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전국의 춤계 인사 39명이 대동단결하여 성명을 발표하고 보도자료를 내는 일이 있었다. 이름 하여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무용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올 1월 타계한 강선영 선생을 이어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가 태평무 보유자로 인정 예고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결성된 모임으로, 이들은 “태평무 보유자 인정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였다. 결국 이 사안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고, 문화재청은 별다른 구체적 방안 제시는 없는 채 “올 10월 제도개선안을 만들어 다시 결정하겠다”라는 무책임성 발언으로 일단락 덮은 상태이다.
춤계의 분열과 논란은 보유자 인정 예고를 했던 2월 초부터 6개월이 넘도록 계속 되었다. 보유자 후보였던 이현자(80), 이명자(74), 박재희(66), 양성옥(62) 선생 중 가장 원로였던 이현자 선생은 ‘제자격인 후배가 자신을 제치고 보유자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1인 시위를 벌였다. 비대위에 서명한 춤계 인사들은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등이다. 특히 보유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국수호 예술감독조차 비대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의아함을 자아낸다.
이들이 양 교수의 보유자 인정을 반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나이로 보나 서열로 보나 양 교수보다 먼저 태평무에 입문했던 선배가 있음에도 이들보다 먼저 보유자로 지정된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둘째는 양 교수의 자격과 관련된 것으로서, 익히 최승희 춤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창작을 위주로 하는 신무용의 대표적 무용가가 태평무라는 전통춤의 정통성을 유지해야 하는 보유자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문화재청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이현자 선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서열상의 문제와 전통춤의 정통성 문제를 들며 양 교수의 자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을 올렸다.
비대위를 비롯하여 양 교수의 보유자 인정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그러나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무형문화재 제도의 폐해나 문제점들은 수 십 년 간 숱하게 지적되어 왔던 사안이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초에 무용 분야에서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기준을 새로 마련하였다. 일괄된 원칙 대신 종목별로 심사 평가 기준을 달리 했고 유파(流波)와 무관하게 자유롭게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개방형’ 기준을 내세운 것이다. 또한 총점 100점 중 75점을 ‘전승 능력’에 두어 각 유파의 후계자 서열로 보유자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후학에게 전승하는 ‘실기 능력’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에 기준하여 이번 양 교수가 태평무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것일 터인데, 이에 대하여 “서열을 파괴했다”며 “예(禮)와 도(道)가 중시되는 전통예술계, 나아가 대한민국 일반의 보편적 정서와도 거리가 먼 비극”이라는 등 원칙에 어긋나는 과장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애초에 문화재청이 기준을 제시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실제 결과가 발생하자 이러한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그 결과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측의 어불성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윤석 선생이 55세에 고성오광대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양진성 선생이 42세의 나이로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보아도 양 교수의 나이가 보유자 지정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양 교수가 “신무용 출신 무용가여서 안 된다”는 자질 논란에 대해서는 그 화살을 그대로 비대위 인사들에게 돌릴 수 있다. 신무용 계열과 창작춤의 전문 무용가, 심지어 현대무용가들이 전통춤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11월 《대한민국 전통무용제전》의 국고비리와 관련하여 본 지의 ‘인사이트’에서 다룬 적이 있다. 당시에도 춤계 인사들은 무조건적으로 해당 행사를 옹호하고 홍성군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같은 분야의 후학으로서 씁쓸함을 금치 못하였다. 이번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비대위 무용인들의 비이성적 처세는 춤계 후학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으며, 나아가 문화예술계 전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춤계는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 관용이 유난히 부족하다. 비단 금번 사태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직이 계속된 투서로 선출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교수직의 임용 때마다 말과 탈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일 것이다. 춤계의 잘못된 권력 행사나 부조리함이 개선되어야 함을 느낀다면 이와 같은 사태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우리 모두가 공동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좀 더 건강한 춤 생태계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 소원(疏遠)해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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