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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들의 천국 춤계가 건강한 예술생태계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시기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번 대선은 장장 6개월에 걸친 촛불혁명의 승리이자 국가적 권력에 대한 국민의 승리이기에 더 절실하고 감동적이었다. 박근혜 정권 하의 국정 농단 사태는 정치나 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만큼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가 높고 시민들의 눈도 날카로워졌다. 새로운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기치는 ‘적폐 청산’이다. 우리 사회에 줄곧 부패한 권력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던 친일, 독재의 기운을 이제야 몰아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적폐 청산은 어김없는 숙제인 바, 이는 ‘블랙리스트’라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문화예술을 검열하고 통제하였던 박근혜 정권의 잔인한 권력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증거이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예술계의 도처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행동이 이어졌고, 춤계에서도 광장 집회, 블랙텐트극장, 1인 시위 등을 이어오다가 마침내 공동의 결집체인 ‘희망연대 오롯’이 결성되었다. ‘마침내’라고 생각할 만큼 참으로 더딘 움직임이었다. 2015년 국립국악원의 부당한 공연 검열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춤계는 행동하지 않았었다. 분명히 기저에는 ‘나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일’이라는 잔인한 무관심이나 ‘목소리를 내었다가 내가 불이익을 입지는 않을까’라는 비겁함의 기제가 작동했을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고백을 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훨씬 이전에 나의 모교에서 어떤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그 문제를 일으킨 주체는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교수였다. 그런데 이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학생들은 소수였을 뿐, 대다수는 사태를 쉬쉬하며 감추거나 ‘허위’라며 다시 거짓으로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그 때 대다수의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수치스럽게 모교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말라”는 집단이기주의와 “여기서 찍히면 앞으로 무용계에서 어쩌려고 하느냐”는 협박이었다. 미약하나마 여러 방법으로 이 문제에 항의하였던 나 역시도 주변으로부터 “어차피 질 것이 뻔한데 괜히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지 마라”는 만류를 받았다. 그리고 그 후로 몇 가지의 부당한 대우가 있었다. 짐작컨대 그 권력 주체 혹은 집단에는 그들만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을 것이다.

 심각하고 지독한 병폐로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겁쟁이들의 사회는 어느 곳에라도 존재한다. 그러나 만연하다고 해서 당연한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유달리 춤계에는 그것을 타파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공공의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산발적이거나 연대의식이 없어서 힘이 매우 미미했다. 춤계의 내부인이라면 그 이유를 모를 리 없다.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바로 춤계 내부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고 차별과 배제라는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不正)에 맞서 끝까지 올바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싸움닭’이라 부르며 반은 농담조로 그러나 뼈있는 공격으로 생채기를 입혀왔다. 몸으로 전해지는 도제 예술의 특성상 스승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져 왔던 이 불편한 진실. 춤계 내적으로 너무나 곪아버려 도려내어야만 할 청산 대상 1호의 적폐가 아니겠는가.

 지난 6개월간의 행보를 통해 우리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춤계도 변화하고 있다. 아니 당연히 변화해야만 한다. 지난 수년 간 문화예술계가 받아온 부당함과 불합리에 맞서 떳떳하게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젊은 무용인, 가난한 무용인, 열정 페이의 희생양이지만 한 마디 저항도 못하던 힘없는 무용인, 춤계의 주류에서 소외받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연구와 작업에 매진하는 무용인, 음지에서 고통 받으며 스스로를 죽음의 문턱 앞까지 내몰면서도 예술의 부름에 응하며 혼을 불태우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 주어야 한다.

 바람직한 예술생태계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에서 시작하는 것일 테다. 그 이전에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 자신이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와 개혁에 한쪽 발을 담갔으나 수십 년 간 지속되어온 권력이 두려워 다른 쪽 발은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셀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방관자의 자세로 이 변화의 추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또 다른 권력을 노리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개혁은 자성(自省)의 태도와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괴로운 과정일지라도 이는 건강한 춤 생태계, 새로운 춤 환경을 위해 우리가 겪어내야 할 진통이다. 그 고통을 담보할 때만이 내부로부터의 진정성이 샘솟을 수 있다. 그래야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진정한 소통으로 건강한 변화와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