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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진정 우리 모두는 ‘아Q’가 되고 말 것인가?

 일찍이 영국 시인 T. S. 엘리어트가 이르기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이는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낸 봄의 생명력을 찬양하는 시구라고 이해한다. 2017년 봄, 현재 우리 무용계의 생태계를 지켜보노라니 이 잔인한 4월의 의미를 온 몸으로 체감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3월 10일, 헌정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이 단행된 이후 조심스레 다시 발걸음을 시작한 무용계 나들이. 공연장 안팎에서 전해오는 실체 없는 소문 혹은 가짜뉴스들이 너무도 경악스럽고 잔인(?)하여 무엇이 진실이고 대체 어쩌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에 분노 게이지가 조절되지 않았다. 급기야 수많은 상념과 단상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들며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대충 열거해 보자면 올해 초에 12년간 장기집권이었던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직이 선거절차를 통해 지난 1월에 50대 남성무용가 조남규로 교체되었다. 신임 이사장직 선출로 무용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나 싶더니만 이후 평론가 성기숙이 전면에 나서서 서울무용협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광장집회에 참여했던 무용가들이 희망연대 오롯을 결성하고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현대무용가 황미숙의 제안으로 현대무용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준비모임이 있었다. 또한 한국무용가들을 중심으로 한국무용단체총연합회의 창립 움직임이 있었으며, 현대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여성무용수연합회가 추진된다는 소식도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7년 지원사업 결과발표가 있고나서 두 명의 여성평론가들이 각각 결과에 불복하는 성명서와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반박 칼럼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론가협회에서 한 평론가를 제명시키는 절차가 이루어졌고, 연이어 고소, 고발 소식까지 흘러 나왔다. 최근 뉴스화면에는 선거운동행사에 병풍처럼 뒷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무용가들도 보였다. 2017년 4월, 이렇게 무용계 지도자급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이 지금 우리 무용계의 볼썽사나운 실체이며 부끄러운 민낯이다. 대체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과연 양심은 어디에 존재하며 예술가의 자존감은 갖추고나 있는지 실로 걱정스럽고 마냥 의심스럽다.

 문득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며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1881-1936)이 1921년에 발표한 소설 <아Q정전>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북경에서 발행되던 신문 <진보부간>에 연재되어 당시 중국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이 소설은 최하층 신분의 날품팔이 ‘아Q’를 주인공으로 중국 구사회와 민중이 지닌 현실적 문제를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파헤친 문제작이었다. 전 세계에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는 로맹 롤랑을 크게 감동시켜 새삼 주목을 받았던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탐독했다. 특히 현대무용가 홍승엽(대구시립무용단장)은 지난 2006년에 독특한 해석을 통해 동일 작품을 올려 큰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홍승엽의 작품은 댄스 씨어터 온과 LG아트센터의 공동 제작으로 초연되었고, 이후 국립현대무용단과 대구시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공연되는 등 이른바 홍승엽 안무가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루쉰의 <아Q정전>에 스며있는 인간 삶의 허허로운 일상이 어쩌면 이즈음 우리 무용계의 지도자급 혹은 지성을 대변하는 몇 몇 평론가들의 몰염치한 태도와 묘하게 중첩되어짐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폭로성 보도기사와 항의성 문자메시지들이 난무하는 무용계의 비루한 정황들을 접하며 무용계 전반에 스며있는 병적인 증상들이 새삼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아Q’가 살았던 온갖 이념과 자유가 난무하던 어지러운 근대 중국의 사회가 한국의 현 상황과 중첩되며 부조리한 사회의 조직체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치 교훈을 전해주는 것 같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부끄러운 오늘날 무용계의 자화상들이 과연 어떤 결과물로 훗날 역사에 기록되어질까 사뭇 염려스럽다.

 한편, 지난 4월 1일에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의 정책 토론회에서 안무가 정영두가 발표했던 요구사항에 공감하며 이 지면에 요약해 본다.

 첫째, 1년 단위의 단발적인 사업보다는 장기적인 사업으로 지원을 다각화하고 개선해야 한다.

 둘째, 예술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 무용인들의 노후대책 등 복지에 대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무용전용극장 및 창작작업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장르별, 사업별에 편차를 두고 예산을 책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무용교육의 환경 개선 차원에서 무용교과의 제도권 교육진입이 필요하며 예술대학의 성과측정에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중차대한 무용계의 현실적 고민들을 뒤로한 채 개인적 영달을 위한 이러 저러한 집단의 결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들 모두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2017년 5월 9일, 이른바 장미대선으로 지칭되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는 대한민국.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민주시민으로서 성숙한 주권의식이 투표행위를 통해 표출되고 진정성 있게 고양되기를 외람되나마 희망해 본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무용계 일원들이 또 다른 ‘아Q’로 세간에 평가 절하되는 일이 기필코 재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호소한다.


글_ 편집자문 장승헌(공연기획자,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