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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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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격황소서(檄黃巢書)’를 빌어 ‘격근혜서’를 쓰다

 지금으로부터 약1,135년전인 881년 어느 날, 당나라의 어느 곳에서 황소(黃巢)의 난을 일으킨 괴수 황소는 신라 출신의 서기관 최치원(857~미상)으로부터 항복을 권하는 격서(檄書)를 받고 기절초풍을 합니다. 특히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드러내 놓고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살그머니 죽이자고 의논했다(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抑亦地中之鬼 已議陰誅)”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놀라서 마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일화로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이름을 날렸고, 명문장가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다 합니다. 고운 최치원은 경주 최씨 집안의 시조(始祖)입니다. 최치원의 후손들이라면 그의 가르침을 모은 필사본 『경학대장전(經學隊仗全)』 을 소장하고 있고, 또 그가 남긴 문집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도 익숙합니다. 어쩌다 우리집에도 이 필사본과 문집이 있어서 마음을 가다듬을 일이 생기면 뒤적여 봅니다. ‘황소격서’는 『계원필경집』의 제11집에 수록돼 있는데,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읽으니 와 닿는 바가 큽니다.

 최근에 당나라의 황소만큼이나 무지몽매하며 황소 못지않은 무지막지한 욕심으로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괴수가 대한민국에 등장했으니 그 이름하여 박근혜라고 합니다. 마리오네트 대통령과 그를 지배한 마스터 최순실이 저지른 각종 게이트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석 달 가량 저는 일체의 의욕을 상실한 채 허망자실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활동력 높은 무용가들이 벌리는 현상들을 의미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무용계 도처에서 마스터 순실과 추종자 은택처럼 굴던 이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명박, 박근혜 양대 정부에서 부역했던 무용가들이 앞장서서 서명운동에 참여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모바일 SNS의 위력을 깨닫지 못한 무용지도자들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무용가를 ‘은택라인’, ‘종라인’, ‘순실라인’으로 몰며 ‘빨래터형 루머’로 마타도어하다가 역공당하는 것을 보며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중견, 신진 무용가들의 참여행동은 기대와 각성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용지도자들이 악랄하고 치졸하게 동료 무용가를 괴롭혀도 침묵하던 무용가들이, 기득권들이 줄을 세우고, 돈, 성, 노동력을 착취하고, 기금까지 착복하는 것을 보고도, 듣고도, 심지어 자신이 겪으면서도 침묵했던 무용가들이 시위현장으로 나갔다고 하니 솔직히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거대 악의 종결을 위해서 작은 악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무용계의 시국선언문 두 편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반성도 성찰도 없는 문장들은 낮은 울림조차 주지 못했고,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구린 향기만 묻어 있었습니다. 무용계의 일원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번 시국사태를 계기로 작게는 무용계에서 변화가 오길 기대합니다. 무용가들이 더 이상 무용계의 적폐(積弊)에 침묵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 박근혜, 최순실, 차은택, 김종 같은 인간형이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공명정대한 시대가 오길 기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조상님의 ‘격황소서’를 빌어 ‘격근혜서’를 써봅니다.

 “2016년 11월 30일에 문화예술계 모(某)는 조상님의 ‘격황소서(檄黃巢書)’를 빌어 박근혜에게 알린다.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하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때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르는 데서 패하는 법이다. 비록 백년의 수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하기 어려우나 모든 일은 마음으로써 그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로 말하면 은덕을 앞세우고 죽이는 것을 뒤로 한다. 앞으로 큰 신의를 펴고자하여 삼가 도리를 세워 간사한 것들을 치우고자 한다. 그대는 본시 독재자의 딸에 불과했으나 갑자기 정치지도자가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감히 강상을 어지럽게 하였다. 드디어 불칙한 마음을 품고 높은 자리에 올라 국가기강을 짓밟고 국격(國格)을 해쳤으니, 죄가 이미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로 되어서 반드시 여지없는 벌을 받고 말 것이다.

 애달프다. 양심 없는 무리와 충의 없는 것들이란 바로 그대들이 하는 짓이다. 어느 시대인들 없겠는가? 멀리로는 박정희가 검열과 탄압을 일삼았고, 이명박은 뉴라이트와 4대강으로 시끄럽게 하였다. 그들은 모두 손에 막강한 권력을 쥐었고, 또한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어서 호령이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치듯 요란하였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와 연기가 자욱하듯 하였지만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에는 죽임을 당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졌다.

 햇빛이 활짝 퍼졌으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는가? 하늘 그물이 높이 쳐졌으니 나쁜 족속들은 반드시 제거되고 말 것이다. 하물며 그대는 지도자로서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을 뿐 속죄할 수 있는 조그마한 착함은 없으니 국민 모두가 그대를 하야(下野)시키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 땅속의 귀신까지도 가만히 두지 않으려고 의논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비록 숨은 붙어 있다고 하지만 넋은 벌써 빠졌을 것이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제가 제 자신을 아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대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요즈음 우리 국민들은 더러운 것을 용납하는 덕이 깊고 결점을 따지지 않는 은혜가 지중하여 그대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또 예산까지 맡겼다. 그런데 오히려 짐새와 같은 독심을 품고 올빼미와 같은 흉악한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며 사람을 물어뜯는 짓이 개가 주인을 향해 짖는 격이었다. 그리하여 순실이와 같은 이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정치를 논하다가 마침내는 하야를 앞두게 되었다. 국민들이 과거에 그대의 죄를 용서해 준 은혜가 있는데, 그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을 뿐이다. 반드시 머지않아 내려오게 될 권좌인데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청와대가 어찌 그대가 머무를 곳이겠는가? 그대의 생각은 끝내 어찌하려는 것인가?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도덕경(道德經)』에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고 소낙비는 온 종일을 갈 수 없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조화도 오히려 오래 가지 못하거든,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에 있어서야. 또한 듣지 못하였는가? 『춘추전(春秋傳)』에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간사함을 감추고 흉악함을 숨겨서 죄악이 쌓이고 앙화가 가득하였음에도 위험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미혹되어 돌이킬 줄 몰랐으니 이른바 제비가 막 위에다 집을 짓고 막이 불타오르는 데도 제멋대로 날아드는 것과 물고기가 솥 속에서 너울거리지만 바로 삶아지는 꼴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도적을 토벌하는 데는 사적인 원한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어둔 길을 헤매는 자를 깨우쳐 주는 데는 바른 말이어야 하는 법이다. 고집을 부리지 말고 일찍이 기회를 보아 자신의 선후책을 세우고 과거의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옛날 동탁(董卓)처럼 배를 불태울 그때가 되어서는 사슴처럼 배꼽을 물어뜯는 후회가 있을지라도 시기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진퇴를 참작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라. 고집부리다가 멸망하기보다는 하야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현명한 지도자의 처신을 택하여 표범처럼 변하기를 바랄 것이요, 의심을 품지 않기를 바라노라. 모는 알린다.”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