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루었던 주제는 ‘논문 저자 김건희'. 작년부터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논문에 대한 수많은 지적이 있어 왔고 보통의 연구자라면 가능하지 않을 얼토당토않은 의혹들이 상당 부분 있다. 논문 내용의 불성실함을 넘어 짜깁기식의 표절과 의도적 베끼기는 절도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 방송 도중에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대목이 있었다. 무용 관계자라면 대부분이 유사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김건희 씨의 디자인 관련 학술논문 하나가 무용 논문을 표절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무용 논문 역시 다른 문화산업 관련 석사논문을 표절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것이다. 김건희 씨의 표절을 밝히는 과정에서 밝혀진 무용 논문 표절이라니, 참으로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으로, 무용을 공부하는 학자들과 학생들이 표절 문제의 심각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지 의문스럽다. 무용 논문을 읽을 때면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연구자의 순수한 문장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특히 철학이나 미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무용 연구의 경우 이론적 배경을 위해 해당 철학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논문들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수준이 허다했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무엇이 원자료이며 누가 원저자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설령 여기에 각주를 붙인다. 한들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이나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널리 공유되면서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표절 예방 교육을 통해 학문 윤리를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접하는 무용 논문에서조차 표절이 발견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각주를 붙이지 않은 채로 타 분야의 논문에서 여러 문장을 그대로 옮겼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지는 포털사이트의 신뢰할 수 없는 페이지에서 복사 붙이기를 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표절은 서로 다른 저자가 동일한 주제에 대해 쓴 동일한 내용의 논문이었다. 딱 하나 한 논문이 영문이었다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같았다. 발견 당시에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매 문장을 비교해 보았는데, 번역을 했다고 생각될 만큼 똑같았다. 발간일로 보아 베낀 논문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학술지에 버젓이 게재된 상태였다. 이쯤되면 각주 달기를 게을리한 수준 정도가 아니다 무용계의 해이한 도덕률과 양심의 부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표절은 비단 연구논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창작 작업 전반에 모두 적용된다. 얼마 전 유희열의 표절 사건을 보아도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었다. 무용계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을 뿐 안무 표절 문제가 간간이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작품은 공론화되기 전에 외면되어 문제 자체가 수면 아래로 사라지거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눈을 가리고서 분별력을 없애고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는 것 같다. 마치 수많은 무용 논문들의 표절을 알면서도 용인하는 것처럼.
연구 윤리 창작, 윤리에 지나치게 관대한 무용계의 병폐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 모든 문제는 타인의 피땀 어린 창작 과정을 존중하지 않는 비도덕적 태도에 기인한다. 훌륭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연구자와 창작자가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들의 지적재산권을 제대로 지켜주는 것이 양심 있는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럴 때에야 후학들에게 떳떳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글_ 이희나(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