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K-댄스씬 읽기

컨퍼런스 홀을 꽉 채운 스트릿댄서들: 〈스트릿비트〉 컨퍼런스


Street Dancers Fill a Conference Hall: 〈Street Beat〉 Conference


나는 얼른 내 손목 밴드를 살펴본다. 거기에 적힌 번호에 따라 컨퍼런스 장소로 입장하는 줄을 서야 한다고 안내하는 스태프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컨퍼런스가 시작할 때까지 약 20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학술 컨퍼런스들을 다녀봤어도,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되어 차차 사람들이 객석을 채웠는데, 자리가 모자라서 복도에 앉거나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어서 장내를 정리하기 위해 빈 좌석 없이 다 채워 앉아달라는 안내 멘트가 있었다. 이런 뜨거운 관심은 무슨 의미일까?

I quickly checked my wristband. I was listening to the staff who told me to line up to enter the conference venue according to the number on it. It seemed like there were about 20 minutes left until the conference started, but there were already many people waiting in line outside. I had been to academic conferences for nearly 20 years, but I had never waited in line like this before, so I was a bit confused by this situation. As time passed, people gradually filled the auditorium, but some people had to sit in the hallway or stand because there were not enough seats.  What did this intense interest mean?


10월 11-13일에 시립마포청소년센터에서 열린 〈스트릿비트〉는 토니 베이즐(Toni Basil)이라는 댄서이자 방송 셀레브리티를 초청하여 댄스배틀행사, 워크샵, 그리고 컨퍼런스를 개최한 행사였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1981년에 나온 〈미키(Mickey)〉라는 노래를 기억할 만하다. 치어리더 이미지로 잘 알려진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토니 베이즐이다. 요즘 핫한 반응을 얻고 있는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인터폴레이션한 노래로도 다시 알려지고 있다. 

〈Street Beat〉, held at the Mapo Youth Center from October 11th to 13th, was an event that invited a dancer and celebrity Toni Basil and held dance battle events, workshops, and conferences. Some may remember the song 〈Mickey〉 that came out in 1981. The singer who sang this song, who is well known for her cheerleader image, is Toni Basil. It is also known again as a song that interpolates 〈APT〉 by Rosé and Bruno Mars, which is currently receiving a hot response.



하지만 이날 컨퍼런스 장소를 꽉 채운 사람들은 미국 팝송이나 케이팝 때문이 아니라, 락킹 혹은 왁킹이라는 전문적 댄스 장르의 역사적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토니 베이즐은 락킹의 시초로 알려진 돈 캠벨이 만든 더락커스라는 그룹의 원년 멤버이면서 이 그룹의 형성과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초창기 왁킹 댄서들을 만나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어서 스트릿댄스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까마득히 높은 연배의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날 컨퍼런스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춤 실기가 중심이 되는 워크숍과 배틀 외에 왜 컨퍼런스라는 것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을까? 한국의 스트릿댄스는 어떤 방식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는가? 나는 〈스트릿비트〉의 컨퍼런스가 한국 스트릿댄스 씬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However, the people who filled the conference hall that day were not there because of American pop songs or K-pop, but to hear the historical story of the professional dance genre called locking or waacking. Tony Basil was an original member of the group called The Lockers, which was formed by Don Campbell, known as the originator of locking,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the group. She also met and worked with the early waacking dancers. What did meeting her and hearing her story mean to the people gathered at the conference that day? Why was a conference necessary and received such enthusiastic support? In what ways does Korean street dance strengthen its professionalism? I thought that the conference was a mosaic piece that could help us understand the Korean street dance scene.

 

토니 베이즐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스트릿과 코레오로 양분된 현재 댄스씬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토니가 돈 캠벨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그녀가 칸느 영화제에 다녀와서 엘에이의 댄스 경향이 바뀐 것을 인식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미 TV쇼와 영화를 통해 댄서와 안무가로 경력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실제 토니 베이즐의 공식 사이트(http://www.tonibasil.net/bio.html)는 첫머리에 에미상, 그래미상, 비디오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하고 후보에 올랐다고 소개한다. 토니의 쇼비니지스 경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의 인맥과 전문 지식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그래서 당시 댄서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날리고 있던 돈 캠벨을 찾기 위해 여러 클럽을 전전하던 토니가 더락커스의 멤버가 되는 과정에는 오로지 댄서들만의 의지가 아닌, 어떤 프로듀서가 비슷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모아서 쇼를 하자고 제안하는 사건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또한 그 그룹 이름이 더락커스가 되는 과정에도 초창기의 이름 캠벨락 댄서스가 프로듀서에 의해 카피라이트가 되었기 때문에, 고소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더락커스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이렇듯 토니의 이야기에는 댄서들의 활동이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할리우드 산업 및 브로드웨이 무대와 뒤얽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Toni’s story made me reexamine my understanding of the current dance scene, which is divided into street and choreo. The story of Toni meeting Don Campbell begins with her visit to the Cannes Film Festival and her recognition of the change in LA’s dance trends. In other words, she had already built her career as a dancer and choreographer through TV shows and movies. In fact, Toni’s official website (http://www.tonibasil.net/bio.html) introduces her as having won and been nominated for several Emmy Awards, Grammy Awards, and Video Awards. Toni’s showbiz career includes connections and expertise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So, in the process of Toni becoming a member of The Lockers while going to various clubs to find Don Campbell, who was gradually gaining a name among the dancers at the time, it is not only the will of the dancers, but also an important incident where a producer suggests that they gather similar dancers and put them on a show. Also, the reason the group name became The Lockers is because the original name, Campbell Lock Dancers, was copyrighted by a producer, so they changed the name to The Lockers to avoid being sued. In this way, Toni's story depicts the dancers' activities as intertwined with underground clubs, Hollywood industry, and Broadway stages.

 


 

왁킹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클럽씬과 할리우드를 넘나든다. 1975년 토니가 더락커스 멤버로 레이크 타호의 클럽에서 공연했을 때, 프레드 베리라는 사람이 파라다이스 클럽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줬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그곳에서 파파워즈롤링스톤 음악에 벽에 기대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나와서 춤추고 들어가다가 다같이 춤추는 모습을 목격했다. 토니는 그것이 그냥 새로운 춤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새로운 충격을 받은 토니는 1976년도에 할리우드 클럽에서 그들을 자신의 쇼에 부른다. 왁킹의 초기 자료로 많이 볼 수 있는 다이애나 로스의 무대에 등장하는 왁커스는 1980년대 영상이지만, 이날 토니가 보여준 영상(footage)는 토니의 록시 쇼(Roxy show, 1976) 무대 뒤에서 촬영한 사적인 것으로 앤드류 프랭크(Andrue Freank), 빌리 스타(Billy Star), 아서 거프(Arthur Guff), 리틀조(Joe)가 왁킹 초창기 댄서들로 등장한다. (토니 베이즐의 공식 웹사이트에 이들의 사진과 토니의 설명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토니의 춤에는 온갖 장르가 다 영향을 미친다. 1983년 발매된 뮤직비디오 〈Over My Head〉를 보면 왁킹에서 영향받은 동작과 발레 동작이 병렬 배치된다.

The story of waacking also crosses the club scene and Hollywood. In 1975, when Toni was performing at a club in Lake Tahoe as a member of The Lockers, a man named Fred Berry told her that something new was happening at the Paradise Club. So she went to there and saw people leaning against the wall, dancing one by one to the sound of the Papa Was A Rollin’ Stone, and then dancing together. Toni said that she felt that it was not just a new dance style, but a new lifestyle. Toni invited them to her show at the Hollywood Club in 1976. The Waackers on Diana Ross's stage, which can be seen as an early source of waacking, is from the 1980s, but the footage Toni showed that day was personal footage taken backstage at Toni's Roxy show (1976), and featured Andrew Freank, Billy Starr, Arthur Guff, and Little Joe as early waacking dancers. (There are photos of them and Toni's explanation video on Toni Basil's official website.) Working with them, Toni's dancing was influenced by all kinds of genres. The 1983 music video for "Over My Head" juxtaposes movements influenced by waacking with ballet movements.


스트릿과 코레오가 교차하는 토니의 이야기는 실제 춤의 현장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역사책에 기록되는 깔끔한 설명과는 달리 서로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오는지를 증언한다. 특히 당시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던 상황에서 클럽에 가지 않으면 댄서를 만나거나 춤을 볼 수 없었고, 사람마다 다른 경험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걸 토니는 강조한다. 그날 컨퍼런스에서 왁킹의 명칭에 대해 질문을 한 사람에 대해 토니는 “모든 게 구전되던 시절”이었다는 것과 “같이 있었어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억”할 수 있고 “특히 초기에는 누가 백 프로 옳다고 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왁킹의 초기에 관한 토니 이야기에는 펑킹, 포징(posing), 범프 같은 명칭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에 대해 개념 정의보다는 자신이 만나 함께 활동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섞여있다. 예를 들어, 빅터 마노엘이이라는 사람은 산타모니카 블루버드의 피너스라는 클럽에서 춤을 췄는데, 자신의 춤을 펑킹이라 불렀고 헤비메탈과 하드코어 록앤롤 음악에 춤을 췄다고 한다. 또 어떤 날에는 토슈즈를 신고 왁킹을 시도하는 등 누군가를 흉내 내려고 멈춰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춤이나 장르의 명칭이나 경계는 후대의 우리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정해져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Toni’s story of street and choreo intersection testifies to how dynamic the actual dance scene was and how different voices emerged, unlike the neat descriptions recorded in history books. In particular, Toni emphasizes that at a time when there were no cell phones or the internet, you couldn’t meet dancers or see dances unless you went to a club, and each person had different experiences and stories. When asked about the name of waacking at the conference that day, Toni answered that “everything was handed down orally” and that “even if you were together, you could remember it differently depending on your perspective” and “especially in the early days, it was hard to say who was 100% right.” In Toni’s story about the early days of waacking, names like punking, posing, and bump appear, but they are mixed in with the stories of people he met and worked with rather than defining the concepts. For example, a man named Victor Manoel danced at a club on Santa Monica Boulevard, called his dancing punking, and danced to heavy metal and hardcore rock and roll music. So, we can see that the names and boundaries of dances or genres were not clearly defined and formed as we later perceive them.



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돌아보는 현재의 자세는 다분히 역사적 관점이라는 것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의 확실한 사실”로 역사를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토니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모든 것이 증명가능한(verifiable)한 정통(authentic)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과거를 아카이빙하려는 토니의 접근법은 락킹 의상을 죄다 모아놓은 자신의 옷장을 보여주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날 현장에 들고 온 피자햇이라고 부르는 모자는 과거의 영상 속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면서 “확실한 증거”가 된다. 왁킹 컨퍼런스에서는 이례적으로 영상 촬영이 금지되었고 카메라를 들지 말라고 엄중히 요청하였는데, 이는 저작권이 걸린 영상들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역사는 이용 가능하고 소유가능한 재산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초창기 왁커로 소개된 앤드류가 뉴욕에 가서 활동했다는 진술을 듣고 왁킹과 보깅이 관련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어쩌면 토니의 이야기를 그녀의 사견이 아니라 역사의 증거로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역동적 춤을 역사로 포착하는 일은 항상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포함하며 나의 의도와 생각을 돌아보는 엄격함을 요구한다.

But at the same time, I couldn’t help but recognize that the current attitude of looking back on the past is largely a historical perspective. In other words, many are trying to write history with “certain facts of the past.” Toni emphasized that her website contains all verifiable and authentic materials. Toni’s approach to archiving the past was also revealed in her closet where she had collected all her locking outfits. The hat she brought to the scene that day, called a pizza hat, appeared again in the past video and became “certain evidence.” At the Waacking conference, filming was unusually prohibited and strict requests were made not to bring cameras because copyrighted videos had been released. Here, history can also be a usable and possessable property. As an audience member, I asked Toni if she thought waacking and voguing were related after hearing her story about Andrew, who was introduced as an early waacker, going to New York. Perhaps I unconsciously intended to take Toni’s story as evidence of history rather than as her personal opinion. Capturing dynamic dance as history always involves precarious moments and requires a rigorous reflection on my intentions and thoughts.



글_ 김수인(무용이론가)

사진_ 스트릿비트 제공

Written by Sue In Kim (dance researcher)

Photo by Street B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