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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K-댄스씬 읽기

오리지널 제너레이션의 위엄과 역사쓰기의 스릴: 알파킥의 창시자 A.O.A.의 워크숍과 강연 현장에서

땀 냄새가 난다. 평소와 달리 혹사당한 몸뚱이가 다급히 산소를 공급하느라 옆구리가 결린다. 머리를 흔들고, 음악을 느껴본다. 박수를 치다가 멍이 든 손바닥이 욱신거린다. 앞에 불려 나가서 멋지게 춤추는 전문 댄서들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다독여 본다. Alpha Workshop 중 파티댄스(Party Dance) 워크숍에서 나는 춤 배우기와 즐기기 사이 그 어딘가를 헤매었다.



2월 15일에서 19일까지 개최된 Alpha Workshop과 Into the Deep 2023: Locking은 이번으로 네 번째 내한한 알파 오메가 앤더슨(Alpha Omega Anderson)이라는 댄서가 댄스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확인하는 행사였다. 알파 오메가 앤더슨은 누구인가? 미국의 TV 프로그램 <소울트레인>의 출연자이자 알파킥의 창시자인 오리지널 제너레이션(Original Generation, 줄여서 OG) 락킹 댄서이다. 올해 그의 내한과 관련 행사(워크숍, 강연-토크, 배틀)들은 영그린(Young Green, 본명 송유리)이라는 락킹 댄서가 주최하여 이루어졌는데, 그 행사들의 다양한 포맷과 함께 락킹이라는 장르 집중성이 눈에 띈다. 이러한 특징은 작금의 한국 댄스씬의 경향을 압축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트릿 댄스가 배틀 행사 속에서만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기원에 대한 탐색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믹한 관심사가 부상하고 있으며, 동시에 세부 장르의 전문성이 증가하면서 구분되는 경계선이 뚜렷해지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나는 18일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에서 열린 Alpha Workshop 중 파티댄스 워크숍과 보이스 오브 스트릿 댄스(Voice of Street Dance)에 참가하였다. 처음 파티댄스 워크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파티댄스는 비전공자 일반인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보았다. 이 수업에서 다루어진 춤들은 트위스트, 멍키, 펑키치킨, 절크, 매쉬포테이토, 포니, 브레이크다운 등의 동작 위주였는데, 테크닉적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어서 그야말로 파티에서 즐기면서 출 수 있을 만한 춤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질문이 생겼다. 이 수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프로 댄서들이 춤 실력을 갈고 닦기에는 다소 허술하고, 일반인이 아무 생각 없이 여흥으로 즐기기에는 다소 지식을 요구하는 이 워크숍은 참가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이날 전에 열렸던 락킹 워크숍은 락킹 전문 댄서들이 <더락커스>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 댄서로부터 직접 보고 배운다는 점에서 전공 관련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파티댄스는?

 

 ⓒSoul K

 

주최자인 영그린과의 면담에서 그녀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스트릿 댄스를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춤을 소울댄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렇지만 일본 유래 소울댄스는 춤 움직임을 더 분해해서 분석적으로 카운트와 신체 부위별 움직임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이런 세세한 방식이 더 ‘상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직접 체험해본 나의 관점에서 알파 앤더슨의 파티댄스 워크숍은 당시 이 동작들이 나올 수 있었던 특정 음악과 노래를 계속 강조하였고, 그 음악이 나올 때 이렇게도 추고 저렇게도 추고 이런 가사에 이런 제스처를 하고 이렇게 변형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범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동작을 ‘정확하게’ 혹은 ‘올바르게’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수잔 리 포스터(Susan Leigh Foster)가 세계무용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학습하게 하는 실행관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적했던 대목을 떠올렸다. 미국의 대학 무용과에서 발레와 현대무용 등 예술춤이 아닌 ‘월드댄스’를 수업에 포함시킬 때, 마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들을 서양적 스튜디오 수업 포맷에 맞게 규격화시켜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큰 단점은 춤을 본래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거울에 보이는 동작만으로 축소시킨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춤이 음악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법, 변형·각색·창작하는 방법 등이 삭제되어 마치 과거 속에 박제된 표본처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알파 앤더슨의 워크숍은 동작을 알려주지만, 그게 최종 도달점이 아니라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더해 애드리브(ad lib)를 하라고 강조하였다. 알파 앤더슨은 반복적으로 “Be you”나 “Do you”라고 말하며 나 자신의 것을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워크숍이 종료된 후 보여준 자료 영상은 1960, 70년대 노래와 춤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러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그날 배운 동작을 박제처럼 인식하지 않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시범을 보인 움직임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곁들인 특유의 흥과 그루브를 가지고 있어서 댄스를 테크닉이 아닌 실천(practice)으로 이해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티댄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어진 강연-토크 행사인 보이스 오브 스트릿댄스에서 알파 앤더슨은 파티댄스를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파티댄스’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파티에 갔을 때 췄던 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파 앤더슨이 얘기한 것처럼 결혼식이나 생일파티에 가서 추었던 춤을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다. 나처럼 파티댄스를 수업으로 배운 사람들에게 파티댄스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기에서 이번 행사가 내포하는 역사쓰기의 아슬아슬함이 포착된다.

 

ⓒSoul K

 

보이스 오브 스트릿댄스는 3시간에 걸쳐 알파 앤더슨이 자신의 춤 역사와 댄스 커리어를 이야기하고, 특히 <소울트레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자신이 만난 중요한 인물들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소울트레인>이 뭔지도 몰랐을 시절에 우연히 클럽에서 만난 여성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소울트레인>에 출연해 본 후에, 나중에는 몰래 월담을 해서 캐스팅 담당이자 댄스 코디네이터인 펨 브라운의 눈에 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한동안 춤을 추지 않다가 201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힙합인터내셔널 대회에서 한국 락킹팀의 공연을 보고 영그린과 인연을 맺기까지 알파 앤더슨의 이야기는 줄곧 그가 직접 만나고 경험한 인물과 사건들을 주제로 하였다. 그 이야기 속에서 춤은 그의 인생이 거쳐 온 흑인들의 삶과 문화, 매스미디어 콘텐츠, 그리고 국제적 이동 속에 존재했다. 70세 생일을 며칠 앞둔 알파 앤더슨의 인생 이야기는 댄스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귀중한 자료가 될 만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내용이 전달되고 수용되는 방식이었다. 스트릿 댄스가 전 세계적으로 번성하면서 OG댄서는 국제적으로 권위를 가진 역사적 인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과 원조를 찾으려는 탐구심은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전해주는 정보를 열심히 받아 적게 한다. 이 강연-토크는 사람 이름의 스펠링이나 특정 년도의 정확함을 체크하느라 종종 멈추었다. 알파 앤더슨도 인물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영그린은 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정답을 요하는 걸 알고 길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용어 하나, 단어 하나가 달라져도 어떤 게 맞고 틀리는지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앤더슨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식적인 역사쓰기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암시한다. 알파 앤더슨은 반복적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임을 언급하였고, 널리 통용되는 것과는 다른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OG댄서라는 타이틀은 그의 이야기에 권위를 부여한다. 


보이스 오브 스트릿댄스에서 역사쓰기가 벌어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체험하며, 나는 다이애나 테일러(Diana Taylor)의 ‘레퍼토리 vs. 아카이브’ 개념을 떠올렸다. 테일러는 유형의 사료를 수집하는 아카이브와 문화 레퍼토리를 구분하며, 후자가 살아있는, 체현된, 무형의 실천과 수행을 통해 문화를 전수한다고 했다. 정확한 정보와 숫자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닌 살아있는 생성적인 역사쓰기는 역사서술자의 미묘하고 섬세한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아슬아슬하고 스릴 넘치는 역사쓰기의 현장이었다.

 

ⓒSoul K

 

글_ 김수인(무용이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