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블랙페이지

성폭력의 사각지대, 예비 무용인이 위험하다

7월은 성폭력에 대한 백래시의 달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성폭력과 관련해 제도권의 반동이 몰아친 시기였다. 7월 6일에는 사법부에서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유통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려 전 국민적 공분을 샀고, 또한 같은 날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은 모친상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서울대병원에 빈소를 차리고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국회의원들과 장관들의 조문을 받으며 세를 과시했다. 

 

그리고 10일 자정을 넘기자마자 전해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 소식과 뒤이은 성추행 피소 사실은 그가 1998년 서울대 신 모 교수의 성희롱 사건을 맡아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며 당시만 해도 국내에 희박했던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인식을 공론화한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특히 박원순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반응들은 안희정에 대한 조문과 더불어 정치권의 ‘우리 편 감싸기’와 피해자를 향한 전방위적인 2차 가해로 드러나며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 현재를 확인시켜주는 지표가 되었다. 

 

블랙페이지에서는 지난 5월호에서 무용계 성폭력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무용계에서 성폭력이 어떻게 일어나고 은폐되는지, 피해자가 어떻게 좌절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지, 그리하여 무용계의 침묵과 평화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결과였다. 박원순을 고소한 피해자를 상대로 벌어진 ‘피해자다움’의 여론재판과 2차 가해의 양상들은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는 것이 아직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재차 확인시켜주기에 이 설문에 응답한 용기,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로 결심한 용기의 의미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5월호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계 위주로 정리해 발표하느라 피해를 제보해온 사례에 대해서는 지면상 다루지 못했는데, 5월과 6월에 현대무용가 천 모 씨의 피감독자 간음 1심과 현대무용가 류 모 씨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항소심 판결이 차례로 있어 이를 전달하느라 한 달이 더 미뤄졌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제보자들을 기다리게 만들어 송구한 한편 피해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사건 보도를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미루는 데 선뜻 동의해준 제보자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다. 

 

 

 

안전과 바꾼 무용, 어떤 학원에서 생긴 일 


A씨는 여섯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무용을 시작했다. 열혈 무용팬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무용 공연장을 다니며 한글을 익히기도 전에 무용 관련 용어들에 먼저 익숙해졌기에 무용을 시작한 것은 그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외동딸이었던 그가 무용을 배우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무용콩쿠르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고 예술학교와 예술고등학교에도 무리 없이 진학했다. 

 

불행은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찾아왔다.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 아버지의 사업이 급격히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고, 어음을 돌려 막으며 근근이 버티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아버지와 연락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집안 형편이 무용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제가 무용을 그만두면 정말 다 무너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엄마도 제 뒷바라지만 하셨지 생전 돈 버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셨지만 저 하나 대학 못 보내겠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요. 엄마는 제가 무용을 계속하고 있어야 아빠도 돌아온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말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내심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제가 무용을 하고 있는 동안은 다 괜찮다고, 엄마도 저도, 어디 계신지 모르는 아빠도 다 괜찮다고요.” 

 

A씨의 사정을 알게 된 무용학원 원장은 학원비를 면제해주고 콩쿠르에 출전할 때 작품비를 받지 않고 안무를 해주는가 하면 소수정예로 이뤄지는 그룹레슨에 끼워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무용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은인이 그 원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원장 선생님은 천사였어요. 선생님한테 저보다 오래 배운 애들도 있었는데 저는 특히 예쁨을 많이 받았어요. 저희 집 사정을 아시고 나선 티 안 나게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고, 레슨만 해주시는 게 아니라 콩쿠르 의상을 만들어주신 적도 있어요. 손재주가 좋으셨거든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진작 무용 그만뒀을 거예요.” 

 

문제는 ‘천사 같은 원장 선생님’의 남편이었다. 레슨이나 상담은 거의 원장이 전담하다시피 했고 남편은 가끔 특강을 하는 정도였지만 그는 학원 수강생들의 레슨 방식이나 입시 상담, 콩쿠르 출전 등에 수시로 관여했다고 했다. 남편의 입김으로 콩쿠르 작품이 바뀌는 일도 있었고 대학 지원에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해 마찰을 빚곤 했다. 무상으로 레슨을 받고 있던 A씨는 그의 손쉬운 타깃이 되었다.

 

“한번은 콩쿠르 작품 연습을 하다 남자 원장 선생님이 저를 엄청 혼내신 적이 있었어요. 그땐 너무 놀라서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는 잘못한 게 없었어요. 원장 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하루만 봐주시는 거였는데, 제가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하는 걸 자꾸 틀렸다고 지적하시는 거였어요. 근데 제가 우는 걸 말없이 보고만 계시더니 갑자기 껴안고 키스를 하시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행동에 A씨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울음을 그친 그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편은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A씨는 그 사과를 성추행에 대한 것으로 여기고 넘어갔지만 곧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도 저항하거나 화를 낼 생각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를 못 했던 것 같아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분명히 사과하셨는데, 사과하셔놓고 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실까. 멍해서 쳐다보니까 또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뭐가 미안하신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걸 물어보는 데에도 입이 잘 안 떨어져서 몇 번 만에야 겨우 물어볼 수 있었어요.”

 

남편은 우발적으로 또는 실수로 성추행을 저지르고 그에 대해 사과한 것이 아니었다. 무섭게 야단을 쳐서 미안했고, 잘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했고, 또 다른 수강생에게 더 신경을 써서 미안했다. 아내가 있는 몸이라서, 제자인 네가 여자로 보여서, 미성년자인 너와 자고 싶어서 등과 같이 A씨에게는 남편이 하는 사과의 이유가 점점 더 공포스러운 것이 되어갔다. 그동안 성추행은 상습적으로 저질러졌다. 장소는 주로 학원 무용실이나 탈의실, 때로는 집에 데려다준다며 차로 데려가 그 안에서 추행을 하기도 했다. A씨가 남편과 둘만 남겨지는 것을 피하려 해도 그는 어떻게든 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추행의 수위 역시 점점 높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를 하거나 아니면 학원을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A씨는 금세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연 그는 당시 무용은 자신과 어머니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고 대답했다. 무용을 그만둘 수도 없었고, 학원비 부담이 없는 그 학원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할 생각을 못 한 것 역시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학원을 계속 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입이 끝날 때까지만, 이는 당시 A씨를 버티게 한 주문이었다. 

 

“수시 발표날이었어요. 대학 두 곳을 지원했는데 양쪽 다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었어요. 그래도 학원에서는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설마 한 군데는 붙겠지 했는데 너무 충격을 받았죠. 원장 선생님께 전화해서 울면서 죄송하다고 했어요. 엄마를 실망시켜드린 것도 그렇지만 2년 넘게 학원비도 안 받고 지도해주셨는데 원장 선생님한테도 너무 죄송했어요. 이러려고 여러 사람 힘들게 하면서 무용 했나, 나 같은 게 살아서 뭐하나,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제가 계속 우니까 선생님이 엄마랑 같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저 혼자라고 하니까 밥은 먹었냐고, 우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한다면서 울어서 힘 다 빠졌을 거라고, 밥 해줄 테니까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A씨는 집으로 오라는 원장의 말에 남편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내 원장이 함께 있는데 설마 별 일이 있겠는가 싶어 걱정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원장의 선의보다 강했던 건 그 남편의 범행에 대한 의지였다. 원장의 두 자녀는 각각 학교와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원장과 남편 두 사람이 A씨를 맞이한 집에서, 원장이 주방에서 저녁을 차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은 집을 구경시켜준다며 방으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갑작스러운 범행에 놀라고 당황했을 뿐 아니라 원장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생각보다 저녁식사 준비를 일찍 끝낸 원장이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라 했다. 

 

“처음엔 다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 원장 선생님이 있을 줄 뻔히 알면서 왜 선생님 말씀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했어야 했는데 왜 방에 따라 들어갔을까. 주방에서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제가 대처를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 제 탓 같았어요.” 

 

저녁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A씨는 대학 진학 때까지만 견디자고 되뇌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바람이었는지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와 처음 성추행을 당했던 그때 무용을 그만두었어야 했다고, 학원비를 핑계로 학원에 미련을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가해자의 뺨을 때리고 손을 물어뜯고 발로 걷어차며 저항을 했어야 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한 건 당연한 결과라고 자책하면서 A씨는 남편의 뺨 대신 자신의 뺨을 때리며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무용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원장도 어머니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수시 불합격의 충격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아직 정시가 남아 있으니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달랬다. 그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웠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남편과의 인연을 끊어내는 것은 무용을 그만두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A씨는 무용을 그만두고 재수를 해 지방에 위치한 교육대학에 진학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하반기 초등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임용고시 사전예고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초등학교 교원 채용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도 불안요소라며 일단 시험 일정이라도 알고 싶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용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쓰게 웃었는데, 때때로 무용을 그만둔 것이 후회스럽긴 하지만 안전과 무용을 바꾼 거라고 생각하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가 무용을 그만두고 나서 어머니도 더 이상 무용 공연을 보러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안전과 무용을 바꿨다는 그의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서, 무용 강사의 그루밍과 가스라이팅


B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할지, 아니면 관련 기관에 취업을 할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는 꿈은 접었지만 무용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고 무용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기에 나름의 타협안을 찾은 것이라 했다.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대신 유학을 선택한 것은 유학 가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다기보다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면서 무용을 계속하는 방법을 찾다가 나온 차선책이었단다. 

 

“선생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되게 많았어요. 동작을 잡아준다면서 뒤에서 껴안는다거나 몸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한다면서 치마를 벗게 하고 속옷 바람으로 연습을 시킨다거나 하는 것들인데요, 연습 지도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뒤에서 껴안았는데 엉덩이에 성기 부분이 닿는 게 느껴진다든지 다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뭔가 끈적거리고 느끼하다든지요. 하여간 별별 얘기가 다 있었어요.”

 

B씨가 ‘선생님’이라고 부른 이는 무용 강사였다. B씨가 다니는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에도 강사로 출강했고 무용학원에서도 수업을 했을 뿐 아니라 안무가와 무용수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매우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 B씨는 그에게 배우기 전부터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왔기에 그가 전공 수업을 맡게 되었을 때 다소 자포자기한 상태였다고 했다.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그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나겠네,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네, 그런 기분이었어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매를 맞을 거라면 빨리 맞는 게 낫다고요.”

 

패배주의가 기대를 내려놓게 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B씨가 들어온 소문들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이었는지, 정작 강사의 수업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기수업을 하는 동안 신체 접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듣던 바와 같은 성적인 접근은 아닌 듯했고 가슴이나 다리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기분 나쁘긴 했지만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니 그것도 견딜 만했다.

 사건은 학교 수업 시간이 아니라 회식 자리에서 벌어졌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뒤풀이를 했을 때였다.

 

“제가 술을 못 마셔서 뒤풀이에 오래 남아 있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날은 선생님이 자꾸 못 가게 잡으시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저도 따라서 가려고 하는데 저만 붙잡으시면서 ‘너는 내가 준 기회를 다 썼어. 오늘도 집에 일찍 가면 아웃이야’ 그런 말을 하시는 거예요. 술에 취하셔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듣고 집에 가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날은 공연을 보러 오셨던 다른 선생님들도 계셔서 뭔가 우리 선생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B씨가 ‘다른 선생님들’이라 칭한 이들은 평론가들과 협회 이사들로, 강사는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선생님들이며 술을 따라드리라고 권했고 술잔이 도는 동안 그들 옆에 가서 앉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점점 성적 수위가 높은 농담이 오가기 시작했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허벅지를 더듬거나 뺨에 입술을 대는 등의 신체 접촉도 일어났다. 추행의 가해자들은 ‘다른 선생님들’이었다. 

 

“그날은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는데요, 다음 번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부르시면서 그날 잘 들어갔냐고, 불편하진 않았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서 무리해서 마셨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 술자리가 생기면 일찍 일어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러니까 술 못 마시는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막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강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에서 세심하게 배려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B씨는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강사가 너무 간곡하게 사과를 해오는 바람에 그의 저녁식사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했다. 강사는 B씨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네가 너무 예뻐서 선생님들이 그러신 거다’라며 이해를 강요했다. 다음부터는 술을 강권하지 않을 테니 술자리에서 빠지지 말라고도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시끄러운 술집 말고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더 하자고 제안했다.

 

“선생님 차가 모텔 앞에 멈춰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이 얘기한 조용한 데라는 게 모텔일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제가 놀라서 차에서 안 내리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막 웃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냐고, 내가 너랑 모텔에서 뭘 하겠냐고, 사람을 뭘로 보는 거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1절로 안 끝내고 모텔 보고 놀라는 거 보니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남자친구랑 모텔은 와봤냐고, 남자친구한테 나랑 모텔 온 거 얘기할 거냐고, 계속 그러시니까 제가 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놀림 받는 게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나 강사의 태도는 모텔 안으로 들어간 뒤 곧 바뀌었다. 그는 모텔 방문을 닫자마자 B씨를 완력으로 제압해 성폭행을 시도했다. B씨는 울고 빌고 애원한 끝에 유사성행위를 도와주고 나서야 겨우 모텔을 나올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강사는 따로 만남을 요구하거나 사귀자고 하며 계속 연락을 해왔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나자 그의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해당 강사가 출연하거나 또는 그가 안무한 공연을 보러 가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겼고, 한번은 그와 같은 공연에 출연하게 돼 연습실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 기사를 많이 찾아봤는데, 기사에 ‘몸이 얼어붙었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나중에야 아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됐어요. 연습을 하는데 몸이 얼어서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무용수 분들도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시고 지도하시던 선생님도 막 야단을 치시고…… 그렇게 어려운 동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선생님이 저를 야단을 쳤다가 달랬다가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결국 공연에서 빠지라고 하셨어요. 그때 무용수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B씨 역시 A씨와 마찬가지로 모텔에 따라 들어간 자신을 탓하며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 A씨와 달리 그는 언젠가 무용수로도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예비 무용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A씨와 B씨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많다. 두 피해자는 피해 당시 학생 신분이었으며, 가해자는 그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교습자였다. 가해자가 둘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골라 범행을 시도한 것이나, 피해자가 섣불리 피해 사실을 공론화할 수 없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이용했다는 것 역시 소름이 끼치도록 닮아 있다. 범행이 일어나기 전 그루밍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는 강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었고 피해자로 하여금 범행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 있었다는 것,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자신을 탓하며 아직도 가해자를 두려워해 고소하거나 공론화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또한 비슷한 점이다. 

(A씨는 무용에 대한 꿈을 접고 전공을 바꾼 상황임에도 가해자에 대한 공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고백했고, B씨는 지금 당장은 가해자와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일이 없지만 유학을 다녀온 뒤 가해자와 일로 엮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다고 말했다. 두 사람 외에도 제보자가 한 명 더 있었으나 세 번째 제보자는 기사 송고 전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빼달라고 요청해왔다. 익명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세 번째 제보자의 이야기 역시 학생 시절 겪은 성폭력이었다.)

이번 호에서 다룬 사례는 제보가 들어온 중에서 인터뷰가 성사된 사례를 대상으로 했기에 무용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실태를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여러 건 제보되었다는 사실은 이 두 사례가 성폭력의 전형화된 패턴 중 일부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번 호 사례들과 함께 법정으로 간 현대무용가 류 씨와 천 씨의 성폭력 사건, 5월호에서 발표한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무용계에서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는 무용 전공 학생들, 즉 아직 무용계에 진입하기 전의 예비 무용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하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교수나 강사에 의해 일어난 성폭력 사건은 학내에서 조용히 처리되고 시간이 지나면 가해자가 조용히 복귀해 피해자들을 두 겹의 공포로 떨게 만들며, 무용계에서는 가해자가 류 씨 같은 현장 무용인이 아닌 이상 학교에서 해결할 일로 여기며 모르는 척하기 십상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용계에서는 창작자 지원과 창작 환경의 건강성 회복과 함께 창작자로 성장 가능성이 단절되는 예비 무용인들의 보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호 기사를 작성하기 전 제보된 사례 중 제보자와 인터뷰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기사화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예외적인 사례를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피해자가 설문조사 양식과 블랙페이지 공식 메일을 통해 피해 사실을 제보해온 사례로, 제보자와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기사 마감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묵살할 수는 없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해자의 인적사항이 특정되는 내용을 수정하고 문장을 다듬는 선에서 사례를 수록하기로 했다. 약간의 교정교열을 거쳤을 뿐 피해자의 목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실었음을 알린다. 


 알리려고 합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무용수 C한테 신촌에 있는 무용학원에서 두 차례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아주 교묘하게요.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리는 순간이나 지나쳐가는 순간 팔꿈치로 제 가슴을 눌렀습니다. 한번은 실수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마주칠 때마다 몇 차례씩 벌써 서너 번은 피해를 당한 것 같습니다. 너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특히 그렇게 절 추행하고 나서 바라보는 눈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절대 알지 못하게 그렇게 스치듯이 성추행을 하면서 항상 절 내려다보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어디에 알려야 될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그 학원은 가지 않습니다. 다른 선생님 수업도 듣기 싫어져서요.

 C의 수법은 유두를 팔꿈치로 누르고 엉덩이를 스치듯이 여러 차례 만지는 것인데, 제 친구도 그 수법에 당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도 처음엔 그냥 스쳤겠지 했는데 몇 차례씩 당하고 보니 너무나 혼란스럽고 C를 보면 분노가 치밀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C의 출신 대학에는 남자 무용수들이 많고, 그중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있는데 성추행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그 어떤 조치나 교육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나 괴롭고 수치스럽습니다.

 제발 멈춰주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저처럼 힘없고 아직은 학생 신분인 사람은 가해자에게 따질 수도 없고 또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발뺌할 수도 있어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다들 저에게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상황이, C의 눈빛이 잊히지 않습니다. 정말 너무 수치스럽습니다. 그렇게 교묘하게 성추행을 하고 다니면서 본인은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경멸스럽고 화가 납니다. 막상 당하고 보니 너무나 괴로워요. 그 사람은 그렇게 활동하는데 저는 당하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에 빠져 있다는 게요.

 현재 증거도 없고 신고할 방법도 없지만, 저처럼 C에게 당한 사람이 더 있다면 저도 참지 않고 그 사람을 신고할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아직 너무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도와주실 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추행범 C가 스스로 반성을 할지 모르겠네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메일로 제가 당한 일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고통스럽고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증거도 없이 이렇게 저만 힘들고 당하고 이 기분을 누가 알아줄지 모르겠습니다.

블랙페이지에서는 위 사례의 추가 피해자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할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니 미처 연락이 닿지 않은 제보자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널리 전달해주시기를 바란다.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