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디지털 성범죄의 새로운 지옥
‘N번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건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피해 양상에 대해, 가해자의 신원에 대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해낸 끔찍한 범죄 수법에 대해 관련 기사가 연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고 분노한 여성들은 SNS를 중심으로 엄중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온라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에서는 뒤늦게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팀을 꾸려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수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이제야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N번방’이란 텔레그램에 개설한 다수의 비밀 채팅방에서 여성 대상 성착취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 조직적인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는 성인은 물론 아동 청소년이 포함되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는데, 반면 가해자들은 채팅방 입장 시 신분증이나 성착취 사진 등으로 ‘인증’을 거치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모네로 등의 가상화폐를 지불했다. 영상과 사진의 거래를 통한 인터넷상의 ‘성구매’가 이루어진 것은 물론 신체 훼손과 성폭행이 입에 담기도 끔찍한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이 채팅방에는 방마다 이름이 따로 있으며 시초는 ‘갓갓’이란 닉네임의 유저가 운영하던 1번방부터 8번방까지의 8개 방을 가리키는 ‘N번방’이었다. 그리고 성착취물 수위의 잔혹함으로 이름 높았던 ‘박사방’과 같은 유사한 성격의, 혹은 ‘N번방’을 모방하거나 여기서 파생된 방이 빠르게 늘어나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해 7월, 두 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취재팀 ‘추적단 불꽃’의 취재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사건은 11월 <한겨레>가 언론사 최초로 기사화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12월에는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이, 해를 넘겨 1월에는 역시 익명의 여성들이 주축이 된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팀이 결성되어 텔레그램 본사 및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공론화에 적극 앞장섰다.
3월, ‘박사’라는 닉네임으로 텔레그램 성착취 방을 운영하던 조주빈(24)이 구속되어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낡은 제도는 진화하는 범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범죄에 대한 법안을 만들고 이를 집행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법조인들의 낡은 인식은 범죄의 심각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국민동의 청원 1호로 등록된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국회 국민청원’은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드냐”라는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의 망언과 함께 딥페이크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쳤고, 이미 재판에 회부되어 공판이 진행 중이던 ‘N번방’ 운영자 중 한 명인 ‘와치맨’ 전 모씨(38)는 결심 공판에서 검사가 징역 3년 6개월의 형을 구형하고 선고 공판만 남겨두고 있었지만 분노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갑작스럽게 기일을 연기하고 범죄에 대한 보강수사에 들어갔다.
여기에 조주빈의 ‘박사방’ 운영진이었고 이와 유사한 ‘태평양원정대’라는 성착취 방을 운영하다 그보다 앞서 기소된 가해자 ‘태평양’(16)의 재판을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맡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분노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가 과거 전담한 성범죄 관련 재판들에서 가해자들에게 매우 관대한 처분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이 구하라를 상대로 불법촬영, 재물손괴, 상해, 협박, 강요 등을 한 혐의에 대해 불법촬영을 제외한 나머지 죄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으며, 재판 과정에서 최종범이 찍은 성관계 영상을 확인해 2차 피해를 양산하기도 했다. 전 조선일보 기자 조희천의 배우 장자연에 대한 성추행 혐의 역시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되었다.
오덕식 판사를 N번방 사건 관련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게시된 지 사흘 만에 40만 동의를 넘어섰고 SNS에서는 판사 교체를 요구하는 릴레이 해시태그 운동이 거세게 이어진 끝에 마침내 법원에서는 교체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철회하고 사건을 형사22단독 박현숙 판사에게 재배당했다.
더 끔찍하고 잔인해진 디지털 세상의 강간문화
경찰에서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N번방’ 등의 성착취 방 운영자만이 아니라 영상의 제작과 유포를 실행한 자들, 영상을 다운받아 소지한 자들을 모두 공범으로 보고 처벌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법무부에서도 영상을 소지하지 않고 시청만 했더라도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함은 물론 범죄단체조직죄 적용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텔레그램 안에서의 성착취 범죄는 유사한 방이 계속 생겨나며 멈추지 않고 있고 도리어 게임 전문 채팅방인 디스코드 등으로 플랫폼을 옮겨가며 나날이 확대일로에 있다. 범죄에 이용되는 플랫폼이 변화함에 따라 범죄 양상은 더욱 잔인해지고 악랄해지는 경향마저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처럼 전 사회적 관심을 받은 것은 ‘N번방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소라넷이 폐쇄되고 나자 범죄자들에게는 웹하드 카르텔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이 웹하드 카르텔의 정점에 있던 위디스크 회장 양진호가 구속되었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 전문 사이트 웰컴투비디오가 다크웹이라는 전용 브라우저에서 운영되었던 사실이 드러나며 충격을 안겼다.
웰컴투비디오에서는 2년 8개월간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착취하는 영상 25만 개가 올라왔고 전 세계 이용자 128만 명, 다운로드 횟수는 100만 회를 넘어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32개국 수사기관의 공조 수사 끝에 검거된 이용자 310명 중에 한국인은 223명으로, 아동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을 업로드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손정우라는 20대 한국인 남성으로, 그는 지난해 5월 2심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구속되었지만 다음 달이면 형 집행 만기로 출소한다. 혐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지만 그나마도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형량이 올라간 케이스다.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가 웹하드 카르텔에서 웰컴투비디오, N번방으로 진화 및 확장되는 동안 성관계 영상의 불법촬영이나 유포만이 아닌 온라인 유포와 거래를 목적으로 현실 속에서 실제 성폭행이 자행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디지털 성범죄와 현실의 성범죄가 분리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가수 빅뱅의 멤버 승리가 운영하던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약물강간과 스너프 필름 촬영, 정준영의 단톡방으로 확인된 강간과 불법촬영 사건이다.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간 강간문화는 현실의 위선을 벗어던진 채 더욱 끔찍하고 잔인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용생태계에 떨어진 불법촬영이라는 재앙
이처럼 범죄 수법이 점점 잔혹해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뚜렷한 특징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속 캐릭터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성범죄가 본디 성욕이 아닌 일그러진 권력욕과 지배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가해자는 피해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은 채 범행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고발로 처벌을 받은 뒤에도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갖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에 이르러서는 촬영과 유포, 시청 등 범죄가 실행되고 공유되는 과정이 게임을 즐기듯 놀이문화의 하나로 정착되는 경향마저 보인다. 피해자의 인격은 말살되고 물화되어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는 신체만 남는 것이다.
지난해 무용계에서 디지털 성범죄로는 처음 법정으로 간 사건인 현대무용가 김 모씨(33)의 불법촬영 사건은 이 ‘놀이화’되고 있는 범죄문화의 특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는 사건이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동부지법(형사5단독, 판사 이상률)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10월형에 처해졌다. 피해자가 확인한 김 씨의 불법촬영물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여 동안 핸드폰과 노트북은 물론 네이버 클라우드와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되어 있던 여자친구들의 나체 사진과 성관계 영상, 동료 여성 무용수들의 연습실 스트레칭 사진, 길거리 등에서 촬영한 일반인 여성들의 사진과 영상 등 대상이나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고 촬영된 것들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SNS에 게시된 일반인 여성들의 프로필 사진을 무작위로 다운받아 얼굴에 정액을 배출하는 영상을 합성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피해를 당한 줄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이지만 공소장에 기록된 건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 여자친구였던 두 명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4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이 가운데 한 건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촬영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가 다시 촬영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피해자의 기억을 믿을 수 없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사건은 쌍방 항소로 올해 초 제1형사부(판사 이태우, 이봉락, 김희동)로 넘어갔는데, 피고인 김 씨는 원심의 양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한 반면, 검사 측에서는 원심의 양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는 정반대 이유와 함께 무죄 판결을 받은 건에 대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촬영에 동의한 적 없다고 진술하였으므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난 3월 19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김 씨와 피해자가 연인 사이였던 점이나 영상이 촬영된 각도와 거리,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진들이 촬영되었던 사실, 피해자의 진술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촬영이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다른 증거가 없다는, 원심과 거의 동일한 판단을 내리며 쌍방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양형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지 않고 있는 현행 성범죄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였다는 주장은 매우 폭 넓게 반박되며,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은 때로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세한 내용을 진술하고 그 내용의 일치성을 검증받는 방식으로 매우 엄격하게 검토된다. 디지털 성범죄 국면에서 피해자 의사에 반한 촬영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판단이 내려진다. 촬영에만 동의했을 뿐 동의하지 않은 유포에 대해서도 촬영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정상 참작되기도 한다.
김 씨는 항소가 기각되며 원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10월형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관련기관 취업제한 3년 명령을 이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느끼기에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그는 출소 후 고소와 처벌에 대한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는 데다(김 씨의 경우 항소심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60건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했는데, 범행에 대한 반성 없이 감정적인 호소로 일관하는 이 반성문은 도리어 피해자의 분노를 일으켰다), 무고와 업무방해 등으로 보복성 고소를 하는 일이 잦으며, 무엇보다 성범죄는 형사범죄 가운데 유독 재범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씨는 동료 여성 무용수들과 일반인 여성 대상 불법촬영 건과 일반인 여성의 얼굴로 합성물을 제작한 건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았는데(인천 부평경찰서는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수사에 착수했고, 김 씨에게 불법촬영 건으로 수사에 들어간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위에서 적었듯이 소라넷에서 N번방까지 디지털 성범죄가 진화해오는 동안 촬영 범죄의 대상과 장소는 무제한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그 수위 또한 매우 잔혹해지고 있다. 자극의 역치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인 무용에서 불법촬영은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범죄다. 무용인들은 공연을 준비하며 리서치 과정에서, 연습현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일상화된 이들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김 씨가 보관 중이던 불법촬영물 목록에서 확인한 것처럼 무용수들이 작품을 위해 몸을 푸는 일상적인 움직임은 성범죄자에 의해 너무도 쉽게 물화될 수 있다. 과거 소라넷에서부터 N번방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세상에서는 김 씨가 촬영하거나 제작한 불법촬영물과 유사한 게시물들이 꾸준히 공유되어 왔으며,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포르노 배우’가 되었고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도 ‘유작’으로 불리며 성범죄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자원이 되어왔다. 김 씨의 불법촬영물과 N번방에서 소비된 성착취물 사이의 거리는 단 한 걸음이다.
연인이나 부부처럼 친밀한 사이에서, 또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이뤄지는 불법촬영의 심각성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무용수들처럼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업무의 일부인 사람들에게 불법촬영은 일상적인 업무를 지속하는 데 큰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자유로운 몸의 표현을 위축시키는, 무용 창작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무용생태계에 떨어진 불법촬영이라는 재앙을 몰아내기 위해 무용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이 사건을 지켜봐야 한다.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
*블랙페이지 취재팀에서는 2018년 미투 운동과 함께 시작했던 무용계 성폭력 실태 조사를 다시 진행합니다. 이제야 고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현재, 몇몇 사건들을 파편적으로 접하고 공분하는 것이 아닌 무용계 성폭력의 양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설문에 응답하는 외에 추가로 제보할 내용이 있거나 인터뷰를 원하시는 분은 blackpage.dance@gmail.com 으로 메일 주십시오. 설문은 물론 추가 제보나 인터뷰에서 개인 정보와 관련된 내용은 비밀이 엄수되니 안심하고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설문조사 링크 ▶▶▶ 무용계 블랙페이지를 쓰다 - 성폭력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