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젠더와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댄스씬의 여러 다양한 장면을 경험하면서 여성의 입장과 위치, 의미 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또한 재작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보여준 여성 댄서들의 움직임과 활동이 오늘날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발생시켰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Female Star는 나에게 뭔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흥미로운 행사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답을 얻은 것만큼이나 질문도 많이 얻은 시간이었다.
2023년 3월 12일 부천복사골아트센터에서 개최된 Female Star vol.4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이번으로 4회째 개최되는 행사이다. 그동안 익숙해졌던 배틀 행사와 달리 팀 퍼포먼스 경연이었다는 점도 신선했다. 총 39팀이 참가한 퍼포먼스 경연의 심사는 리아 킴(Lia Kim), 베이비 슬릭(Baby Sleek), 펑키 Y(Funky Y), 러브 란(Love Ran), 왁시(Waackxxy)가 맡았고, 스페셜 이벤트로 열린 일대일 오픈스타일 배틀은 윤지(Yoonji), 리세(Leese)가 심사를 맡았다. 심사위원들의 명성만 봐도 이번 행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에 충분했다. 수준 높은 프리스타일과 퍼포먼스를 보여준 저지(judge) 쇼케이스를 보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지만, 뒤이은 팀 퍼포먼스들은 한껏 고양된 나의 기대에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이번 행사는 여성 댄서들로 무대를 채웠다는 것에서 우선적으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마니 카이 존슨(Imani Kai Johson)이나 샤나 칼리스테(Shana Calixte)는 힙합문화와 댄스씬이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요소들을 가진 초기 역사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댄스 행사들에서 여성은 빈번하게 상대적 소수자가 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댄스 행사를 지켜본 나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에 의하면 여학생이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트레이닝 단계와 프로페셔널 단계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댄스씬의 변화하고 있는 지형을 지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권력구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는 좀 더 탐구가 필요한 문제이다. 어쨌든 여성을 유일한 주인공으로 하는 이번 행사는 여성 댄서들 및 지망생들에게 성공과 승리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의 다양한 몸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대중적 관점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몸부터 고도비만의 범위에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과체중의 몸, 깡마르고 왜소한 몸부터 건장하고 각진 몸, 전신의 사용해서 전력으로 힘을 뿜어내는 몸부터 제한된 신체적 힘만을 보여주는 몸까지 각양각색의 여성 신체가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나 거리낌 없이 움직임을 펼쳐 보인다. 어떤 몸을 가졌든지 이번 행사에서 본 여성 댄서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해보였다. 이러한 다양한 몸의 향연은 배틀 행사에서도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것이지만 퍼포먼스에서는 좀 다른 종류의 의미를 구성했다고 보여진다. 팀으로 작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특이성을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대일 배틀에서는 다양한 몸 자체가 창의성, 예술성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고 한다면, 팀 퍼포먼스에서는 개별 작품에 따라 몸의 다양성이 플러스가 되기도 하고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얼굴평가, 몸매평가 없이 여성의 춤추는 몸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었다.
한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관점, 그러니까 춤추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관능적이라고 해석되는 움직임을 ‘여성적(혹은 소녀(girl))’이라고 지칭하는 관점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는 이번 행사를 관람하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여성이 성을 터부시하고 꽁꽁 싸매지 않으면 문란하다고 낙인찍는 사회는 공공연하게 억압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섹시하다고 여겨지는 몸통/가슴/허리/골반의 웨이브나 유연성을 보여주는 움직임을 “여성적”이라고 라벨링하는 사회가 성차별적이라는 인식은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 소위 ‘섹시’하다고 여겨지는 이런 움직임들은 시스(cis) 여성이나 트랜스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그래서 시스 남성의 섹시댄스 영상은 일탈적 행위나 유머의 영역으로 취급되어 “킹받는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점에 있어서 Female Star에서 보여준 여성 댄스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젠더중립적인 움직임과 하이퍼섹슈얼한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댄스씬의 흑인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영미권의 무용학 연구를 보면, 이러한 하이퍼섹슈얼한 춤동작을 가지고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과잉 성욕, 문란함)을 상품화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흑인 소녀들에게 이런 동작이 주었던 문화적 의미가 삭제된 채, 동작만 가져다가 흑인 커뮤니티와 전혀 관계없는 맥락에서 선정성을 전시하거나 스펙터클한 무대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현재 한국의 관객과 공연자들에게 흑인문화에서 기원한 하이퍼섹슈얼한 동작을 공연하는 것은 신중하고 성찰적인 접근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에서 섹시한 댄스가 성 상품화로 읽히지 않는 것은 그날 행사의 참여자들과 관객의 구성이 남성적 시선(male gaze)의 작동을 어렵게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검열 없는 다양한 몸 또한 성적 대상으로써의 여성의 몸이라는 특정한 관념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동일한 춤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했을 때 똑같이 읽힐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이런 조심스런 경계를 해보는 것은 몇몇 팀 퍼포먼스에서 흑인문화의 비주얼적 요소들(의상,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을 전유(appropriation)했는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차별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젠더에 관련된 이슈 외에, 팀 퍼포먼스 경연으로서 이번 행사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드러내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빌려보자면 “다양한” 춤들이 펼쳐졌다. 나의 관점에서 이 다양함은 댄스씬 내부의 여러 세부 장르만이 아니라 순수무용, 특히 현대무용 작품에서 볼 법한 구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양함도 좋지만 본인이 공부하는 춤을 더 깊이 있게 배워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러브 란의 심사평은 다양한 장르의 융합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무대도 있었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또한 퍼포먼스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는 베이비 슬릭의 지적은 이번 행사에서 모든 무대가 팀 이름으로 호명될 뿐 작품 제목이 없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나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었다. 참가팀들 중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려는 팀들도 있고, 팀의 춤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팀도 있었는데 작품 제목이 있었으면 그러한 의도가 더 잘 전달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론 팀명 속에 작품 제목을 포섭하는 방식이 댄스씬 고유의 존재방식인 것인가라는 의문도 가지게 되었다. 여러 답과 질문을 동시에 내어준 Female Star는 비판적 성찰의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글_ 김수인(무용이론가)
사진제공_ Dancers Night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