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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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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무용의 미래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진정한 여행>에서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므로”라고 읊조린 것처럼 무용가들은 불후의 춤을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춤이 자신의 숙명이고, 춤추는 것을 종교적 수행과 동일시할수록 ‘불멸의 춤’과 ‘불후의 춤’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진다. 범인(凡人)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불치병에 걸린 무용가들은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몸으로 머리를 쥐어뜯거나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라는 도구로 인류가 고안했던 태초의 기술이자 최초의 예술이었던 춤은 이 사회에서 도태되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춤은 가장 진부한 기술이자 퇴보한 예술이 되고 말았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1차 산업혁명 이전의 시기와 다름없이 몸 하나에 의지하여 춤을 추던 환경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작년에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 예언한대로 현재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1784년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던 1차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서 2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으며, 1969년 인터넷과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모든 산업을 주도하면서 3차 산업혁명으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차세대 산업혁명기로 접어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은 모든 사물을 통신망에 연결시키고 데이터를 이동시키며 초연결 사회를 지향한다. 그리고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 저장, 분석하고, 또 학습하면서 자율 진화한다. 이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 첨단 정보기술과 융합해서 초고도의 효율성을 지닌 기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 혁신적인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초연결, 초고도의 환경에서는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창조자(maker, creator)가 될 수 있다. 혹은 그 창조자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즉,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서 창조적 행위는 더 이상 예술가 고유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창조적인 콘텐츠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독일, 미국, 일본, 영국, 중국, 이스라엘 등 해외의 주요 국가들은 콘텐츠산업을 국가의 전략사업으로 간주하고 이에 합당한 인재양성과 문예정책에 주력한다. 혹자는 지금 세계는 ‘소리 없는 문화콘텐츠 전쟁’에 돌입했다고 말한다. 이 전쟁에서는 누가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여 먼저 상품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세계 각국은 문화콘텐츠를 핵심 산업으로 인식하고, 예술환경을 문화기술(CT)이 중심이 된 체제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소비시장에 민감한 예술가라면 정보통신기술이나 문화기술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창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곧 다가올 무용의 미래는 이런 것이다. 공연에 앞서 빅데이터를 통해 관객들의 최신 기호를 파악한다. 그리고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관객들이 선호할만한 소재와 주제를 발굴한다. 그런 후 인공지능을 가동시켜 관객들이 감동 받을만한 움직임 패턴을 고안해낸다. 사운드와 비주얼 이펙트 또한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여파의 하나는 기존의 일자리, 기존의 역할을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용가의 역할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 글이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워 마치 무용의 종말이라도 온 듯 무용가들을 위협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애초부터 불온한 의도로 시작한 글이 아니었다. 주술이자 예술로서 발생했던 춤이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숙고하고 미래에 대처해 보자는 의도였다. 춤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춤이라고 명명한 대상은 자연스러운 숨결에 생동의 맥박에 맞추어 자신이 처한 세월과 공간 속에서 켜켜이 담가온 몸으로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이 아무리 진보한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것이 또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세상을, 특히 무용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창조해 가는 모든 기술은 보다 나은 생명, 세상,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 기술은 혼란과 파괴를 가져올 뿐이다. 무용분야에 들어오게 될 기술도 마찬가지다. 춤의 본질도 모르면서 무용콘텐츠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4차 산업혁명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무용분야를 휘젓고 나닐 문화기술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당신들의 허한 기술이 춤출 곳은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이런 허한 업자들을 정부과제라는 명분으로 무용분야에 들여 놓을 문화공무원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이들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과거에 문화원형콘텐츠사업과 아시아문화전당의 프로젝트사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고 실패했던 결과를 다시금 초래할 것이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태 못지않게 예술생태계를 또 다시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무용계 그 누구도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한 사기놀음에 휘말림이 없이 자신의 춤을, 자신의 몸을, 자신의 정신을 굳건히 지켜나가길 바란다. “시간과 공간 속에 몸으로 창조하는 예술”이라는 춤의 근본 명제가 아직까지는 유효하니 말이다.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