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의 원본은 〈국민일보〉 2025.3.17. 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글_ 장지영(국민일보 선임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국립예술단체 이전 계획이 시작부터 일방 추진으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 6일 향후 10년의 문화정책 중장기 비전을 담은 ‘문화한국 2035’에서 핵심과제로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을 꼽으며 그 실천방법 중 하나로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을 꼽았다. 이에 대해 예술계는 탄핵 정국에 굳이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는 정치적 의도는 차치하고 현장의 의견 수렴과 타당성 검토 없는 졸속 추진을 따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 서울과 지역의 공공극장 및 국공립 예술단체 관계자, 민간 기획자, 평론가, 예술정책 연구자 등을 두루 인터뷰한 결과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은 국립예술단체 이전이 아니라 지역 도·시립 예술단체와 거점 제작극장의 활성화가 선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문화한국 2035’ 발표에 앞서 문체부가 추진하던 국립예술단체 통합은 단체를 포함한 예술계의 반대와 함께 통합 타당성이 낮다는 연구 보고서의 존재 등에 따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지적이 나오자, 유인촌 장관은 “반대하면 안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국립예술단체 이전은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유 장관은 “(이전으로) 1~2년 불편할 수 있겠지만 국립예술단체는 국가의 균형 발전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단, 광주 이전 철회 촉구… 공론화 요구
하지만 당장 국립예술단체 가운데 이전이 처음 발표된 서울예술단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체부는 서울예술단을 국립아시아예술단으로 개편해 내년 상반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서울예술단 단원과 직원들은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전에 대한 법적 근거를 요구하며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사전 논의 및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면서 문체부에 타당성 조사·연구와 공청회 개최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공연 애호가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전 반대 서명운동이 시작돼 16일까지 3500명이 이름을 올렸다.
전남 지역 공공극장의 A씨는 “광주시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연간 100억원의 예산을 쓰는 서울예술단이 오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문체부의 강압적인 이전 추진에 대해 서울예술단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제대로 정책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고, 충남 지역 문화재단의 B씨는 “공공 예술단체의 조직관리는 예술경영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어려운 분야다. 서울예술단을 비롯해 국립예술단체의 이전 문제는 신뢰를 토대로 한 협의가 없으면 지금의 복잡한 국공립 예술단체 조직관리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립예술단체의 C씨는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이라는 방향성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립예술단체 이전은 예산 문제, 단원들의 생활환경 변화, 지역 공연계와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만큼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협의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 무조건 가서 1~2년 고생하면 된다는 장관의 발언은 너무나 무책임하다”면서 “문체부는 국립예술단체와 협의를 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단체장에게 문체부 방침을 전한 것이 협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 시·도립 예술단과 공공극장 활성화가 선행돼야
공연계에서는 서울예술단을 시작으로 국립예술단체의 단계적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문체부의 일방적 방식도 문제지만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에서는 국립예술단체의 이전이 어떤 형태로든 예산과 예술가의 이동을 가져오는 만큼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역 공연계의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회의적인 입장도 많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 공공극장의 D씨는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보다 지역 공연계의 핵심인 공공극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특히 광역시 소재 공공극장의 상당수는 전속 예술단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 예산의 대부분이 인건비와 시설관리비로 투입되느라 공연 사업비는 겨우 5~10%인 곳이 많다”면서 “문체부가 국립예술단체 이전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지역 공공극장이 제작극장으로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속단체를 가지지 않은 수도권 공공극장의 E씨는 “지역의 공공극장이 국내 공연 시장과 장르 네트워크 안에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설관리와 경영안정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점점 창·제작을 기피하게 된다”면서 “문체부가 지역 예술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지역 공공극장의 실상과 니즈를 파악한 뒤 그에 걸맞은 정책을 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공공극장의 F씨는 “국립예술단체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 지원이나 단원들의 역량으로만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기획자들의 리더십과 제작 시스템 향상, 관객들의 요구와 단체간 경쟁 강화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시장을 만든 덕분”이라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야 할 국립예술단체가 지역 이전으로 자칫 본분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창작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문체부가 든 BBC 필하모닉의 맨체스터 이전 사례는 오류
문체부는 ‘문화한국 2035’에서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BBC(영국방송협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사례를 들었다. 런던에 있던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맨체스터로 이전하면서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지역 음악 교육과 예술 프로젝트 그리고 젊은 음악가들의 유입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다. BBC는 영국 전역에서 5개 오케스트라(국립방송교향악단)를 운영하고 있는데,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22년 맨체스터에 설립된 2ZY 오케스트라를 토대로 발전한 것이다. BBC는 1930년 런던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세우면서 맨체스터와 웨일스에 있던 자사의 지역 오케스트라들을 실내악 앙상블 수준으로 축소했다가 1933년 부활시켰다. 맨체스터에서는 BBC 노던 오케스트라로 부활한 후 지금의 이름은 1982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맨체스터가 음악 중심지가 된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1996년 브리지워터홀(2355석)의 개관이다. 브리지워터홀은 할레 오케스트라와 할레 합창단의 본거지이자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맨체스터 카메라타의 주요 공연장소다. 매년 국제 관현악 시리즈와 유명 연주자 리사이틀도 열리는 등 연간 280회 공연이 열린다. 여기에 할레 오케스트라와 할레 합창단은 각각 청소년 단체를 운영하며 음악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문체부가 국립예술단체 이전의 모델로 든 맨체스터의 사례는 오히려 지역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립 예술단체와 지역 공공 예술단체 네트워크 필요
전남 공공 예술단체의 G씨는 “한국 공연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할 공공 예술단체들 대부분이 예산, 60세 정년, 근무 시간, 오디션과 평가 등의 어려움으로 경직돼 있다. 지자체가 과거에 섣불리 개혁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뒤 소극적인 행정만 펼치거나 방치한다”면서 “문체부가 지자체와 협력해 이런 문제들을 공론화시켜 대안을 모색하는 한편 우수한 성과를 내는 공공 예술단체에 인센티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지역 예술정책 연구자 H씨도 “문체부가 국립예술단체와 지역 공공예술단체들 사이의 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문체부도 탑다운 방식으로 무리해서 정책을 시행하는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장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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