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댄스씬 읽기
Vol.129-1 (2026.5.5.) 발행
글·사진_ 김수인(무용이론가)
나는 팝콘과 굿즈가 든 박스를 들고 IMAX 영화관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N열이라니, 거의 천국과 가까운 높이까지 올라간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박스를 열어보니 응원봉이 들어있다.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 동봉된 건전지를 끼우고 스위치를 켜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흔들어보니 아이돌 콘서트에 온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4월 28일 CGV 용산 IMAX 영화관에서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의 전기적 영화인 <마이클>의 시사회를 보았다. 안톤 푸쿠아(Antoine Fuqua) 감독의 연출로 이번에 공개된 영화는 마이클 잭슨 생애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1980년대 잭슨스 투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마지막에 그의 첫 번째 솔로 콘서트 투어(Bad tour) 장면을 보여주며 끝난다. 전 세계 팝의 황제로 알려진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영화는 마이클의 조카 자파 잭슨(Jaafar Jackson) 캐스팅하여 마이클의 몸과 춤과 삶을 근접하게 구현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나의 관심은 영화의 만듦새라기 보다는 문화 산업 안과 밖에서 움직이고 춤추는 몸에 집중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몸은 끝없이 규율되고, 소비되며, 조형된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 속에서만 가능한 어떤 넘침—춤—이 발생한다.
영화는 인디애나의 가난한 흑인 가정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훈련에 따라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8살의 어린 마이클은 친구들과 나가놀지도 못하고 주눅 들고 위축된 모습으로 연습에 임한다. 아버지 조셉은 가난에서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아이들을 공연 시장에서 성공하게 만들기 위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물이다. 공연자로 성공시키기 위해 그는 학교도 상관없이 힘든 일정을 밀어붙인다. 어린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허리띠로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흔들리는 밴에서 쪽잠을 자며 계속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도 노래와 춤은 마이클이 존재의 목소리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멈추라는 지시에도 따르지 않는 몸이다. 어린 마이클의 목소리를 테스트하기 위해 녹음실에 갔을 때, 마이클을 노래를 하면서 쉬지 않고 움직이자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어라,” “발을 움직이지 마”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마이클이 발을 붙이고 서서도 그의 몸은 흔들리고 리듬을 타며 결국 움직임으로 번져나간다. 그의 몸은 통제되면서도 통제되지 않는 몸으로 나타난다.
이런 역설은 영화 속에서 반복된다. 영화는 문화 산업 속 이미지 생산의 압박 속에서 구축되는 신체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카메라 앞에서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조정되는 외형, 성형된 코, 백반증 피부의 손을 감추는 장갑, 메이크업은 “자연적 몸”이라는 환상을 무너뜨린다. 영화 속에서 마이클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자기 코가 수술 되어야 하며, 그가 아는 많은 연예인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또 영화 후반부에 머리에 화상을 입고 입원하는 장면은 문화 산업에서 다치고 고통받는 몸과 그러면서도 다시 투어를 할 수 있게끔 회복되어야 하는 몸을 그린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마이클의 춤을 그의 권한이 강화되는 시공간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현실 세계의 폭력과 긴장을 신체적 리듬으로 번역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마이클이 LA 갱단 충돌과 죽음을 다룬 뉴스를 본 뒤, 그것은 메시지나 서사가 아니라 움직임과 박자로 변환된다. 〈Beat It〉은 그렇게 탄생한다. 마이클은 지역의 댄서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로부터 춤(팝핀과 C워크)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 〈Beat It〉의 안무를 구성한다. 그의 몸은 사회와 소통하며 그것을 리듬으로 재구성하는 매개가 된다.
마이클은 동시에 춤을 “보이게” 하는 감각까지 내장하고 있다. 〈Thriller〉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그는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야 댄서의 몸 전체가 전달된다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연출 아이디어가 아니다. 춤이 어떻게 인지되고 전달되는지에 대한 신체적 이해, 다시 말해 ‘보여지는 춤’에 대한 감각이다. 그는 단순한 수행자가 아니라, 움직임과 시선을 동시에 조직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렇게 〈Beat It〉과 〈Thriller〉는 마이클의 안무 구성 능력을 조명하는 반면, 〈Billy Jean〉의 모타운 25 공연과 그 이후의 무대 장면들은 마이클의 즉흥적인 춤추기를 더 많이 보여준다. 그의 춤은 더 이상 특정 곡에 종속된 안무로 머물지 않는다. 문워크와 같은 시그니처 동작은 한 곡에 묶이지 않고 여러 퍼포먼스를 가로지르며 반복된다. 그것은 노래에 맞춰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그의 몸에 각인된 운동 패턴처럼 작동한다. 마치 초반에 어린 마이클이 몸을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처럼, 마이클의 퍼포먼스는 자연스럽게 내재된 리듬과 흥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정교하게 짜여진 안무보다 체화된 리듬이 프리스타일로 공연되는 듯하다. 그의 춤은 음악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 위로 흘러넘친다. 그래서 문워크는 하나의 안무라기보다, 특정한 순간마다 되살아나는 신체의 방식이 된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마이클 잭슨의 몸은 끝없이 규율되고, 소비되며, 조형된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 속에서만 가능한 어떤 넘침—춤—이 발생한다. 그의 시그니처 동작들은 창작된 결과물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흔적이며, 그렇기에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으면서도 완전히 복제할 수는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몸을 움직이며 반응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응원봉의 불을 켜고 흔들었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다같이 서서 움직이며 노래를 즐겼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안무였다. 주최측 사회자가 그렇게 하며 즐겨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왜 이렇게 착해요”라는 사회자의 말은 관객들의 순응적 몸을 대변한다). 그래서 스크린 안의 몸뿐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들의 몸도 통제되면서 통제되지 않는 역설의 몸으로 존재하였다. 그렇게 과거의 춤추는 몸과 현재의 춤추는 몸은 다른 시간 차원에서도 공명하는 리듬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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