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인사이트

당신은 인간의 창조력을 믿습니까?

 얼마 전 전세계 인류를 놀라움에 빠뜨렸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기업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인류 대표로 나선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었다. 이 ‘세기의 대결’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컴퓨터에 대한 인간의 우수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리 최첨단의 과학기술이라도 그것의 창조자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사고력과 창조적 힘은 인류 고유의 유산으로 믿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지식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게임을 할수록 능력이 개발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컴퓨터라니, 그야말로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이라고 과학기술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터, 춤에서도 이미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작품은 생소하지 않다. 이미 밀레니엄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필립 드쿠플레나 호세 몽탈보와 같은 안무가들은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환영을 창조해내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현실의 무대와 조우하며 상호작용하는 영상, ‘인간 무용수’처럼 움직이며 듀엣을 추는 ‘홀로그램 무용수’를 보며 현실과 환영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받았던 충격과 쾌감은 대단했다. 당시의 폭 좁은 식견으로 테크놀로지는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춤의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그것도 20년 전의 이야기. 창조자는 여전히 사람이었고 기술은 모방이었다. 기술이 모방 이상이 되는 ‘알파고의 시대’에는 어떠한 춤이 기다리고 있을까.

 

 뉴스에서도 보도되었다시피 ‘알파고 쇼크’는 비단 과학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되어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이 먼 미래가 아님을 중명한 것이다. 인간은 엄청난 편리함을 맛보게 된다는 기대와 동시에 ‘예비 실직자’라는 위협 속에서 벌벌 떨며 살게 된 것이다. 올 초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한 ‘직업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후 자동화 직무 대체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 위기가 심각하게 체감된다.

 

 얼마 전 한국고용정보원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제안한 분석 모형을 토대로 AI와 자동화 기술로 대체 가능한 직업군과 그 반대 직업군의 순위를 발표하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감성의 산물인 예술과 관련된 직업들은 모두 대체 확률이 낮은 쪽으로 분류되었고, 무용가 역시 살아남을 직업 6위에 올라 있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 개념이 사라지고 시뮬라크르가 서로를 모방하는 예술 현상을 예언하였다. ‘오리지널’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는 예술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거부하는 이 견해는 모던 아트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었으며,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예술을 설명할 수 있는 미학이다. 그런데 앞의 발표는 기술이 더 발달하여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 하게 되면 오히려 ‘인간’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술 발달의 최정점에 기술로 대체 불가능한 감성적 인간이 존재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예술은 테크닉의 모방이나 조합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실력이 ‘모방’은 넘어섰을지언정 예술 활동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원천인 ‘영감’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의 춤이 인간에게 더욱 집중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