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계의 상황이 열악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늘 힘든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작품을, 전문매체들은 발간을 해왔기에 매년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지 못하면 그 타격은 고사(枯死)로 이어진다. 지난 2023년 12월 29일에 2024년도 문화예술진흥기금 공모사업 지원심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 결과에 무용계가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작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정병국 위원장은 취임 인터뷰에서 “예술위 설립 50주년을 맞아 K-아트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새로운 50년을 위해 예술위 위상 재정립과 지원 메커니즘 진단을 해 미래를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4년도 문화예술진흥기금제도를 ‘효율적 배분 및 활용’을 목표로 대폭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는 세심한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예술현장을 무시하고 예술 장르와 매체에 대한 몰이해로 단행한 파쇼적 결단이었다.
변화된 지원 체계에서 공연예술분야 지원은 ‘창작’으로 통합되어 창작과정, 창작산실, 창작주체라는 세 형태로 분류됐다. 그리고 기존의 공연지원과 비평지원을 통합하여, 비평과 담론을 생산하는 ‘글’ 중심 전문매체와 구상과 구현의 ‘실연’ 중심 단체를 ‘공연예술창작주체(단체 및 공간)’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고 그 둘을 구분하지 않은 채 서류와 면접 심의를 하였다(단, 공간지원은 별도 신청 및 심의대상이었다). 또한 지원 기간을 단년 지원에서 3년 지원으로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올해 지원금에서 탈락하면 그 후 2년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가 이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것도 무책임한 심의위원 구성과 무능한 심사로 인해 발생한 결과이므로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주체하기 어렵다.
물론 예술위에서도 갑자기 실행하게 된 지원체계로 고충과 혼란이 따랐을 것이다. 심의위원들도 자신들의 심사결과에 따라 예술단체의 생사여부가 결정되는 문제이기에 부담감도 크고 고심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지원심의는 실연자 중심의 심의위원들로 구성됐으며 유독 무용분야만 5인 심의위원회를 4인 체제로 조직됐을 뿐만 아니라 매체를 전문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위원이 배정되지 않은 등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매체와 단체는 분리하지 않으면서 단체와 공간은 분리한 심의로 예산분배가 기형화되었다.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심의 조건에서 강행된 결과를 우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이는 정병국 위원장이 주장했던 ‘효율적 배분 및 활용’에도 어긋난 결과이다. 그러므로 댄스포스트코리아는 예술위에게 무용분야 심사 결과를 전면 무효화시키고 재심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다. 첫째, 심사제도의 문제이다. 공연단체와 비평매체를 통합해서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공연창작은 일회성 공연으로,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공연을 하지 않으면 되지만 비평 매체는 매달 발간해야 하는 특수성을 가진다. 또한, 공연창작은 실연자들의 구상과 구현이라는 틀을 신청서에 담지만, 비평매체는 비평과 담론의 생산을 위한 글을 신청서에 제시한다. 따라서 동일선상에서 평가받기 어렵다.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09년 블로그 기반 춤누리로 시작했으며 2013년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로 개칭하고 무용계에서 처음으로 웹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한 매체이다. 근 15년간 활발히 비평활동을 해온 매체를 공연단체와 뒤섞어 심의한 후 매체 중 유일하게 탈락시킨 것은 심의위원들의 매체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
둘째, 심의위원 구성의 문제이다. 타 예술분야 심의위원수는 모두 5명이다. 무용분야만 4명의 심의위원으로 이뤄졌는데, 특히 이들 4명 중 3명은 실연자이며, 1명은 특정 장르 무용단의 홍보 전문가로 구성되었다. 글을 다루는 비평매체를 선정하는 심의에 어떻게 비평가나 이론가를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고 심의할 수 있는가? 이 역시 불합리하다. 처음부터 불가피하게 한 명의 심의위원이 심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재빠르게 심의위원 풀에서 비평가 및 이론가를 찾아 대체했어야 한다. 심의 대상 매체에 포함된 인물이라 하더라도 심의회피제를 활용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따라서 예술위의 무능으로 무용분야 심의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하게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셋째, 심의위원의 전문성 문제이다. 이들 4명의 심의위원은 전문 매체의 신청서에서 자신들의 눈에 익숙한 전통 매체의 이름, 자신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평가(발행인)의 이름만 주의하여 보았고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전문적이고 활발한 활동 상황은 인식하지도 못한 채 심의를 진행하였다. 실제 심의에 참여했던 심사위원이 이 사실에 대해 이미 실토하였다. 평가지표에는 분명히 신청단체의 예술활동 이력과 사업 수행 역량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댄스포스트코리아는 근 15년의 활동 경력을 갖추었고 6년간 지속적으로 지원금을 수혜했으며, 홈페이지, 웹메일링 뉴스레터, SNS 등을 통해 충실히 비평작업을 진행해왔기에 수행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동안 집단비평, 카드리뷰, 독자 참여 평점 등 무용계에서는 독보적으로 새로운 비평유형을 꾸준히 개발해 왔고, 리콜렉션과 K-댄스 리터러시 등 수준 높은 인문학적 콘텐츠를 제공하며 일반 독자층으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 기금의 신청서에는 시대와 호흡하는 댄스웹진이 되고자 신진비평가 양성 프로그램 운영, AI와 숏폼을 활용한 춤소식 홍보방안 등을 제시하며, 춤 잡지의 미래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서류심사에서 실연 중심의 심의위원들이 과연 신청서를 얼마나 꼼꼼하게 읽고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했을지 의문이다.
이번 심의결과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댄스포스트코리아의 탈락뿐만 아니라 무용계의 전통과 기여도를 무시한 탈락과 불합리한 선정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올해의 신작을 발표하는 37년 전통의 ‘한국 현대춤 작가 12인전’이라든지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유능한 젊은 안무가들을 발굴하여 세계무대로 진출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SCF 서울 국제안무 페스티벌’과 같은 무용계 기여도가 큰 행사는 서류심사에서부터 탈락되었고 오히려 대학생 발표회에 가까운 행사들이 선정되기도 했다. 이 결과를 초래한 데에는 무용계 현장과 흐름을 읽지 못하는 부적합한 심사위원들로 심의위원회를 꾸린 담당 직원과 무용위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여겨진다. 댄스포스트코리아는 무용계에 불신과 분열을 불러일으키고 무용계 발전을 가로막는 심의 결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정병국 위원장과 예술위가 이번 심사 결과에 대해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글_ 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