 소품 사용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면서 표절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병구 안무가는 <아이야, 저 산 너머 무엇이>의 공연 당시 다른 작품에 출연 중이라 공연을 보지 못했다는 말로 의혹을 일축하고, 두 작품의 유사성 논란을 측근에게 전해 듣고 스승인 당시 서울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었던 박명숙 교수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였으나 작품의 전개방식이 달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들어 공연을 계획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박 교수는 두 작품이 비슷한 주제임에도 메시지 전달방법이 달라 공연을 그대로 하도록 했다고 말하며 청소년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이슈이니만큼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입장을 내놓았다.(‘무용계 화제’, <연합뉴스> 1991. 5. 16.) 스승이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주며 제자의 작품에 힘을 실어준 케이스로, 무용계가 스승의 권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확인시켜준 단면이라 할 수 있다.
#2. 법정으로 간 공연들
지난호에서 다룬 바와 같이 논문의 경우 본문에서 여섯 단어 이상 연쇄 일치 등과 같은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지만 무용작품은 그렇지 않다. 대중음악계에서는 90년대까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두 소절(8마디) 이상 음악적 패턴이 일치하면 표절로 판단하는 기준이 있었으나 1998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공연윤리위원회가 해체됐고 표절은 원저작자가 직접 법원에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로 전환되었다. 공연윤리위원회가 수행하던 사전 심의 기능이 없어진 대신 표절에 대한 기준이 함께 사라지며 표절 문제는 그에 따라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법적 공방 후 기대이익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다른 이슈에 묻히는 식으로 파편화되고 있다.
법원에서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을 아이디어가 아니라 표현이라고 보고 있으며, 표현에 있어서 저작자의 독창성이 있는지를 두고 표절 여부를 가린다. 클래식 발레나 전통무용처럼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해당하는 기본 동작들의 비중이 큰 무용장르의 경우 창작자가 그 기본 동작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조합하는지와 같은 구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지며, 구성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사상과 감정이 어떻게 담기는지의 여부가 독창성을 가리는 준거가 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무용작품의 표절 시비가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된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법원에서 무용작품의 표절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 기준이 될 만한 사례가 몇 가지 있다.
1) 무용극과 영화의 법정 공방,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 무용극으로 공연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안무가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작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책으로도 출간되어 수익을 내자 자신의 오리지널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두 작품 사이에 청소년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나 소재의 유사성만이 아니라 사건의 구성이나 전개과정, 등장인물 등에서 공통점이 있어야 표절로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이 사건은 양자 사이에 원저작물과 2차적 저작물이라는 관계를 인정할 만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해적판 공연 제작에 경종을 울린 뮤지컬 <캣츠>의 공연금지 가처분 소송
2000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회사 ‘Really Useful Group’(RUG)에서 뮤지컬 <캣츠>의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고 원작을 무단으로 각색해 공연해온 극단 대중을 상대로 공연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1995년 개정된 저작권법이 유예기간을 거쳐 2000년 1월 1일자로 공식 발효됨에 따라 해외 원작자가 국내 공연계를 대상으로 정식으로 저작권에 대해 문제제기한 첫 번째 사례로, 저작권 계약 없이 해적판을 올리는 관행이 만연해 있던 국내 공연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소급 적용이 가능한 저작권법에 따라 RUG 측에서 저작권료로 청구한 금액은 총수입액의 18.5%로 금액은 1억여 원에 달했다.
극단 대중 측에서는 원작을 국내 공연장 사정과 배우들에 맞게 변형한 2차적 저작물이기에 RUG 측의 청구가 과도하다고 맞섰으나(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1차적 저작물과 변형을 가하는 2차적 저작물은 저작권료가 다르게 책정되며, 2차적 저작물로 인정받을 경우 저작권법이 발효되는 2000년 이후 공연에 대해 추후 보상금을 지불하면 되었다) 법원에서는 원작의 음악을 비롯해 안무와 의상, 분장 등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 원작과 실질적 유사성을 갖는다고 판단해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따라 RUG 측 공연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극단 대중 측에서 계획한 지방순회 공연과 서울 앙코르 공연이 무산되었는데, 피고인의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는 극단 측이 홍보물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옮겨왔다는 문구를 사용하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며 판결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브로드웨이 작품 각색 로열티 지급 … ‘캣츠’ 공연금지 가처분 파장’, <한국경제> 2000. 5. 17.)
뮤지컬 <캣츠>의 법정 다툼은 이후 국내 제작사들의 해외 작품에 대한 저작권 계약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은 저작권 계약 후 한국 배우와 스태프들의 손으로 원작을 재창작하는 라이선스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작품으로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라이선스 뮤지컬의 효시가 되었다.
3) 걸그룹 댄스에 대한 안무 저작권 침해 소송, 시크릿의 ‘샤이보이’
2011년, 걸그룹 시크릿의 ‘샤이보이’의 안무를 제작한 안무가가 한 사설 댄스학원을 상대로 저작권침해금지 청구 소송을 냈다. 댄스학원에서 강사가 수강생들을 상대로 ‘샤이보이’의 안무를 강습하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학원 홍보용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안무가는 “‘샤이보이’의 안무는 고유의 창작물로, 댄스학원에서 본인의 허락 없이 일반인에게 안무를 가르치는 것은 지적재산권 침해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전문 안무가인 원고가 ‘샤이보이’ 노래에 맞게 소녀들에게 적합한 일련의 신체적 동작과 몸짓을 창조적으로 조합․배열한 것으로서 원고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이 안무가 저작권 보호 대상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안무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재현하고 강습해 공연권과 성명표시권 등을 침해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하며 원고의 안무를 저작권법에서 허용하는 ‘공표된 저작물을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상업적이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였으므로 피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대중음악계에서는 2014년 6월 사단법인 한국안무협회가 설립되어 안무가들의 권리 보호에 나서고 있다. 협회 홈페이지에는 등록된 저작물에 대한 검색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데, 곡명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안무가의 이름과 발표 일자, 발표 형태(방송인지 콘서트인지)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댄스학원이나 안무를 사용하고자 하는 곳에서 협회에 신청을 하고 매달 일정한 사용료를 지불하면 협회에 등록된 안무들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징수법은 로열티와 카운팅 두 가지로, 학원에서 협회에 등록된 안무를 사용할 경우 등급별로 책정된 로열티 방식으로, 카운팅은 방송사에서 안무가 방송으로 송출된 횟수를 세어 징수하는 방식이다. 협회에서는 앨범 크레딧이나 음악방송 자막에 작곡가와 작사가의 이름이 등재되는 것처럼, 안무가의 이름도 함께 표기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중가수의 안무가 그만큼 시장 경쟁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무용계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르나, 전통무용 쪽에서 무용 저작권을 두고 유족과 제자들이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라 하겠다.
4) 안무가와 공연기획사가 공동제작한 작품에 대한 권리
2016년, 공연기획사 대표가 발레 안무가를 상대로 공연사업을 함께 진행하며 제작한 발레작품에 대해 저작권 침해 금지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패소했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2년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던 A씨가 발레학원을 운영하던 안무가 겸 무용수 B씨에게 함께 발레작품을 만들어 공연사업을 하자고 제안하였고 B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3년간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일하는 동안 두 편의 발레작품을 만들었다. 2015년 5월 B씨는 A씨가 저작권자인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작품을 공연한 사실을 알게 되어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같은 해 6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해당 발레작품에 관한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
A씨는 이 작품들이 B씨가 자신의 피고용인 지위에서 제작한 것이므로 업무상 저작물에 해당해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B씨가 작품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한 것은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이를 말소해야 한다고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 반면 B씨는 자신이 프리랜서 신분으로 발레 공연을 하고 그에 대한 수익을 나누는 사이였기 때문에 A씨와 고용관계로 볼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작품들은 업무상 저작물이 아니라 자신의 단독 저작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A씨와 B씨 사이에 고용관계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작품이 업무상 저작물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A씨의 기여도에 대해 “A씨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따라 발레 작품들의 안무를 담당했고 A씨가 안무에 대한 의견 등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는 A씨가 발레 작품 기획자 또는 연출자의 지위에서 안무가인 B씨에게 작품 콘셉트에 맞게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A씨가 기획자로 발레 작품 제작과정 및 공연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조율과 지휘·감독을 했더라도 발레 무용의 완성에 창작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는 이상 독자적인 저작권자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A씨가 기획의도에 맞게 창작자인 안무가에게 안무의 수정을 요구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공동저작자라고 보기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공연의 당사자들이 무용작품 안무에 있어 창작적 표현의 기여도를 법정에서 가린 사건으로, A씨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지만 이듬해 진행된 2심에서도 또 한번 패소했다.
#3. 해외 작품의 저작권 계약
앞서 해외 작품을 저작권 계약 없이 무단으로 각색해 공연하다 법정으로 간 사례를 다루었지만 새 저작권법이 공식 발효된 2000년 이후에도 이러한 무단 도용과 각색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교가 되는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013년, 프레데릭 애쉬튼 안무의 단막 발레 <마그리트와 아르망>이 국립발레단 출신 김주원 현 성신여대 교수에 의해 국내 초연되었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지낸 애쉬튼은 이 작품을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 커플에게 헌정했고, 폰테인 사후 20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하고 봉인되어 있다가 2000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출신 실비 기옘과 니콜라 르리쉬에 의해 복원되었다. 이후 줄리 켄트, 니나 아나니아쉬빌리, 타마라 로호 등 극소수의 발레리나가 작품에 출연했으며, 아시아 무용수로는 김 교수가 처음이었다. 애쉬튼 서거 25주년을 맞아 <마그리트와 아르망> 외에도 그의 안무작 세 편이 짧은 갈라 형식으로 함께 공연되었다.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로열발레단은 작품을 엄격하게 관리하며 쉽게 공연 허가를 내주지 않는 단체인데, 김 교수 역시 자신의 프로필 외에도 기존의 공연 영상과 함께 공연했던 무용수들의 평가서까지 보낸 뒤에야 공연 허가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에서 15년간 주역으로 활동하며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여성무용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녀도 애쉬튼이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는 까다로운 오디션을 치러야 했던 셈이다.
같은 해, 모 발레단 역시 애쉬튼의 안무작을 국내 초연했다. 발레단 측에서는 작품의 저작권 문의에 대해 작품을 만들 당시 애쉬튼의 원작을 모델로 했으나 안무는 발레단에 맞게 재창작했다고 답해왔다.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많지만 애쉬튼의 작품이 모델이 되었기에 작품 크레딧에 원작을 애쉬튼이라고 표기했다는 대답이었다. 현지 환경에 맞춰 작품을 개작한 것이나 크레딧의 원작 표기까지, 앞서 소개한 뮤지컬 <캣츠>와 매우 유사한 사례다. <캣츠>의 재판부가 판단했듯 발레단 역시 두 작품 간의 ‘실질적 유사성’에 대해 돌아봐야 할 일이다.
좁은 무용시장에서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같은 단체에서도 연말의 <호두까기인형>을 제외하면 정기공연은 횟수로 5~6회 정도 공연되고 내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발레가 대중적으로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관객들의 관심 대부분이 클래식 전막 발레에 쏠리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고 클래식 전막 발레가 수익 대비 고비용구조임을 돌이켜보면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내기란 어렵다. 몇 달씩 장기공연을 하는 것이 정착된 뮤지컬시장이 연간 매출액 기준 3,5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것과 비교하면 시장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고, 해외 발레단이 몇 주 동안 공연하며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과 비교해도 티켓수익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거나 혹은 이익을 내는 데까지 이르는 길은 아직 요원하다.
민간에서 발레단을 운영하며 발레작품을 제작할 때, 바로 직전에 언급한 <마그리트와 아르망>의 사례처럼 공연권을 취득하기 위해 서류와 영상 심사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공연 허가를 받고 저작권 계약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90년대까지 해적판 작품들이 공연계에 만연했던 것은 제작사의 영세성과 창작력의 빈곤이 겹쳐진 결과였다. 무용계 민간단체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영세하기 때문에 정당하게 저작권 계약을 맺지 못하고 무단 각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영세성의 해결과 창작력의 발전은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영세성이 해결된다고 창작력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니 창작력 빈곤을 영세성 뒤에 숨긴 채 영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과정 없는 결과는 계속 반복될 뿐이다.
#4. 다른 주제, 유사 장면 - 표절과 모티브 사이
2014년, 영국의 한 현대무용가가 국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자신의 최신작을 공연하였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하거나 점령하면서 벌어지는 폭력과 독재, 전쟁 등의 문제를 담은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곧은 신체로 정련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굽은 등으로 경련을 하듯 온몸을 떨며 움직였고, 아프리칸댄스, 이스라엘 민속무용, 라틴댄스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해당 무용가와 같은 컴퍼니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독자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안무가가 현대인의 위선과 가식을 주제로 한 공연을 올렸다. 공연지원금이 주어지는 국고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작품 후반부에서 무용수들이 가식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전해 내한했던 영국 현대무용가의 공연과 무용수의 움직임이나 동선의 배치, 그에 따른 조명 활용과 사운드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 한 관객이 이 장면에 대해 영국 현대무용가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였냐고 질문하자 안무가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아프리칸댄스를 활용한 안무였다고 답했다.
올해 한 지자체 문화재단의 공연지원작으로 선정된 한 현대무용 공연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성의 인생을 행성의 궤도에 빗대어 풀어낸 작품으로, 공연 말미에 객석에 있던 관객들이 무대에 함께 올라가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커뮤니티댄스가 활발해지고 관객들을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타자로서가 아니라 공연을 함께 즐기며 호흡하는 파트너로 바라보며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 공연장에서 이처럼 관객들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문제는 해당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국내 한 민간발레단에서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자주 공연하고 있는 이스라엘 안무가의 작품과 매우 흡사했다는 점이다. 문제의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관객들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 그 앞에서 짝을 지어 정해진 안무를 소화하는데, 관객과 무용수가 서는 위치(객석에서 바라볼 때 관객은 왼쪽, 무용수는 오른쪽)나 무용수들의 동작, 동선의 이동 등 짧은 장면이지만 안무의 구성이 이스라엘 무용가의 작품과 판박이처럼 유사했다. 공연을 본 문화재단 평가위원은 이에 대해 재단 측에 문의를 넣은 상태로, 재단에서는 확인해보겠다는 말로 입장을 유보했다.
미국의 경우 오랫동안 스토리라인이 있는 움직임만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무로 간주되었다. 무용저작물이 연극저작물 안에 포괄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인데, 이에 따르면 무용이나 무언극의 경우 극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 한해 연극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분명한 줄거리를 가진 클래식 발레는 이에 완벽히 부합하는 장르였다. 20세기 동안 공연예술이 빠르게 발전해가면서 1976년 저작권법의 개정과 함께 무용저작물은 연극저작물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저작물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 삽입되게 되었다. 그러나 별도의 저작물로 보호받으려면 창작적이고 표현적인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입법 보고서상에는 사교춤 스텝과 단순한 반복동작들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정영미, ‘무용저작물의 저작권법상 쟁점과 창작 현장의 관습’, <정보법학> 제18권 제1호 참조)
앞서 법정 다툼에까지 이른 공연들의 사례는 표본으로서는 매우 적은 사례들이기는 하나 저작권의 귀속 주체를 두고 다투었던 마지막 사례를 제외하면 두 작품 간의 실질적 유사성을 비교함에 있어 모두 작품 전체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일부 장면의 유사성만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설사 소송을 제기한다 해도 저작권 침해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창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표절 논란은 대개 하나의 작품이 다른 한 작품을 찍어낸 듯이 베끼는 것보다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골라 짜깁기를 했다거나 작품의 일부 장면이 앞서 공연된 어떤 작품과 유사하다거나, 아니면 동작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스타일이 어떤 안무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는 식의 모호함 속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모호함이 안무를 볼 줄 모르는 무지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모호함 속에 ‘설마 누가 알겠어’라거나 ‘들키지 않으면 되지’ 같은 게으름의 지분은 없을까. 표절 논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창작자의 양심’이지만 창작에 대한 욕구나 의지는 창작 능력과 지식 못지않게 창작자의 양심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왔다. 유튜브 덕분에 해외 최신 공연들도 모니터 앞에서 감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 세상이다. 어쩌면 창작자들을 각성시킬 수 있는 것은 양심보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