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고려대학교에 붙었던 대자보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의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 “안녕들 하십니까”는 우리 시대를 아우르는 신조어이며 구호가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취업 문제로 아파하고 스펙 쌓기로 바쁜 청춘으로만 여겼는데, 갖은 부정선거 의혹과 철도 노조 파업 등 후진적으로 흐르는 정치 세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고 무관심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안녕들 하십니까”의 본질은 자신이 속한 곳,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에 있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인식하고 변화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는 물음인 것입니다. “지금, 여기”와 “질문하는 것”은 컨템포러리 댄스의 전매특허가 아닌가요? 그런데 소위 컨템포러리 댄스를 주도한다는 우리 안무가들의 공연에서는 왜 이런 사회적 인식, 변화에 대한 의지, 세상에 대한 질문이 읽히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벨기에, 프랑스, 영국 등 유럽무대에서 직구한 컨템포러리 댄스의 “최신, 첨단”의 외양만 본뜨고 “정신”을 빠뜨린 모양입니다. “안녕들” 못해 고민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우리 시대를 “힐링”하겠다고 나선 커뮤니티댄스 지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그래서 저는 무용계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 글에 대해 “또” 오해들 하실까봐 제 정체성에 대해 고백할까 합니다. 저는 어느 곳에서든 공정하지 못한 상황과 절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발언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누구에게든 질문을 하며, 불합리한 공격이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방어합니다. 그러다보니 “성질머리 드세고” “뒤통수 치는” “운동권 출신”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습니다. (장점으로 여긴다는 의미에서)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저는 “숨쉬기 운동”이나 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며, 대의를 위해 억울해도 물러나기를 밥 먹듯 하는 일개 연구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 결로 행동하는 지성”을 따르고 존경하는 외눈박이 학자이며, 하는 일 없이 무용계의 생태계나 염려하는 어리석은 지식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안녕하지 못합니다.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