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우리 무용계가 국립무용센터 건립이라는 화두에 직면하면서 이른바 지각변동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체감하기 이른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 속도에 비한다면 현재 우리 무용계의 위상은 날로 추락하여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멀리 보자면 지난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후, 가슴 아픈 민족분단과 함께 예술가들의 활동 지형도까지 변질시키기에 이르고, 참혹한 예술 환경에 노출된 우리 문화예술계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자 국가가 공연예술을 보존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순수 기초예술 분야의 본질적 상태 존립이 어렵다는 취지아래 각 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1962년, 국립창극단, 국립 오페라단과 함께 국립무용단이 창단되기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무용가들의 활동 영역이 비로소 외형적인 틀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초기 국립무용단의 예술적 성취도나 작품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더욱이 이듬해인 이화여대 무용과 설립이후 다른 대학들에서도 무용학과들이 차례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우리 무용계는 대학 아카데미즘이 주도하는 시대를 맞게 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대학 무용과 교수 및 졸업생 동문단체들이 주도한 아마추어리즘의 여러 활동은 일견 긍정적 요소들도 많지만 직업화화 프로페셔널한 작품성은 물론, 보다 경쟁력있는 제작 환경과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도 멀어지는 안타까운 결과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학 무용과 개설과 졸업생 배출 등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로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이 시스템 속에서 존립해온 대한민국 무용계의 이율배반적 모순 속에서 이제 과감한 일대 전환과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해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한 다각적인 논의가 더욱 소중한 기회이자 귀한 시간들이라 감히 제언한다.
지난 7월 25일, 프레스 센터에서 국립무용센터 건립추진단이 주최한 첫 공청회에서 두 발제자들의 발제문 내용을 통해 제시된 유럽의 EDN(유럽댄스하우스)이나 프랑스CID(국립안무센터)의 운영 모델은 일견 우리 무용계의 발전에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서구 선진 유럽 국가의 무용정책 모델이 우리에게 꼭 맞는 맞춤형 옷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무용계의 생태계나 그 존립 위상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만큼 우리나라 춤 환경의 모델을 구축하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상적 기구 형태로 국립무용센터가 건립, 운영되어야만 할 것이다. 특히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에 쏟아져 나와도 전문화, 직업화, 그리고 세계화는 너무도 아득한 것이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우리 무용계는 여성인력들의 활동영역이 매우 크다 보니 다른 문화 예술계 장르에 비해 적극적 생태계 존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인지상정에 휩싸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평화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린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페막식 행사의 대부분을 맡았던 전문 무용수들과 무용학과 학생들 및 수 천 명 예술고 재학생 등 우리 무용인들이 추위와 싸우며 엄청난 장관을 연출하여 대한민국의 국가이미지 고양과 예술행사의 근간을 책임지고 받은 대가는 참혹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와 정부 관계자들의 배려와 관심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은 지금 무용계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너무도 서글프지만 무용인들 스스로의 자화상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스스로 그 권위와 위상을 찾고 권리를 주장해야만 할 때라고 당당히 외쳐본다.
한편, 언제부터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에 따른 발 빠른 움직임들이 우리 사회 곳곳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기도 해 보인다. 로봇과 인공 지능이 주도하는 미래사회는 반드시 행복하기만 한 걸까? 춤이 필요한 시대, 그리고 디지로그 시대를 주도하는 인간의 몸, 특히 아날로그 정서의 순수 예술이 지향하는 인간성 우위의 가치실현을 위해 무용예술의 높은 예술성은 보다 더 귀하게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국립무용센터가 서울에만 설립되지 말고 지역권 별로 경기 강원권, 충청권, 경상권, 호남권 그리고 제주지역에 이르기까지 분원센터가 건립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된 명실상부 대한민국 무용계의 진정한 빅 텐트로 국립무용센터가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해 우리 무용인 모두가 진정성 있는 지혜와 배려의 마음들을 모아야함은 물론, 아울러 각자의 실천이 필요한 지상최대의 희망이자 이른바 절대 절명 최대의 기회라는 말로 필자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 본다.
글_ 편집자문 장승헌(공연기획자,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