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굿스테이지〉 2024년 6월호 칼럼으로 게재되었습니다.
폐과로 이어지는 무용학과 무엇을 말하는가?
얼마전 짤막한 뉴스기사를 하나 봤다. 현재 공석중인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 한국무용 전임교수를 뽑아 달라고 학생들이 시위를 했다는 기사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는 한국무용과 뿐만 아니라 현대무용 전임교수 자리도 공석이다. 지금 발레 전임교수 한 명만 남아 있다. 이 교수도 다음 달이면 정년퇴임을 한다.
문제는 이화여대가 지금까지 6년 동안 교수를 뽑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의 얘기로는 2021년과 2023년 채용을 추진했으나 뽑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복잡 미묘한 시대 상황이 담겨져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특히 지방의 사립대학 무용과는 거의 다 폐과가 되거나 다른 유사한 과랑 통폐합이 되어 독립적인 무용과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서울에 위치한 대학만 겨우 학생모집에 숫자를 채우고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곧 줄어들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에 위치한 대학의 무용과도 언제 폐과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화여대가 더 이상 교수를 채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폐과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가질 수 있다. 학교 측은 채용을 준비 중이라고만 한다. 그러나 교수를 뽑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 이화여대 사태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은 거국적으로 보면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지방의 각 사립대학에서 무용과만 폐과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체능계열의 학과 대부분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1960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를 지나오면서 늘어난 인구에 따라 대학이 너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사립대학의 인허가를 너무 많이 내줬고 학과 설치도 무분별하게 허가를 해 준 결과이다.
사립대학은 돈이 된다 싶어서 저마다 경쟁하듯이 예능계열의 과를 만들었다. 넘쳐나는 것이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갈 줄 알았지만 겨우 30여년 만에 무너졌다.
현장중심의 무용생태계 변화
이제 대학 무용학과가 인기 좋았던 시절은 끝났다. 문제는 졸업생들이다. 어림잡아 6만 명이 넘는 무용전공 졸업생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무용단에 취직이 된 사람은 가뭄에 콩 날 정도로 극미한 숫자다.
올해 초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창작활동지원 기금신청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무용가들이 대거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급기야는 탈락한 독립 무용가들이 '독립무용생태계를 위한 액션 연대'를 결성해 서울문화재단의 편향된 심사를 성토했다. 내용인 즉은 대학의 무용과 관련 단체나 교수들로 편향된 심사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 무용과가 누리던 혜택은 알게 모르게 많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을 졸업한 무용과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여러 기관의 기금을 수혜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무용과 교수들이 예술감독이란 직함으로 졸업생들을 무용단에 입단시켜 계속 관리해 온 것이다. 대학동문 단체의 성격인 이 무용단은 월급이 없는 말 그대로 동호인 단체인 것이다. 이것이 결국 병폐가 된 것이다.
이런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무용생태계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은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시키고도 그들을 위해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학이 단지 공부시켜 졸업하게 하면 그만이라고 치자면 정부는 왜 대학에 취업률로 지원규모를 결정할까. 결국 졸업생의 취업도 대학의 몫인 것이다. 그래서 취업률이 없는 학과는 폐과를 시켜 버린 후안무치의 행위를 한 것이다. 경제논리로 치면 더 이상 수익구조가 맞지 않기 때문에 없애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사태에는 대학 교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각 대학교수들은 공공기관의 기금 심의위원으로 들어가는 1순위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대학 제자들이나 동문단체를 챙기는 것이다. 직접 챙기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에 품앗이처럼 암묵적으로 친한 타 학교 교수들의 제자들을 챙기는 것이다. 나중에 심사를 끝내면 공치사를 한다. 그러면 그 교수는 다음에 다른 기관에 심사를 가면 도움을 받은 그 학교의 그 교수 제자를 챙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제자들을 계속적으로 자신의 그늘에 붙들어 두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제자들도 딱히 갈 데가 없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소소한 지원금을 타 먹으면서 공연을 할 수 있기에 머무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교수가 독립해서 나간 제자들의 밥그릇마저 빼앗아 버린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 묻고 싶다. 물론 교수라고 공연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지원금까지 손을 대면서 공연을 하면 안 된다고 본다. 대학교수는 학교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또 공연에 출연 시킬 학생들이 있다. 그것도 거의 무보수로 말이다. 심지어 의상비까지 걷는 경우도 있다. 또 티켓도 강매한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혜택을 보는 교수의 행태가 결국 오늘날의 이 사태를 만든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번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금 신청에서 정년퇴임한 교수가 전체 지원자들 중 가장 많은 액수의 지원금을 받았다. 어떤 분은 다년간 지원도 됐다. 심사위원들과의 석연찮은 관계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판단이다. 과연 꼭 이렇게 했었어야 하는가.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많은 지원금을 받아 왔고 수많은 상을 받아 명실공히 무용계에서 인정받은 무용가로 자리매김했다. 또 교수로 있으면서도 많은 혜택을 누렸다. 그런 그가 정년퇴임을 한 마당에 제자들의 지원금까지 자기가 챙겨가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물론 정당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과연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위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받은 지원금은 그 제자들 여러 명이 충분히 혜택을 볼 수 있는 금액이다. 한마디로 노욕이다. 꼭 공연을 하고 싶으면 자기 돈으로 하던지 아님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헌정 공연을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갈 데가 없는 제자들은 고군분투하며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그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공공기관의 지원금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지원금마저 날름 가로챈다면 그 제자들은 얼마나 허탈할까. 내가 이러려고 무용을 배웠나 싶을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지원금은 제자들에게 양보해야
이제 더 이상 대학교수들의 공연을 위한 지원금 신청은 없어야 한다. 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지원하는 모든 항목에 대학교수들은 지원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도 이렇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수들의 심의위원 위촉도 배제해야 한다. 아무리 공정성을 내세워도 무용계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연결된 구조이다 보니 품앗이 개념의 심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동문단체의 지원도 배제해야 한다. 그 동문단체의 맨 위에는 그 대학교수가 예술감독이란 명칭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 명칭으로 그 교수는 학교 연구실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학교수가 혜택을 보는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의 무용과도 다 없어진다. 줄어드는 아이들 숫자도 숫자지만 자업자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자신의 아이를 대학에 보내겠나? 결국 무용계를 이끌어 갈 세대들은 그전에 대학에서 배출해 놓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무용가들이다. 이 독립무용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원을 따로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무용가 중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고졸이거나 심지어 중졸도 있다. 유명한 무용수가 되려면 꼭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론적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한다면 몰라도 실기위주의 대학 무용과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실기를 위한 무용공부는 현장에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찬욱 영화감독이 있다. 그가 만든 영화 〈헤어질 결심〉을 개봉하기 앞서 영화 OST의 〈안개〉 뮤직비디오를 먼저 유튜브에 올렸다. 오픈되자마자 대중들의 입소문을 타고 지금까지 55만 명의 조회수를 올리며 단숨에 영화보다 더 유명해졌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독특한 몽환적인 느낌의 춤을 추는 사람은 누굴까. 직접 출연하면서 안무까지 한 사람이 바로 '모니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무용전공이 아니다. 패션디자인 전공이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춤이 좋았고 춤을 추고 싶어서 현장에서 춤을 배운 사람이다. 이런 그가 박찬욱 감독의 뮤직비디오 안무와 출연을 하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춤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모니카는 스타이다.
현장에는 수많은 젊은 무용가들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춤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다. 그것이 순수예술이냐 대중예술이냐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춤을 추고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힐링을 한다. 그러기에 이들이 건강하게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글_ 송인호 〈굿스테이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