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블랙페이지

무용계 그 지독한 가해자중심주의

무용계는 폭력과 비리에 무감한 세계다. 이는 무용계만이 아니라 예술계 전체가 공유하는 속성일 수도, 아니면 저신뢰라는 사회적 바탕 위에서 압축성장을 해온 한국 사회 특유의 성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무감함은 폭력과 비리를 대물림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윤활유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물림과 악순환은 무감함이 아니라 수직적 질서 속 위력에 대한 공포가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그러나 무감함이냐 침묵에의 강요냐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폭력과 비리에 익숙해진 세계가 ‘가해자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위한 무대는 있다 

 

지난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2020 서울 전통춤 문화제’가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개폐막식과 명무 및 시민동아리 공연 등으로 진행되었다. 행사는 서울시 주최로 치러졌으며, 행사 개막식인 ‘춤, 서울을 날다’의 명품춤전은 국악방송을 통해 온라인 중계되었다. 문제는 이 개막식에서 발생했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이는 원로비평가인 용인대 A명예교수로, 그는 회원으로 있던 한국춤비평가협회에 성폭력 관련 제보가 들어가 협회에서 제명된 인사다. 본인은 제명이 아니라 자의 탈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는 홈페이지의 협회 연혁에 2018년 11월 그의 회원자격 회수를 공시하고 있다. 

 

관련 기사▶▶▶
원로 무용비평가, 성 비위로 비평가협회 ‘제명’

10월 18일 정효국악문화재단 아트센터 음악당에서는 한국전통예술협회 주최로 ‘2020 전통예술 복원 및 재현사업 - 장홍심류 바라승무’라는 포럼이 진행되었는데, A교수는 이 포럼에도 참여해 ‘장홍심의 생애사 고찰’을 주제로 발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A교수는 지난 6월 19일 전라북도립국악원 주최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린 학술세미나 ‘전라도와 경상도 춤문화권 연구’에도 좌장으로 참여해 ‘영남춤과 호남춤의 생태문화적 비교’를 주제로 기초발제를 하고 세미나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세미나에서 A교수 외에도 제1주제인 ‘영호남 춤의 전승 현황 조사 - 문화재 중심으로’의 발제자로 전북대 무용과 B교수를 초청한 것은 무용계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B교수는 2015년 학생에 대한 학습권 침해와 언어폭력, 무용단 입단을 위한 금품 수수, 콩쿠르 심사위원에 대한 뇌물 상납 강요 등으로 학교 측 감사와 사법기관의 수사를 거쳐 해임되었지만 이듬해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학교로 복귀했다. 2019년에도 학생들의 장학금 편취,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무용단의 단원 의무 가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2015년에는 1985년에 쓴 석사학위 논문과 90년대 대한무용학회와 한국무용협회에 기고한 학술논문 3편에 대해 논문표절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학생들에 대한 언어폭력과 갑질이 논란이 되며 표절 건은 유야무야되었다.

 

관련 기사▶▶▶
전북대 ‘갑질 논란’ 무용과 교수 ‘중징계’ 의견 
‘말 안들으면 0점’ 갑질 전북대 무용학과 교수 기소
전북대 무용과 교수 논문표절 의혹

 

B교수의 갑질 사건에 대해서는 본지 2020년 10월호 블랙페이지에서도 다음과 같이 다룬 바 있다. 

 

관련 기사▶▶▶
예술 현장과 학교 두 세계를 장악하는 교수 권력

 

어떤 무대는 가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모든 프로그램을 현장의 대면 공연이 아닌 온라인 중계로 전환한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는 자체 기획공연인 <무연>을 11월 8일부터 9일까지, 한국문화재재단과는 공동기획으로 <소리가 춤을 부른다>를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네이버TV와 유튜브를 통해 송출한 바 있다.
 

<무연>의 출연진 가운데 전 한국체대 무용과 C교수는 박철언·현경자 전 국회의원 부부가 조세범 처벌법 위반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2015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한 사건에서 2008년 박 전 의원 부부의 비자금 중 178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은 인물이다. 
 

관련 기사▶▶▶
[단독] 검찰, 박철언·현경자 부부 800억대 비자금 내사  

또한 <소리가 춤을 부른다>에 출연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과 D교수는 2019년 제자를 위력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고발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E강사의 부인으로, ‘반수’ 준비를 하고 있던 피해자를 남편인 E강사에게 소개시켜준 인물이다. 피해자가 성추행 사실을 호소하자 D교수는 “니가 착각하는 게 아니냐”, “지난 일이니 다 잊으라”며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하고 피해사실을 축소·부정하며 E강사 편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자행했다.
 

관련 기사▶▶▶
유명 무용수, 26살 어린 제자 성추행해 재판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orea Theatre Standards)’을 만든 KTS워킹그룹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가족, 친구, 동료, 언론, 의료기관, 사건을 담당했던 사법기관 등의 부정적인 반응과 악의적인 언행으로 인해 문제 관련 당사자들이 겪는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을 ‘2차 괴롭힘’이라는 용어로 정의 내리고 있다. 

 

‘2차 괴롭힘’에 해당하는 말이나 행위들은 매우 다양한데,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홈페이지에는 이에 해당하는 매우 구체적인 예시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설마’라며 있는 사실에 대해 부인하는 것, ‘네가 참아’라며 피해를 감수하고 침묵하게 하는 것,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으로 피해자를 판단·평가하는 것, 문제 상황과 관련이 없음에도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사적인 부분을 공격하는 것,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실질적 가해가 판명 났음에도 그 사람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 등은 모두 E강사의 성추행 국면에서 실제로 일어난 2차 괴롭힘들이다.

 

 

E강사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본지 2020년 1월호와 7월호 블랙페이지에서도 다음과 같이 다룬 바 있다.

 

피해자는 떠나지만 가해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이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가해자는 굳이 돌아올 필요가 없다. 애초에 원래의 세계를 떠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무대는 가해다. 무용계가 가해자를 위한 강단과 무대를 제공하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이 세계를 떠나라는 메시지로 수신된다. 가해자에게 무대가 계속 주어지는 한 피해자는 돌아올 수 없다. 그러니 이 지독한 가해자중심주의의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세계가 응답할 때까지.

 

글_ 블랙페이지 취재팀(대표 에디터 윤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